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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神政)

조회 수 585 추천 수 0 2021.06.07 13: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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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神政)



오늘날 모든 나라는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의 신성한 통치 제도로 민주주의가 맞는지를 성경을 근거로 살펴보자.


신명기 17장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통치할 이상적인 왕을 말한다. 성경은 역사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면에 비추어 진리를 제시한다. 세속적인 왕이 가진 부정적인 측면을 거울로 삼아서 이상적인 왕의 모습을 제시한다.

세상 왕의 부정적인 면은 무엇인가를 많이 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17:16-17)라고 말한다.

이 구절들을 보면 세상 왕은 자기를 위하여 세 가지를 많이모아 두려 한다. 첫째는 말()을 많이 모아 두려 한다. 말은 애굽에 많았다. 애굽은 세상을 의미하며, 말들은 세상적인 수단을 의미하고, 국방을 말한다. 당시에 말은 애굽, 즉 세상에 많았기에 말을 가지러 출애굽한 곳인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한다. 둘째는 아내를 많이 두려 한다. 왕의 결혼은 정치·외교적인 측면을 반드시 가지게 된다. 고대 사회일수록 왕은 여러 아내를 두어서 호족과 연합하려는 내치와 이웃 나라와 연합하려는 외치를 한다. 단지 성적인 측면으로만 보는 것은 단면적인 이해이다. 그래서 많은 아내는 정치·외교적 측면이다. 셋째는 은금을 많이 쌓지 않아야 한다. 이는 경제적 측면을 말한다.


국방과 정치 및 외교, 경제는 국가 존립의 근간이다. 이것은 어떤 통치자든지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래서 다다익선(多多益善)일 조건들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많이 가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세 가지의 공통적 단어는 많이이다. 많은 것이 왜 해가 되는가. 많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많음을 의지하게 한다. 현실적 필요가 의지할 만큼 많아지는 것은 국가를 무너지게 만든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 광야에 있는 동안 하나님은 사무엘 시대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아시고 모세를 통하여 왕을 세우는 것에 대한 지침을 주셨다. 사실상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가운데 왕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그분 자신이 왕이시므로 그분의 백성이 왕을 원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체할 누군가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을 다른 것으로 대체해서는 안 될 것이며, 대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따라 왕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이 사무엘 당시의 상황이었다. 백성들은 비록 이것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었다 할지라도 왕을 원했다(삼상 8:4-22). 그들의 고집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왕으로 사울을 주셨다. 사울은 좋은 왕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후에 하나님은 그분 자신이 선택하셔서 사울을 대체할 다윗을 일으키셨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었다(삼상 13:14).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은 가장 그분의 마음에 흡족한 왕이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방과 같이 그들에게도 왕을 달라고 하였다(삼상 8:5-18). 그 곳에 명시된 왕의 권리는 신명기 1714절부터 20절까지에 명시된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신명기에 명시된 왕은 백성이 원했던 열방과 같은 왕이 아닌, 하나님의 택하심과 정하심에 따른 왕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들에게 열방의 왕들이 그 백성들을 얼마나 엄히 다스리는가를 가르쳐 주고자 하셨음을 볼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백성들에게 많은 고통을 가할 열방의 왕 같은 왕을 원하는지 다시 고려해 볼 기회가 주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고 왕을 달라고 고집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구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니고 이방의 민족의 관습을 따른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려는 왕국은 절대 열방의 관습을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백성은 왕은 늘 주님의 율법을 묵상하며 자기 뜻에 따라 백성 위에 군림하지 않는 자라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방의 관습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한편 하나님의 경륜의 각도에서 본다면 우리는 이 모든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 아래 일어난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사사기에서는 특유의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17:6, 18:1, 19:1, 21:25). 그러나 하나님은 왕이셨다! 성경에 있는 원칙에 따르면 남편은 여자의 머리요, 가족의 머리이다.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남자가 이 권위를 갖도록 정하셨다. 따라서 그는 또한 왕권을 갖는다. 예표와 표징에서 하나님은 유일한 남자이시다(54:5). 교회인 우리는 그리스도께 단체적인 아내이므로 우리는 모두 여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요, ()이시므로 그분은 또한 우리의 왕이셔야 한다. 이스라엘이 그들 가운데 왕이 없다고 말했을 때,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지위를 무시했음을 뜻한다. 사무엘상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그들을 위해 왕을 지명해 달라고 요구했다(삼상 8:5).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몹시 상하게 했다(8:7). 비록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내였지만 창기가 되었다(1:2, 2:2). 그녀는 하나님의 왕권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하나님을 남편으로 인식하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 자신이 보기에 옳은 것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었다. 원칙적으로 만일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왕 노릇 하시지 못하도록 하고, 각자의 뜻대로 행하며,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우상을 섬기며, 당을 지어서 나뉘고, 종파로서 하나님을 대치한다면 그 결과는 필경 이스라엘과 같을 것이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그분의 항상 있는 말씀에 따라 통치하셨으며, 또한 우림과 둠밈이 든 대제사장의 흉패(가슴받이)를 통해 계시되거나 혹은 하나님의 영께서 임하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내는 선지자를 통해 계시되는 그분의 즉각적인 말씀에 따라 통치하셨다(28:30, 8:8, 27:21, 33:8, 삼상 28:6, 2: 63, 7:65). 더 나아가 하나님의 통치는 대리인들을 통해 집행되었는데, 이들은 제사장들과 장로들, 재판관들과 혹은 직접적으로 행정을 집행하는 왕들이었으며, 하나님의 신정(神政)을 위해 함께 일했다.


