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1일
삶의 블랙홀
블랙홀이란 단어가 설교 마무리 부분에서 스치듯이 나왔다. 묵시적 대파국을 당하지 않아서 우리들의 삶이 겉으로는 밝은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블랙홀처럼 어둡다는 뜻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일상만 보아도 이게 분명하다. 지난 11월13일 금요일 밤 프랑스 파리에서 대규모 테러가 일어나서 백 수십 명이 죽었고, 더 많은 이들이 중상을 입었다. 간발의 차이로 운명이 바뀐 이들이 적지 않다. 왜 그런 방식으로 운명이 바뀌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깜깜하고 아득하고, 그래서 블랙홀과 같다.
지금의 인류가 지구에 출현하게 된 데에는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 더 크게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공룡이 멸종했기 때문에 인간 종이 출현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아프리카의 지질학적 대변혁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앞으로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서 인간 종이 멸절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은 우리에게 블랙홀과 같다. 우주와 역사의 흐름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판단을 초월한다.
내 책상 위에는 컴퓨터를 비롯해서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널려 있다. 책과 책받침 대, 연필꽂이와 찻잔 등등, 책상 위가 늘 뭔가로 가득하다. 그것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신비 그 자체다. 자주 말했듯이 설교문을 출력한 A4 용지만 해도 그렇다. 저 용지가 내 책상 위에 놓이게 된 긴 여정을 추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종이의 궁극적인 미래도 나에게는 미궁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블랙홀에 빠져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출현까지도 우연이라고 보신다는 것이 좀 놀랍습니다.
일반적으로 목사님들에게서 듣기 힘든 이야긴데요 ㅎㅎ
말씀하시는 '우연' 과 '하나님의 섭리' 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