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6일
위장조영검사
주일 저녁 밥 먹은 후에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오늘 있을 건강검진을 준비했다. 다들 알듯이 2년에 한 번씩 검진을 받아야 한다. 접수대에 섰다. 예약했냐는 물음에 아니라고 하자 예약 안 됐으면 위 내시경은 안 된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그건 할 생각이 없었다. 안내 팜프렛에 나와 있는 위장조영검사를 하겠다고 하자 약간 의외라는 표정으로, 또는 반가운 표정으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소변과 피 검사 등, 몇 군데 검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영상의학과 3번 방 앞 의자에 앉아 의사의 호명을 기다리면서 들고 간 문고판 조병화 시집에 나오는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를 읽었다.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였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것을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 우리 서로 마지막 할
말을 배우며 사세
의사가(촬영 기사인지도 모름) 나를 부르더니 대기 의자 옆에 있는 작은 창고로 들여보냈다. 바지까지 벗고 거기 있는 진찰복으로 갈아입으라는 것이다. 귀중품을 챙겨야 했다. 나는 위장조영검사가 간단할 줄 알았다. 탄산수와 분말약, 그리고 농도 짙은 주스 한 컵을 마셔야했다. 맛은 뻔했다. 닝닝했다. 다시는 마시고 싶지 않는 맛이다. 그것도 한 번에 마시는 게 아니라 검사 진행에 따라서 두 세 번에 나눠야 했다. 처음에는 큰 기계에 등을 기대고 섰는데, 그게 뒤로 넘어가면서 수술대 위에 누운 신세가 되었다. 유격 훈련받을 때처럼 좌로 두 번 굴러, 배를 불룩하게, 다시 내리고, 숨을 멈추고, 다시 쉬고, 좌로 20도 기울기, 엎드려... 등등의 여러 체위를 유지해야했다.
의사가(기사인지도 모름) 왜 조영검사를 하려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냥 한번 해보고 싶어서요, 라고 대답하자, 요즘은 이게 하향 추세이니 앞으로는 내시경으로 하세요, 했다. 내시경 기술이 더 앞선 건가요, 하고 묻자, 아무래도 직접 들여다보는 게 더 정확하잖아요. 다 끝내고 검사표를 처음 접수창구에 가서 제출하자, 사무 보는 분이 ‘조영검사 때 마신 약이 변비 우려가 있으니 물을 많이 드세요.’ 한다. 대장암 대변검사 용 대변을 일주일 안에 받아서 다시 그 병원에 들려야한다.
옛, 잘 알았습니다.
의사 선생님 조언에 따라서
2년 후에는 기필코 내시경 한번 해보겠습니다.
검사하는데 한분은 내 곁에서 조언을 주고,
한분은 유리창 너머에서 뭔가를 조작하더군요.
화면에 내 위와 목뼈와 흘러내리는 약물이 보이던데,
재미 있었습니다.
거의 끝날 때쯤 작은 소동도 일어났어요.
기계 한쪽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라구요.
두분이 하는 말이,
무슨 소리죠,
(소리나는 쪽의 아래를 들여다보면서)
잘 모르겠는데 뭔가 망가졌나 봅니다,
서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야기를 더 하더군요.
내 짐작에는 이 기계를 하두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거 같습니다. ㅎㅎ
위장검사를 받기위해 전날의 금식부터 접수대에서 서계시는 모습, 직원들과의 대화, 마시는 음료한잔(진짜 먹기 괴로운)복장과 여러체위들..을 상상해 보는데..작은 웃음이 지어집니다. ㅎ
전 내시경이란 검사는 한번도 해본적 없지만, 남에게 내속을 보인다는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듯..해요.
아주 절실하지 않으면 보이기 힘든.. ㅋ 저한테는 그래요..
내시경 검사하신분이 젤 위대해보입니다.ㅎㅎ
제 말은 목사님이 그렇다는 거죠.^^
정말 고생하신거 같아요..
시도 참 좋았어요.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 일세
작별을 하는 방법,절차,말을 배우며 사세"
두고갈 인생과 떠남에 대한 인생을 배우자..라는 글이 참 좋습니다.
목사님, 수고많으셨네요.
저도 얼마전 내시경을 했습니다.
제가 아는 의사는 조영검사나 내시경이나 다 장단점이 있으니
번갈아가며 하라고 하더군요.
단지 안과 단지 밖을 비유하면서요.
이제 나이가 있으니 매번 검사때마다 하나씩 걸리더군요.
그래도 목사님은 늘 건강해보여요.
결과를 기다리기 싫어 저는 개인병원에서 바로하고 바로 결과를 본답니다. ㅎㅎ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이대목이 마음에 닿습니다.
비오는 날입니다.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