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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s 517
샬롬!
글쓰기 없이 이곳에서 지난해부터 방문하였습니다.
처음 설교비평을 읽다가 눈을 상한 것도 같구요.
계속 두리번 거리면서 두루두루 어렵고도 은혜로운 글 공부를 하였죠.
혼자 보기가 아까우면 신학공부를 하는 다른 교우들에게 전달해 주기도 합니다.
지금도 이곳의 공부는 매우 유익한 저의 日常입니다.
그냥 진행하려다보니 한가지 여쭙고 가야만 할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은 모르면 그냥 넘어가고 깨달으면 감격하고 은총이려니
하는데 동성애에 관한 글은 묻고 싶군요. 처음 글인데
결레가 되지는 않겠지요?
줄곧 정목사님의 글들을 읽다 보면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말로 그러한지요? 그렇다면
정목사님의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견해가 어떠하신지
선명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만 다른 분들의 리플은 하지말아 주세요.
좋은 하루되시기를 빕니다.
글쓰기 없이 이곳에서 지난해부터 방문하였습니다.
처음 설교비평을 읽다가 눈을 상한 것도 같구요.
계속 두리번 거리면서 두루두루 어렵고도 은혜로운 글 공부를 하였죠.
혼자 보기가 아까우면 신학공부를 하는 다른 교우들에게 전달해 주기도 합니다.
지금도 이곳의 공부는 매우 유익한 저의 日常입니다.
그냥 진행하려다보니 한가지 여쭙고 가야만 할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은 모르면 그냥 넘어가고 깨달으면 감격하고 은총이려니
하는데 동성애에 관한 글은 묻고 싶군요. 처음 글인데
결레가 되지는 않겠지요?
줄곧 정목사님의 글들을 읽다 보면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말로 그러한지요? 그렇다면
정목사님의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견해가 어떠하신지
선명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만 다른 분들의 리플은 하지말아 주세요.
좋은 하루되시기를 빕니다.
2008.05.24 12:35:01
정목사님,
먼저 빠른 답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 의견은 그렇군요. 분명하시군요.
사실 동성애(창19장, 레18,20장, 롬1장, 고전6장...)에 대하여 성경은
단호하게 죄로 단정하고 있고,
이를 불순종하여 성적타락 결과가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진리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래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 생경함과
과부하가 걸립니다.
시대 풍조와 환경이 바뀌면 인간의 역사는 변하여도
하나님의 역사는 진리 가운데 변하지 않겠지요.
변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역사이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역사가운데 도도하고도
맥맥하게 흐르는 그분의 숨결을 느껴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진리앞에서 정직하게 동의하고 오류와 왜곡된 삶을 조정하며
말씀에 따라 진실하게 살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영으로 임하시고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모르는 부분들을 깨닫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정목사님의 다비아의 글들을 신뢰와 존경으로 겸손히 배우며
많은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방문하였을 때는 용어 인식이 생소한 부분이 있었지만
배우는 즐거움이 큽니다.
신학자들이 교단과 교회와 타협하지 말고 올곧게 복음진리를
가르치고, 설교자들이 정직하게 성경말씀을 선포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많이 세움받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심을 나타나게 하시고,
말씀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 하시고,
교회가 주님의 거룩한 공동체로 회복되기를.
목사님, 늘 건강하시고
좋은 밤 되세요.
먼저 빠른 답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 의견은 그렇군요. 분명하시군요.
사실 동성애(창19장, 레18,20장, 롬1장, 고전6장...)에 대하여 성경은
단호하게 죄로 단정하고 있고,
이를 불순종하여 성적타락 결과가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진리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래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 생경함과
과부하가 걸립니다.
시대 풍조와 환경이 바뀌면 인간의 역사는 변하여도
하나님의 역사는 진리 가운데 변하지 않겠지요.
