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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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윤구병 선생님의 "잡초는 없다"라는 책일 읽고 있습니다.
철학을 가르친 대학교수가 50살이 되어 교수직을 그만두고 변산에서 몇 가정과 공동체와 학교를
일구며 농사를 짓고 있는 분입니다.
일전에 손석희 시선집중에서 인터뷰하는 내용을 들은적이 있는데
자기 형제들이 총 9명인데 부모님께서 일병에서 구병까지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6.25 전쟁에 형제들은 모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잡초는 없다" 대목 중에 참된 시인이란?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변산 가는 버스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면서 시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시인이란 무엇일까? 시인은 낡은 말과 글의 굳어져버린 껍질을 깨고, 말과 글, 그리고 거기에 비친
생각과 느낌의 결을 드러내고, 그 생각과 느낌을 뒷받침하는 삶의 새순을 키워내는 사람이다.
죽어버린 말과 글의 질서에 매달려 예쁜 시어로 꾸미거나 하는 사람은 참 시인이 아니다.
참 시인은, 비유하자면 운수 행각을 하는 떠돌이 중이나 제대로 농사짓는 농부와 같은 사람이다.
운수 행각을 하는 중들은 이틀밤을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느다. 벌써 하룻밤을 지나면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이
낯익은 것으로 바뀌어 있고, 그렇게 되면 주변 사물에 관심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늘 낯선 것 사이에서 온몸과 마음을 활줄처럼 팽팽하게 긴장시켜 주위의 모든 것에 주의 깊은 관심을
기울여 접촉하는 자세, 새롭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늘 자신을 내던지는 것,
그렇게 해서 온몸과 가슴이 새로움으로 가득차게 함, 이것이 길 걷는 사람의 마음가짐이고 시인의 눈이다.
삶은 늘 새로운 것이다. 낯익은 것, 편안한 것, 익숙한 것이 생겨난다는 것은 머문다는 것,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느슨해진다는 것, 타성에 젖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죽음에 길든다는 것이다. 어린애의 눈은 늘 호기심에 가득차다.
살아 있다. 이 눈을 가져야 시인이 될 수 있다. 늘 새로운 느낌,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사람이 시인이다.
참 농사꾼도 마찬가지다. 진짜 중도 마찬가지고....그런데 이 깨우침의 노래는 낡은 말과 글의 질서 속에서 말뜻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뜻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고, 우리가 알고 있는 논리나 사고나 느낌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순과 표현으로 가득차 있다.
삶의 흐름이란 그런 것이다.
순간 순간 비약이고 창조이다. 이미 만들어진 어떤 그물로도 그 살아뛰는 고기는 건져올릴 수 없다.
사랑이 삶의 궁극 표현인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비친 세상은 사랑이 없는 사람의 눈에 비치는
세상과 딴판이기 때문이다. 낯설게 만들기, 낯선 세상 속으로 나그네로 살아가기,
끊임없이 사랑 속으로 일을 놀이로 만들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상처와 고통을 온 가슴으로 끌안기.
<74-75>
아, 오늘 하늘도 새로운 느낌,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로
힘차게 출발해야 겠다.
오늘을 산다는 것이 말할수 없는 축복의 시간인을 고백하는 하루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이들과 남해 금산에 산행하기고 했네요..아이들이 산에 가는 재미를 느낀 모양입니다.
2013. 2.27
다 이름이 있어요 이름이 없는 존재자를 만나거든 이름을 붙여주세요.
산책을 다니면서 제가 만나는 식물들 곤충들 새들 나무들 정말 아는게
몇가지 없더라구요. 핸폰으로 사진을 찍어 가지고 돌아와 식물도감을,
인터넷을 뒤져서 이름도 알아가고 특성도 알아가고
다음번에 그들을 만났을 때 느낌이 다름니다. 요즘 겨울에는 쌍안경을 갖고 다닙니다.
새들을 주로 관찰하고 그들과의 만남을 시도해 보는데 내겐 너무 먼 당신!
아이들이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니 참 반가운 소식이네요.
우리들이 아이들의 시선을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요즈음 아이들이 나이가 점점 낮아진다고 하드라구요 에전에 미운 일곱살 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미운 세살이라나요.
오늘도 좋은 만남 많이 가지시고 행복한 시간되세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