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루종일 하늘이 잔뜩 흐렸다.
눈발이 날린 건 아니고
눈싸래기가 약간 흩뿌렸을 뿐이다.
기온이 적당해서 쌓인 눈이 조금씩 녹았는데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과 마당에는 여전하다.
눈을 밟고 걷는 느낌이 황홀하다.
마당 눈 위에 찍힌 내 발자국이다.
뽀드득 소리가 나는 듯하다.
양반 걸음, 팔자 걸음이라 좀 우습지만
달에 찍힌 암스트롱의 발자국 못지 않게
거룩한 흔적으로 착각해도 좋다. ㅎㅎ
흔적은 오래 남는 거도 있고
빨리 없어지는 거도 있지만
결국에는 다 없어진다.
지구에 살았던 인간의 흔적도 언젠가는...
아래는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길이다.
눈을 다 쓸어야 하는데
설교 준비해야 한다는 핑계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길만 쓸고 말았다.
오른편은 오래된 폐가이고,
왼편이 우리집이다.
대원당길 111 표지가
조경석 위에 촌스럽게 붙어 있다.
아래 그림에 오늘 묵상의 주제가 담겨 있다.
몇번 여기에 올린 그림이기도 하다.
매실나무다.
부엌 겸 거실로 사용하는 공간의 동쪽 창문 아래
두 그루의 매실나무가 자란다.
50센티 미터쯤 되는 묘목을 심은 건데
지금은 듬직하게 자랐다.
봄이 되면 매화가 팝콘 터지듯이 필 것이다.
저기 보듯이 이미 꽃눈이 맺혔다.
매실은 사과나 배나무 벗나무와 마찬가지로
봄이 되면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그런데 꽃은 이미 지난 늦가을에 맺히기 시작해서
추운 겨울 내내 움추리고 있다가
따뜻한 바람(성령)이 오면 활짝 터진다.
대단한 열정이다.
그 현상은 성령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된다.
지금 저 매화에는 수백개의 꽃눈이 달려 있고,
물방울이 함께 사랑을 나누는 듯하다.
눈밭, 매실 꽃눈, 물방울, 겨울 회색 하늘,
고양이, 아래집 굴뚝의 연기, 눈 밟은 소리,
녹색이 더 짙어진 대나무, 눈 녹는 소리,
여러 종류의 새들, 마을 광장을 돌아가는 시외 버스...
이 모든 게 오늘 내 앞에서 벌어졌던
지구 한 모퉁이 원당의 한 모습이었다.
마술과 같은 순간들이다.
더 이상 무엇이 더 재미있는 게 있으랴.
가을에 계획했던 유럽 여행도 시시해지려고 한다.
1월 마지막 토요일 밤,
모두에게 평화가...
성령에 표현 중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성령에 흠뻑 젖는다고
목사님의 글을 보니 성령의 역사가 어느 일정한 부분에서만이 아닌
모든 곳에 흠뻑 젖어 있음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