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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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아를 처음 대하는 기존 보수교회 신자들이 가장 먼저 겪게 되는 당황과 혼란은 성경을 해석하는 시각이 상당히 다르다는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보수교회의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문자주의적 해석에 익숙해져 있던 저에게도 정 목사님이 주장하시는 인문학적인 성경읽기(해석)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정 목사님의 설교에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다가도,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이 진짜로 일어난 사실이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의 신앙고백이라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아! 이거 내가 너무 멀리 나가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밀려 오는게 사실입니다.
정 목사님도 이러한 상황을 아시고, 여러 가지 비유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시의 세계에 들어가야 시의 리얼리티가 보인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아야 한다... 등으로 표현하셨고 <시와그림>님은 피카소의 그림을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시나 그림에 문외한인 저에게는 완전히 와 닫지는 않는게 사실입니다. 뭔가 희미하게 알거는 같은데, 딱히 잡히지는 않는 답답한 심정이었죠.
그래서, 제 수준에 맞는 예(비유)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여기 어떤 사람이 부시라는 실존 인물을 2차원 평면 이미지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진이 있을 수 있고, 커리커쳐를 그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 위에 부시라는 인물(하나님의 세계)을 나타내는 두 가지의 이미지(성경)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시각에 따라서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1) 자유주의자, 역사적 예수학파, 진화론자 들은 성경이 커리커쳐 같은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대에는 사진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부정확한 그림으로 나타낼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을 그대로 실체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 그림을 바탕으로해서 다른 많은 정보들을 사용해서 사진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자 합니다. 사진만이 실체를 나타내는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귀와 입의 크기를 현실적으로 줄이고 재구성하여 낸 이미지가 부시의 실체(리얼리티)에 가장 가깝다고 주장합니다.
2) 문자주의는 성경이라는 이미지가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만이 실체(리얼리티)를 나타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유주의자들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들이 사진이라고 믿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 커리커쳐입니다. 그들은 커리커쳐를 사진이라고 생각하고, 귀의 크기, 입의 크기등이 실제 부시의 얼굴과 동일하다고 주장합니다.
3) 인문학적 성경 읽기는 성경을 커리커쳐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커리커쳐가 사진보다 더 정확한 실체(리얼리티)를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2차원적인 이미지인 사진은 그것이 아무리 정밀하여도 3차원인 인물과 그 인물의 성격, 살아온 인생등을 도져히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반면에 커리커쳐는 그 인물의 특징을 잡아내고 적절한 과장을 통하여 그 인물의 성격과 인생까지도 담아낼 수 있어서 리얼리티를 가장 근접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커리커쳐를 통하여 리얼리티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해석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림이 그려졌던 그 당시에 그 문화의 사람들에게는 귀가 크고 눈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내어서, 이 인물이(부시) 경솔하고, 우수꽝스러우며, 어리석다는 사실(리얼리티)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위의 설명들이 정치적으로 정확치 않으며, 인문학적 성경 읽기의 입장에서 쓰여 졌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깊은 공부 없이 어깨너머로 들은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비유입니다. 틀린 점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덧글을 통하여서 정확하게 지적하여 주시고, 고쳐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아직 무언가 걸리는 것들이 있다는게 내 신앙의 변이가 일어난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왜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헤어나지 못하고 사람들은 쉽게 광분할까요?
예수님께서 배척당하신 이유도 그런 마음의 걸림들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전 다비아 와서 ? 표만 잔뜩 늘었는데... 영혼의 자유함을 찾는 기분입니다.
다소 걸리는 부분도 넓은 마음으로 조금 기다려 본다면
무언가 찾아 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합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는 눈의 비늘 같은 것을 벗는게 이런거 아닐지요?
아무튼... 이글 추천 100번 해드립니다...
저자권료 없이 무단 전제 좀 하겠습니다.
내용이 좋으니 일단 쓰고 보겠습니다.
오늘 다비아 접속 한번으로 하루의 보람이 생기네요.. ㅋㅋㅋㅋ ㄳㄳ
왜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헤어나지 못하고 사람들은 쉽게 광분할까요?
예수님께서 배척당하신 이유도 그런 마음의 걸림들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전 다비아 와서 ? 표만 잔뜩 늘었는데... 영혼의 자유함을 찾는 기분입니다.
다소 걸리는 부분도 넓은 마음으로 조금 기다려 본다면
무언가 찾아 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합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는 눈의 비늘 같은 것을 벗는게 이런거 아닐지요?
아무튼... 이글 추천 100번 해드립니다...
저자권료 없이 무단 전제 좀 하겠습니다.
내용이 좋으니 일단 쓰고 보겠습니다.
오늘 다비아 접속 한번으로 하루의 보람이 생기네요.. ㅋㅋㅋㅋ ㄳㄳ
안녕하세요 시드니님!