신약 시대에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행정에 있어서 사도들의 가르침(2:42)이 율법을 대치하며, 교회의 장로들(14:23, 1:5)이 직접적으로 행정을 집행하는 이들로서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딤전 3:2, 5:17) 행정을 수행한다. 주님의 직각적인 말씀과 관련해서는 장로들을 포함한 그리스도 안의 모든 믿는 이가 하나님의 제사장들인데(벧전 2:5, 1:6), 그들 안에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고(8:1, 8:10), 성령께서 그들의 거듭난 영과 연합되시어(8:16) 우림과 둠밈의 기능을 대치하신다. 믿는 이들 가운데에서 선지자들과 교사들은 장로 직분과 제사장 직분을 돕는다(13:1-4).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수행된 하나님의 신정(神政) 안에는 제사장, , 선지자라는 세 직무가 있었다. 대제사장의 책임은 하나님의 백성에 관한 일들을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가져가 하나님께서 우림과 둠밈을 통해 즉각적으로 말씀하시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28:30). 그런 다음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결정과 지시사항들을 왕에게 전달하였는데, 하나님의 행정 안에서 왕의 책임은 그것들을 집행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과 왕들이 약하고 합당하지 않을 때마다 선지자들을 일으키시어 제사장의 직분과 왕의 직분을 강화하고 돕도록 그분을 위하여 말하게 하셨다(삼상 3:11-21, 삼하 12:1-25).


하나님의 백성의 신성한 통치 제도는 독재나 민주가 아니라 신정(神政), 즉 하나님 자신께서 그분의 존재에 따라 직접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모든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다. 간혹 독재주의도 있다. 교회마저도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다.


리의 정치적 사유를 훼방놓는 잘못된 번역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민주주의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정치용어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온갖 정치형태를 이론적으로 연구하기도 했고, 직접 현실 세계에서 폴리스의 단위로 실험하기도 했던 고대 그리스세계에서 정치형태를 가리키는 용어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일관성있게 주조되었다. 앞에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오고 그 뒤에 정치라는 뜻의 ‘cracy’가 따라 왔던 것이다. 어느 폴리스가 소수 귀족의 통치 하에 있다면, 그 정치체제는 귀족정치(aristo+cracy)로 불리었고, 오늘날의 경우와 유사하게 일부 재력가가 지배하는 정치체제라면 금권정치(pluto+cracy), 한 명의 폭군이 다스리는 경우에는 폭군정치(tyrano+cracy)로 불렸던 것이다.


