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깊이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와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 감상-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정도의 평상심으로 세상을 살고 싶다. 종종 나는 생각한다. 목사의 영성이 시인의 영성보다 못하다고 말이다. ‘곤히 잠들고 싶은’ 마음은 곧 안식에 대한 갈망이리라. 자신을 흙으로 낮출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안식이다.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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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의자

2014.02.02 02:00:48

목사님!

 

시 전문 계간지 시평이나 시인세계등이 잇단 폐간되는걸 보면 시를 쓰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시잡지와 시집을 사서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것 같습니다.

 

목사님께 시 배달 해드리고  숙면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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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생각을 켜놓은채 잠이 들었습니다.

 

                   <가을> 함민복   --------------------------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개

천둥 몇개

벼락 몇개

. . . .< 대추 한 알 > 장석주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새해 첫 기적.반칠환>

 

책속에 담겨있는 글밥으로 배불리 시간을 채울틈도 없는 하루였지만

곤히 잠들고 싶은 그 대목이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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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4.02.02 23:08:26

웨하스님,

정말 숙면하신 거 같군요.

이 시대 책읽기의 대세는 힐링 유인 것 같습니다.

그것도 영혼 중심의 힐링이 아니라

감정적 터치에 불과한 거지요.

그런 유의 책들을 다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거기에 대중들이 쏠린다는 게 좀 답답하게 느껴지네요.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긍정의 힘> 같은 거겠지요. 

웨하스 님이 배달해준 시,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한 주일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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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14.02.02 20:15:43

아~풍경의 깊이가 내면 깊숙히 전달되는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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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4.02.02 23:09:12

예, 저런 풍경의 깊이를 놓치지 말고 살아야 할텐데요.

가는데 까지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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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늘

2014.05.13 22:19:31

가슴이 설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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