오랫만에 사랑방에 훈훈한 온기가 도는군요 그런데 저는 '초'면에 실례를 무릎쓰고 '초'치는 이야기를 할까합니다 너무 허물하지 말아주십시요
먼저 우리에게 '지성'을 주시어 다비아라는 공간에서 만나게 해주신 창조주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지성'을 소유하였기에 가능한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창조주께서 허락하신 한계가 있다고 믿습니다 성경이 비유적으로 씌어졌든지,직설법으로 씌여졌든지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진실'을 우리의 얄퍅한 지성으로 알아낼 수 있을까요? 또한 알아낸들 창조주의 구원섭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인문학적 성서읽기'로 많은 부분을 해명할 수는 있겠지만,자칫 대중들에게 '지성의 오남용'이라는 비판을 받을까 염려됩니다
예를 드신 홍해사건이나 처녀 임신사건,광야 방황사건등 성경기사마다 사실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그러한 사건이 사실이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전제하는 것입니다
만일,성경기사의 사실여부가 의미있는 일이 아니라면,그것을 사실로 치부하고 논의를 계속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부시의 사진으로 돌아가서
성경기사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알수 없다면
성경기사가 오른쪽이라는 대중들의 믿음을 허무는 일보다는
부시가 나쁜놈이라는 메세지에 집중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사용하여 부시가 왜 왼쪽 얼굴만 들이대는지 혹은
목에 매단 섬유질의 조각은 무엇인지를 알아낼수는 있습니다만
알려진 사진기법은 19세기의 것이므로 20세기 사람인 부시의 얼굴이 아니다는 식의 논의는
혼란만 가중시킬뿐,'인문학적 성서읽기'의 가치를 제고시키지는 못한다고 봅니다
오랫만에 사랑방에 훈훈한 온기가 도는군요 그런데 저는 '초'면에 실례를 무릎쓰고 '초'치는 이야기를 할까합니다 너무 허물하지 말아주십시요
먼저 우리에게 '지성'을 주시어 다비아라는 공간에서 만나게 해주신 창조주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지성'을 소유하였기에 가능한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창조주께서 허락하신 한계가 있다고 믿습니다 성경이 비유적으로 씌어졌든지,직설법으로 씌여졌든지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진실'을 우리의 얄퍅한 지성으로 알아낼 수 있을까요? 또한 알아낸들 창조주의 구원섭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인문학적 성서읽기'로 많은 부분을 해명할 수는 있겠지만,자칫 대중들에게 '지성의 오남용'이라는 비판을 받을까 염려됩니다
예를 드신 홍해사건이나 처녀 임신사건,광야 방황사건등 성경기사마다 사실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그러한 사건이 사실이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전제하는 것입니다
만일,성경기사의 사실여부가 의미있는 일이 아니라면,그것을 사실로 치부하고 논의를 계속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부시의 사진으로 돌아가서
성경기사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알수 없다면
성경기사가 오른쪽이라는 대중들의 믿음을 허무는 일보다는
부시가 나쁜놈이라는 메세지에 집중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사용하여 부시가 왜 왼쪽 얼굴만 들이대는지 혹은
목에 매단 섬유질의 조각은 무엇인지를 알아낼수는 있습니다만
알려진 사진기법은 19세기의 것이므로 20세기 사람인 부시의 얼굴이 아니다는 식의 논의는
혼란만 가중시킬뿐,'인문학적 성서읽기'의 가치를 제고시키지는 못한다고 봅니다
청개구리님, 제가 이해를 잘 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초를 치시는게 아니라
같은 얘기를 하시는 것 같은데요.
정목사님의 설교를 보시면 아시지만, 목사님도 기적이나 동정녀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시인하시지도 않구요. 다만 거기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 뒤의 메시지에 귀를
귀울이시는 것이지요.
제가 만든 비유에서, 우리가 부시 얼굴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그의 성향이나 인간성에
관심을 두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일반 신자들이 성경의 사건들을 사실로 믿는 것 자체가 해롭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다만, 거기에 너무 집착하는 나머지, 진짜 영적인 메세지를 놓치고, 말씀을 엉뚱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저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이것에 대해서 묵상을 했는데요,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이신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세계(뜻, 메세지..)가
인간의 사건과 언어로 육화(물질화)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육체에(얼굴이 어떻게 생겼으며, 몸무게, 키가 얼마고, 뚱뚱한지...)
관심을 쏟기 보다는, 그분의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이듯이, 성경본문도 사건 그 자체나 언어적인 것에서
눈을 떼고, 그것 넘어서 뒤에 있는 영적인 리얼리티에 관심을 쏟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같은 얘기를 하시는 것 같은데요.
정목사님의 설교를 보시면 아시지만, 목사님도 기적이나 동정녀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시인하시지도 않구요. 다만 거기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 뒤의 메시지에 귀를
귀울이시는 것이지요.