그러니 ‘demo+cracy’가 어떻게 번역되어야 올바른지 명백하지 않은가. 민중정치라고 번역이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번역어는 우리 내면에 심겨진 그 민주적인 인상과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사유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데모크라시는 구체적인 정치체제인 것이지 어떤 추상적인 이론이나 학설이나 주의가 아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민중정치가 언어를 가지고 하는 전투였듯이, 오늘날의 민중 정치 역시 언어를 가지고 하는 전투여야 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즉 민중 정치는 언어로 선동하여 많은 표를 얻는 것이 당면 과제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평생에 걸쳐 데모크라티아(민중정치)를 오클로크라티아(어리석은 대중의 정치, 곧 우중정치)로 빠질 수밖에 없는 나쁜 정치체로 보았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신의 제자 플라톤의 손을 빌려 현명한 철학자 한 명이 다스리는 철인정치를 꿈꾸었다. 그러니 그는 민주주의자도, 인민주의자(Populist), 대중영합정치가(Popularist)는 더 더욱 아니었다. 여기에서 또 한 번 지적질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건, 우리는 포퓰리즘(Populism)을 포퓰라리즘(Popularism)의 의미로 둔갑시켜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가 사형에 처해지게 되는 배경을 우리의 민주화운동이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같은 맥락 속에 놓고 보게 되면 필연적으로 사태의 곡해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민주투사도 아니었고, 집회결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한 적도 없었다.

아테네 민중정치의 완성자 페리클레스가 그 도시를 휩쓴 전염병으로 쓰러진 후, 아테네의 직접민중정치는 선동정치가들의 출현으로 급격하게 우중정치로 타락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민중정치에 비판적이던 소크라테스는 30인 과두정치가 끝장나고 민중정치가 우중정치의 모습으로 회복되자 500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민중재판에서 반사회적 인물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반민중정치적 인물로 찍혀 사형언도를 받게 된 것이다. 그가 외래 신들을 불러들이고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내용은 단지 둘러대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절제력을 내팽개치고 사익만 앞세우는 민중, 즉 우중이 꾸려가는 정치체제는 그 자체가 재앙이다. 우리는 민중정치와 우중정치를 구별해서 보려고 하지 않고, 그 두 가지를 한결같이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민중정치와 우중정치의 합작인 민주주의는 교회 안에서는 독재와 마찬 가지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는 대다수가 민주주의를, 소수는 독재를 채택하고 있다. 신정(神政)을 하는 교회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오호 애재라.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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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1.06.07 21:44:22
*.182.156.212

논문을 쓰셨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신정은 본질이고 민주공화제는 형식이니까 이 둘을 양자택일로 보기는 힘들어요.

고대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신정을 전혀 다른 세상인 오늘에 끌어올 수도 없구요.

칼뱅이 제네바에서 신정을 실시했는데, 

의도는 좋았으나 결국은 장로를 중심으로 한 교회 독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민주주의를 포함하여 어떤 정치 제도나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인류 역사 발전에서 볼 때 민주공화제가, 즉 민주주의가 현재로서는 최선이 아닐까요?

교회에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목사나 장로가 기도 응답을 받는 방식보다는

교인총회를 열어 교인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눈 다음에 다수결로 정하는 방식이 낫지 않나요?

만장일치면 더 좋으나 아니면 다수결인거지요. 그 결과에 다 승복하면 됩니다.

위 글을 읽었으나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신정이 뭔지 손에 잡히지 않는군요.

지금도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기도한 후에 제비뽑기(행 1:26)로 결정한다는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신정이 어떤 건지 간략하게나마,

예배 처소문제를 해결해야 할 대구샘터교회를 예로 들어서 설명해주시면 어떨지요.

우리는 그 문제를 민주주의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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