귀신신앙

조회 수 3914 추천 수 3 2008.08.23 23:38:21
귀신신앙

요즘은 약간 시들해진 것 같지만 10여전 전만 하더라도 교회에서 귀신 이야기가 많았다. 그 이름이 귀신이라고 하든지 마귀라든지, 사탄이든지 약간 씩 다르게 불렸는데, 사람들은 악한 영의 실재를 의식하면서 신앙생활을 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이런 악한 영도 그 성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런 차이를 무시하고 ‘귀신’으로 일괄하기 어렵지만 우리의 논의를 집약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
일단 한국의 토속 종교에 귀신 설화가 매우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성서에도 그런 설화들이 간혹 등장한다는 점에서 한국교회가 귀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건 어쩔 수 없는 결과이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는 귀신 이야기가 우리의 관심을 끈다는 데 있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성서의 핵심이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든다면 음악의 깊이를 모르는 사람은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쪽으로만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과연 귀신을 실재하는 걸까? 이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어떤 대답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을 완전히 설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귀신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설득시킬 수 없고, 없다고 하는 사람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설득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성서는 귀신을 인정하는가?
거라사 지방의 군대귀신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성서는 이런 귀신 현상을 매우 드라마틱하게, 실재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런 영향을 받는 한국교회 신자들은 극단적으로 귀신이 어떤 사람의 가슴에, 머리에, 턱에 붙었다고까지 표현한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모든 세상에 정령들이 활개 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고목에도 귀신이 있고, 바다에도 그것을 다스리는 신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매우 곤혹스럽다. 특히 계몽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귀신신앙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성서에 기록된 것을 무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성서가 기록될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세계관 안에서 살고 있었는지를 늘 염두에 두고 성서를 읽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임하는 재앙을 신의 저주로 생각하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운명을 하늘의 영에 의한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까지 그런 영의 개입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성서의 귀신신앙은 단지 고대인들의 미숙한 세계관에 의한 것에 불과한 것일까? 비록 형식으로는 미숙한 세계관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사물과 사건의 근본을 이해하려는 관점에서는 틀린 게 아니다. 그들은 인간의 삶과 역사에 한 개인이 헤쳐나길 수 없는 힘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악, 죄, 파멸, 재앙 같은 것들을 설명하려면 그 당시로서는 사탄과 귀신 개념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신경증, 심층심리학 같은 방식으로 이런 현상들을 절대적으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당히 많이 해명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우리가 과학적인 방식으로 해명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힘들이 여전히 우리를 강력하게 지배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예컨대 자본주의라는 힘은 오늘의 귀신이다. 그것은 어느 한 개인이 뚫고 나갈 수 없는 막강한 힘으로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소비중심의 삶도 역시 일종의 초자연적인 힘의 활동이다. 현대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소비의 귀신에 사로잡혀 있는 셈이다. 성서의 축귀현상을 오늘 우리가 바르게 해석한다면 오늘 우리를 무능력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이런 악한 힘들과 우리 교회가 투쟁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반대로 여전히 주술적인 차원에서 귀신을 이해한다면 그건 성서 시대의 귀신신앙의 복귀하는 것에 불과하다.
귀신신앙을 경험적으로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 설명은 무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경험이 아무리 강철 같다고 하더라도 그런 인간의 모든 경험은 하나님 나라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귀신신앙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남북통일, 반전, 생태보존, 마이너리티에 대한 관심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의 경험이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다는 의미이다. 이런 귀신신앙과 기복주의가 여전히 한국교회 안에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인간의 삶 자체가 불안하며, 도상에 있으며, 매우 심층적이라는 사실에 있다.
한국교회가 인간 삶의 문제들을 신학적으로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는 한 일종의 정신적인 실용주의라 할 귀신신앙과 기복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생명의 신비는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마술이 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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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08.08.25 15:55:45

귀신신앙을 조장하는 것이 대중여론이라고 봅니다.
공중파 tv에서 무속인을 대동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지금은 덜 하지만 한겨레신문 광고에서도 무속인 광고가 많았습니다.
우리 문제들을 선과악의 개념으로 반대되는 현상들을 귀신으로 몰아부치는 우리들 스스로가 주술에 걸렸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정말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라는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그러면 스스로의 주술에서 풀려 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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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8.25 23:16:52

맞아요, 새하늘 님,
흑백논리, 선악이원론 등등에 사로잡힌 우리가 바로
귀신에 들린 사람들이겠지요.
장 아무개 목사님이
미국에 가서 사고를 친 것 같아요.
불교를 폄하하는 발언으로요.
요즘 방송계가 시끄럽지요?
몸 조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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