제가 만든 비유에서, 우리가 부시 얼굴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그의 성향이나 인간성에
관심을 두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일반 신자들이 성경의 사건들을 사실로 믿는 것 자체가 해롭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다만, 거기에 너무 집착하는 나머지, 진짜 영적인 메세지를 놓치고, 말씀을 엉뚱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저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이것에 대해서 묵상을 했는데요,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이신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세계(뜻, 메세지..)가
인간의 사건과 언어로 육화(물질화)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육체에(얼굴이 어떻게 생겼으며, 몸무게, 키가 얼마고, 뚱뚱한지...)
관심을 쏟기 보다는, 그분의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이듯이, 성경본문도 사건 그 자체나 언어적인 것에서
눈을 떼고, 그것 넘어서 뒤에 있는 영적인 리얼리티에 관심을 쏟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정목사님이 자주 언급하시는 리얼리티란 무엇인가에 대한 탁월한 눈높이 교육이네요.
재미있는 사진과 요점을 콕 찍어내는 비유, 아주 잘 보았습니다. 감사해요.
음... 사족을 덧붙이자면 왼쪽 그림의 캐리커처만으로 설명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어짜피 같은 성경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차이이니까요.
캐리커처를 사진으로 보는 사람들은 캐리커처의 사람이 '왜 이렇게 생겼을까?'를 고민하고
캐리커처를 그림으로 보는 사람들은 캐리커쳐의 사람을 '왜 이렇게 그렸을까?'로 고민하겠지요.
캐리커쳐를 보니 장난기가 좀 발동해서 한줄 토크로 이 두 진영의 사람들을 구분해 봤습니다.
<왜 이렇게 생겼을까?> 진영
- 하나님은 왜 이런 사람을 만들었을까? (보수신학자)
- 그때는 저렇게 생긴것이 과학적으로 옳다. (창조과학자)
- 멋있다. 나도 저렇게 생기고 싶은데... (일반 성도)
-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면 저렇게 생길 수 있습니다. (세속목회자)
-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저렇게 얼굴이 변합니다. (조엘 오스틴)
<왜 이렇게 그렸을까?> 진영
- 그림솜씨가 형편없는 걸보니 하나님이 그렸을리 없군! (안티기독교)
- 실제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역사적예수 연구자)
- 그림이 이상해, 무슨 음모가 있을꺼야 (각종 코드론자/음모론자)
- 저 나쁜 X 밑에서 고생하는 사람을 해방시키는게 하나님 뜻이야 (민중/해방신학자)
- 화가(하나님)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인문학적 성서읽기)
그냥 한번 웃으시라고 재미로 만든 것이니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구요^^;;;
캐리커쳐 주인공의 완전한 모습(리얼리티)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쨘~하고 보여주시겠죠.
재미있는 사진과 요점을 콕 찍어내는 비유, 아주 잘 보았습니다. 감사해요.
음... 사족을 덧붙이자면 왼쪽 그림의 캐리커처만으로 설명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어짜피 같은 성경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차이이니까요.
캐리커처를 사진으로 보는 사람들은 캐리커처의 사람이 '왜 이렇게 생겼을까?'를 고민하고
캐리커처를 그림으로 보는 사람들은 캐리커쳐의 사람을 '왜 이렇게 그렸을까?'로 고민하겠지요.
캐리커쳐를 보니 장난기가 좀 발동해서 한줄 토크로 이 두 진영의 사람들을 구분해 봤습니다.
<왜 이렇게 생겼을까?> 진영
- 하나님은 왜 이런 사람을 만들었을까? (보수신학자)
- 그때는 저렇게 생긴것이 과학적으로 옳다. (창조과학자)
- 멋있다. 나도 저렇게 생기고 싶은데... (일반 성도)
-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면 저렇게 생길 수 있습니다. (세속목회자)
-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저렇게 얼굴이 변합니다. (조엘 오스틴)
<왜 이렇게 그렸을까?> 진영
- 그림솜씨가 형편없는 걸보니 하나님이 그렸을리 없군! (안티기독교)
- 실제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역사적예수 연구자)
- 그림이 이상해, 무슨 음모가 있을꺼야 (각종 코드론자/음모론자)
- 저 나쁜 X 밑에서 고생하는 사람을 해방시키는게 하나님 뜻이야 (민중/해방신학자)
- 화가(하나님)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인문학적 성서읽기)
그냥 한번 웃으시라고 재미로 만든 것이니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구요^^;;;
캐리커쳐 주인공의 완전한 모습(리얼리티)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쨘~하고 보여주시겠죠.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라는 말이 생각이 나요... 자유주의나 문자주의는 양 극단처럼 보이지만, "사실성"에만 함몰되는 점에 있어서는 공통 분모를 가진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