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갑자기 눈높이에서 진한 붉은색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색깔이 보일 철이 아니기에 자세히 보니

장미 한 송이가 철없이피어있었다.

모든 나무와 풀이 색을 잃어가는 지금

저렇게 붉디붉은 원색을 홀로 찬란하게 펼치는 몸짓은

철없는 게 아니라

자신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용기인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걸쳐서 한 잎 두 잎 껍질을 벗듯

자기의 모든 잎을 떨어내고 며칠 지난 오늘 아침

테니스장에 가려고 현관문을 나서자

반대쪽 가지에,

그러니까 눈에 더 잘 들어오는 방향의 가지에

이전보다 더 또렷하고 더 붉은 장미꽃이 달린 게 아닌가.

예기치 못한 기쁨’(C.S. 루이스)이 연달아 찾아오다니,

쓸데없는 걱정, 미움, 무시, 자랑질은 다 버려도 된다는

그분의 친절한 속삭임이다.

11.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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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2024.11.12 08:54:36

와! 눈이 확 맑아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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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24.11.12 19:54:59

황홀한 순간은 지구에 꽉차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걸 존재의 빛이라고 해야할는지,

창조의 빛이라고 해야할는지,

사랑이 빛이라고 해야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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