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눈

Views 1385 Votes 0 2016.01.30 21:54:24

오늘도 하루종일 하늘이 잔뜩 흐렸다.

눈발이 날린 건 아니고

눈싸래기가 약간 흩뿌렸을 뿐이다.

기온이 적당해서 쌓인 눈이 조금씩 녹았는데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과 마당에는 여전하다.

눈을 밟고 걷는 느낌이 황홀하다.

IMG_0453.JPG

마당 눈 위에 찍힌 내 발자국이다.

뽀드득 소리가 나는 듯하다.

양반 걸음, 팔자 걸음이라 좀 우습지만

달에 찍힌 암스트롱의 발자국 못지 않게

거룩한 흔적으로 착각해도 좋다. ㅎㅎ

흔적은 오래 남는 거도 있고

빨리 없어지는 거도 있지만

결국에는 다 없어진다.

지구에 살았던 인간의 흔적도 언젠가는...

 

아래는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길이다.

IMG_0459.JPG

눈을 다 쓸어야 하는데

설교 준비해야 한다는 핑계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길만 쓸고 말았다.

오른편은 오래된 폐가이고,

왼편이 우리집이다.

대원당길 111 표지가

조경석 위에 촌스럽게 붙어 있다.

 

아래 그림에 오늘 묵상의 주제가 담겨 있다.

몇번 여기에 올린 그림이기도 하다.

IMG_0454.JPG

매실나무다.

부엌 겸 거실로 사용하는 공간의 동쪽 창문 아래

두 그루의 매실나무가 자란다.

50센티 미터쯤 되는 묘목을 심은 건데

지금은 듬직하게 자랐다.

봄이 되면 매화가 팝콘 터지듯이 필 것이다.

저기 보듯이 이미 꽃눈이 맺혔다.

매실은 사과나 배나무 벗나무와 마찬가지로

봄이 되면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그런데 꽃은 이미 지난 늦가을에 맺히기 시작해서

추운 겨울 내내 움추리고 있다가

따뜻한 바람(성령)이 오면 활짝 터진다.

대단한 열정이다.

그 현상은 성령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된다.  

지금 저 매화에는 수백개의 꽃눈이 달려 있고,

물방울이 함께 사랑을 나누는 듯하다.

 

눈밭, 매실 꽃눈, 물방울, 겨울 회색 하늘,

고양이, 아래집 굴뚝의 연기, 눈 밟은 소리,

녹색이 더 짙어진 대나무, 눈 녹는 소리,

여러 종류의 새들, 마을 광장을 돌아가는 시외 버스...

이 모든 게 오늘 내 앞에서 벌어졌던

지구 한 모퉁이 원당의 한 모습이었다.

마술과 같은 순간들이다.

더 이상 무엇이 더 재미있는 게 있으랴.

가을에 계획했던 유럽 여행도 시시해지려고 한다.

1월 마지막 토요일 밤,

모두에게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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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han

2016.01.31 10:19:42

성령에 표현 중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성령에 흠뻑 젖는다고

목사님의 글을 보니 성령의 역사가 어느 일정한 부분에서만이 아닌

모든 곳에 흠뻑 젖어 있음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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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1.31 21:10:09

그렇습니다.

성령은 생명의 영이기에

지구 전체,

우주 전체에서 활동한다고 봐야지요.

은나라

2016.01.31 23:59:00

성령은 믿는자의 삶속에서만 활동하신다고 생각했는데..

자연과 지구, 우주전체에서 활동한다는 것이 새롭습니다.

실제의 자연바람을 성령으로 표현하신것도..

항상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냥 쉽게 지나칠수 있는 자연의 생명현상까지도..

모두 성령의 신비한 활동으로 보시는 것이 신기합니다.

자연에 대한 목사님의 글을 볼땐.. 제가 글요정을 따라 다니는것 같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온 듯한 그런 느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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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2.01 12:21:43

'글요정'이라는 표현이 재미있군요.

사람들이 안보거나 못보던 것을

제가 요정처럼 요술을 부려서 보게 했다는 뜻이지요? ㅎㅎ

세상에 은폐된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게

시인들의 감수성이고 예술가들의 감수성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로 보는 신학자들의 감수성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저는 여전히 아마추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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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

2016.02.01 21:11:18

겨울 내내 숨어있던 봄이 2월의 추위속에서 자신의 계절이 머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는듯 합니다.

대구보다 원당이 2~3도 더 추운데도 눈꽃과 함께 매화의 봉오리를

동시에 보게 되니 자연은 신비 그 자체이군요...

앞으로 봄의 전령의 역할을 원당이 제대로 해줄 것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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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2.01 21:23:29

매화가 만개할 때 매화향을 맡으러면

대구샘터 교우들이 우리집에 한번 놀러오면 좋겠지요.

나중의 꽃보다 지금 저 작은 봉오리가 더 예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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