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3:1-11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골로새서는 그리스도론의 관점에서 특별한 책입니다. 그리스도론적인 송영이 여러 번 나옵니다. 송영은 영광 찬송입니다. 궁극적인 세계를 노래한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문자의 차원에 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불립문자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문자 너머의 세계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위 구절도 그렇습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위’가 어디일까요? 하늘인가요? 하늘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위는 단순한 공간이 아닙니다. 위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우편도 공간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일한 권위를 지난 분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위’는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가리킵니다. 그 위는 바로 우리 삶의 자리인 여기일 수도 있습니다.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 따라서 조금 더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절은 위를 땅과 대립해서 설명합니다. 땅의 것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 추구되는 것들을 가리킵니다. 욕망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닙니다. 본능적으로 자기를 지키려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이것으로는 생명이 완성되지 못합니다. 그 마지막은 결국 죽음입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벌어지는 모든 생명 현상들은 그림자와 같습니다. 허무하다는 뜻이 아니라 궁극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위의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확인할 수 있는 것에만 몰두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보이지 않지만 실질적인 것(reality)에 운명을 거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생명 통치인 위의 것입니다.
주님, 위의 것을 찾으라는 말씀이 우리 영혼을 사로잡기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