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9일
일용할 양식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주기도의 세 번째 항목이다. 이런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용할 양식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눈을 감으면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기도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가 정치 투쟁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모두에게,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일용할 양식이 보장되게 하려면 지나치게 많은 소유가 적절하게 분배될 수 있게 하는 어떤 강제적인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보장제도가 그 일환이다.
그런 정치 경제적인 문제는 그것대로 해결하면서 더 근본적으로 ‘일용할 양식’ 자체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한 끼의 식탁을 보라. 밥 한 그릇, 반찬 세 가지, 그리고 국이면 충분하다. 반찬 숫자를 더 줄여도 되고, 국이 없어도 된다. 절집의 식탁이 이런 점에서 모범적이다. 먹을 정도만 덜어서 깨끗이 먹고 남은 양념이나 찌꺼기는 물로 모아서 다 마신다. 설거지가 따로 필요 없다. 어떤 이들은 일일일식(一日一食)만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세상살이를 버텨내기는 어렵겠지만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는 삶은 배워야 한다.
생각을 조금만 정리하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데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0억을 가진 사람이나 무일푼인 사람이나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충분하다. 돈이 많기에 다른 사람보다 더 먹어야 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해서 더 많은 양식을 비축해봤자 살아있을 때 다 먹지 못하고, 결국 다 남기고 죽어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먹는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이런 말이 ‘공자 왈’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게 최선의 길이 아니겠는가. ‘일용할 양식으로 충분히 행복해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목사님께서는 교회의 정치투쟁에 대해서 찬성하는 입장이시네요~
또한 사회보장제도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국가주도적 사회보장제도에는 강제성이 따르게 마련인데..
그 강제성이라는 게 참 회의적입니다. 내 놓기 싫다는 걸 억지로 뺏어다가~ 그걸 다시 나눠야 한다는 게...
받는 사람들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좋을 껄~ 주면 더 달라고 아우성이고...
그래서 저는 국가보다 교회에서 희망을 찾고 싶습니다.
많이는 못나눠도 내 놓는 이는 기꺼이~ 받는 이는 감사함으로...
이런 단순한 주고받음의 원리가 실현됐으면 좋겠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기도를 하는데 대부분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하지요
'우리'에게라고 분명히 되어 있는데도요.
'우리'라는 공동체, 사회, 민족, 국가, 전 인류를 마음에 그리면서
주기도를 드려야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