변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역사이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역사가운데 도도하고도
맥맥하게 흐르는 그분의 숨결을 느껴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진리앞에서 정직하게 동의하고 오류와 왜곡된 삶을 조정하며
말씀에 따라 진실하게 살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영으로 임하시고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모르는 부분들을 깨닫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정목사님의 다비아의 글들을 신뢰와 존경으로 겸손히 배우며
많은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방문하였을 때는 용어 인식이 생소한 부분이 있었지만
배우는 즐거움이 큽니다.
신학자들이 교단과 교회와 타협하지 말고 올곧게 복음진리를
가르치고, 설교자들이 정직하게 성경말씀을 선포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많이 세움받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심을 나타나게 하시고,
말씀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 하시고,
교회가 주님의 거룩한 공동체로 회복되기를.
목사님, 늘 건강하시고
좋은 밤 되세요.
안녕하세요?
다비아의 글에서 도움을 받으신다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런데 동성애 문제에서 딱 걸리시지요?
저의 생각은 이미 여러 글에서 밝혔습니다.
동성애만을 주제로 한 긴 글도 있어요.
아마 확인해보셨을 거라고 봅니다.
다비아 초기 화면의 <검색> 창을 통해서
그 글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그 내용을 여기서 길게 반복할 필요는 없겠지요.
광야 님도 그걸 원하는 게 아니라
나의 개인적인, 아주 분명한 입장을 직접 듣고 싶으시다는 거겠지요.
이런 예민한 주제는 오, 엑스로 답하기 힘들답니다.
그래도 광야 님이 그걸 원하시는 것 같아서
다른 다비안들의 오해를 무릎쓰고 직답을 해야겠군요.
저는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분명히 그걸 죄로,
또는 죄의 결과로 말하고 있긴 합니다.
구약과 신약 모두 그렇습니다.
성서에 열거되었다고 해서
그걸 오늘 우리의 삶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런 문제는 성서론에 대한 것인데,
그것을 여기서 상론할 수는 없겠지요.
짧게만 한 마디 드릴께요.
성서는 그 당시의 도덕관과 윤리관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돼지고기도 먹지 못하게 했지요.
여성들의 달거리도 부정하게 보았지요.
선천적 장애와 질병을 모두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 중요한 것은
이런 당시의 도덕관과 우주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전하려는 핵심을 포착하는 것이랍니다.
그 핵심은 당연히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 그의 종말론적 통치이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성서의 동성애 비판은
그렇게 본질적인 것이 아니랍니다.
이성이냐 동성이냐를 불문하고
성(sexuality) 문제는 우리가 뭐라 말하기 힘든
인간의 독특한 생명 현상입니다.
난폭하다 할 정도로 표출되는 성적 에너지가 없었다면
인간이라는 종은 이미 끝장 났겠지요.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성윤리를 강의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성과 생명의 관계를 아는 게 필요하다는 것만 지적하는 겁니다.
청소년들에게 어느 정도의 성교육이 필요한지,
그들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어떻게 처리하게 도와야 하는지,
이런 건 어떤 수치로 계량되는 건 아니에요.
미국 청소년들과 우리의 청소년들의 상황이 다르구요.
이슬람 문화권은 더 다르겠지요.
남녀칠세 부동석이 더 바람직한 윤리일까요?
혼전 성행위를 우리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이런 문제는 시대와 그 문화에 따라서 달라지는 겁니다.
우스개 소리로
청교도들에게는 성행위에서도 청교도 자세가 있다고 하네요.
제 이야기가 너무 옆으로 많이 흘렀군요.
동성애자들은 성적 소수자들입니다.
그들의 성적 정체성을 저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이요.
저는 왼손이 불편한데
어떤 사람은 그게 편하다는 데 어쩌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린다거나
자식을 낳지 않게 된다거나
성적으로 문란해진다는 주장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려면 또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제가 더 설명해야 하나요?
광야 님,
이 문제가 마음에 걸려도
걱정하지 말고 다비아를 신뢰해도 좋습니다.
질문하실 게 있으면
얼마든지 주세요.
주의 은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