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7일
이사야와 예수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읽으신 이사야 선지자의 글은 소위 제3이사야의 것이다. 제3이사야는 기원전 538년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 20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선지자다. 당시 역사적 상황은 좋지 못했다. 예루살렘 재건과 성전 건축이라는 부푼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사야는 그들에게 메시아적 희망을 설교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메시아적 희망이 바로 이사야의 소명이었다.
예수님은 왜 저 구절을 읽으셨을까? 성경 두루마리를 맡은 사람이 이사야의 글을 건네준 것은 분명하지만 한 구절을 딱 집어서 준 것은 아니다. 예수님 자신이 사 61:1,2절을 택한 것이다. 이사야의 소명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밖에는 다른 대답을 찾을 수 없다.
이사야의 소명은 예수님의 전체 메시지와 행위의 근거인 ‘하나님 나라’에 닿아있다. 예수님은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자신이 나가야 할 방향을 찾았다. 그게 예수님에게 아주 긴박하고 절실했기 때문에 유대교의 전통이나 권력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성전이나 산헤드린 법정에서 예수님이 행한 말씀과 행동은 이런 관점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기본적으로 이사야가 선포한 것과 일치한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갇힌 사람의 삶이 회복되는 것이다. 그것이 복이고 구원이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했다. 예수 소명의 실패라고도 할 수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어느 한 궁극적인 사건을 경험함으로써 이제 예수 자체를 하나님 나라로, 그 나라의 완성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선포한 자가 선포의 내용과 일치된 것이다.
이사야는 예수보다 5백년 전 사람이니
예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그냥 자기들 선지자 전통에 따라서
정의롭고 공평한 세상을 선포한 거에요.
이사야를 잘 알고 있었던 예수는
이사야의 소명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자신도 그런 전통에 서 있다고 선포한 겁니다.
이런 문제가 복잡한 것은
예수의 생각과 예수에 대한 초기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서로 뒤섞여 있어서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도
그게 실제 예수님의 발언인지
아니면 제자들의 발언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한번 듣고 잊어버리는 게 최선입니다.
저도 그렇게 공부했습니다.
불연속성이라는 것은
이사야는 메시아적 소명이
예수에게서는 전혀 차원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예수가 바로 메시아였다는 뜻입니다.
제2 이사야가 아니라, 제3 이사야 아니었나요?? 오타인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