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델리의 사람들-서론 및 바띠아편

인도의 길 조회 수 794 추천 수 0 2019.07.11 12:22:26

서론-이정표 있는 거리 델리

 

이리가면 고향이요 저리가면 타향인데

이정표 없는거리 헤메도는 삼거리길

이리갈까 저리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세갈래길 삼거리에 비가내린다.

 

바로가면 경상도길 돌아가면 전라도길

이정표 없는거리 저리가면 충청도길

와도그만 가도그만 반겨줄 사람없고

세갈래길 삼거리에 해가저문다.

 

 '내일은 미스 트롯'이 끝났다. 만이천명이 참가하여 6개월간 열띤 경합을 벌인 끝에 송가인이 제1대 미스트롯에 등극했다. ‘사랑이 사랑을 사랑하면 저 별처럼 빛날까요... 당신의 품안에선 나는 주연배우.’ 무명배우처럼 살았던 지난날의 모든 설움이 알알이 녹아내린 곡으로 전라도를 찍고 이제 대한민국을 찍었다.


  델리대학을 졸업하고 이런 저런 사유로 인도에 자리 잡은 삼십대 한 한국 청년의 마음도 찍었다. 주말 내내 인대 수술한 발목을 부여잡고 이 시리즈를 보았다. 종편 예능 18.1%를 찍는 여세를 몰아 '미스터 트롯'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미스터 트롯이 시작되면 이 글머리에 등장한 김상진의 '이정표 없는 거리'도 불릴까?


  델리의 거리 곳곳마다 인도 가로 세로 어지럽게 들어선 이정표가 있다. 가끔씩은 길 한가운데 또는 길 자체를 가로지른  그 이정표는 보행자의 불편함은 가볍게 무시한다. 이정표 확실히 있는 거리다. 인크러더블 인디아로 웃고 넘어가자.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이정표에 쓰인 4개의 언어다. 위로부터 힌디, 영어, 펀자비 그리고 우루두. 델리의 구성원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들이다. Road, Path, Marg가 아닌 lane에는 힌디와 영어로만 표기된 이정표가 서있다. 이정표에 펀자비와 우루두가 추가된 것에는 우리나라의 휴전선만큼이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몇 년 전 작고한 언론인, 작가, 정치인, 외교관으로서 명성을 떨쳤던 쿠슈완트 싱은 파키스탄으로 가는 열차란 작품에서 이 아픈 사연을 다루고 있다. 정치인들의 편의로 무자비하게 아무런 통보 없이 그어진 국경선으로 졸지에 길하나, 또는 강하나 사이에 두고 다른 나라사람이 되었다. 호숫가 수풀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 시크청년 주갓트 싱과 무슬림 소녀 눌란도 갈라서야만 했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동쪽 펀잡에 살던 무슬림은 파키스탄행 열차를 탔다. 서쪽 펀잡(아자드펀잡)에 살던 힌두들은 지금의 라즈파트 나가르, 다야난드 콜로니, 니자무딘지역에 터를 잡았다. 지주들은 이전 살던 곳의 땅 문서에 갈음하는 지역을 불하받아 그 난리 북새통 가운데서도 일어설 힘을 가졌다. 이 사람들이 피난할 때 묻어온 언어가 펀자비요, 우루두다.

델리 사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큰 이정표가 이 네 개의 언어라면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구분하는 이정표는 무엇일까? 인도에 조금 관심을 가진 사람은 카스트 또는 바르나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인도사회를 좀 더 톺아본 사람은 자띠라고 대답한다.


이 글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델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150여개의 성을 기반 한 단체로 구분한 글이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처음 와본 타향의 분위기에 얼떨떨해 하는 이들에게 이정표가 될게다. 한 걸음만 다가섰으면 꽃이 될 이웃을 알지 못해 오는 두려움으로 멀리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게다. 이글이 내 다시 이곳을 향하여 오줌도 누나봐라하고 이를 갈고 치를 떨며 인도를 떠나는 한국인들이 다시는 없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변의 인도인들을 이해하고 친구 삼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이건 인도건 선거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외치는 경제활성화, 돈버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속물인가?

 

성공한 바띠아

20년 전 네루플레이스 근처에 로열패밀리라는 한국 식당이 있었다. 재작년 난소암으로 소천하신 분이 남편과 함께 델리 사회에 개척한 식당 겸 게스트하우스였다. 델리에 사는 이들, 델리를 오가는 한국인 선교사, 사업가들은 한 번씩 들르는 명소였다.


당시 파릇파릇했던 비노드 바띠아, 이 사람이 이 회사의 설립을 도와주고 회계 문제를 관리해주었다. 로열패밀리가 그 이름 그대로 가족들이 와서 같은 또는 다른 이름으로 인도 전역에서 그 사업이 번창해 나갈 때 바띠아의 사업도 함께 번창했다. 윈윈하여 서로가 돈 많이 벌었다. 어떻게 아냐고? 전에 살던 집 근처에 또 집 한 채가 더 있더라. 지금도 델리에 사는 한국인 중 많은 이들이 이 가족과 안면을 트고 산다. 고개를 끄덕이시는 당신도 그 분이네. 아니면? 지금부터 아시면 된다. ~.


이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거의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왕족의 피가 섞여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의태자를 큰 형님으로 모시던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 영분공 김명종의 후손이다. 몇 대손인지는 한국을 떠난 지 오래 되어 잊어버렸다. 조상도 모르는 후레자식이 되었다.


바띠아의 조상

바띠아도 왕손이다. 코가 크고 잘 생겼다. 감이 딱 오지 않는가? 인도 원주민이 아닌 아리안의 후손이다. 리그베다에 나오는 다섯 부족의 맏형, 야두족의 후손이다. 아리안? 리그베다? 저자에게는 친숙한 언어지만 인도 새내기들에게는 이쯤에서 읽는 것을 멈추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 이쯤에서 저자는 인도에도 진출한 대교의 눈높이를 배워야 한다. 한 분의 독자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또 다른 눈높이를 가진 이들은 아래 두 세 문단은 주마간산 모드로 전환하셔도 된다.


먼저 아리안, 세계 경찰로 쓰고 깡패로 읽는 미국의 갑질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란의 친척이다. 보지 않는 과거, 기록에 확실히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100% 정설로 받아들이기는 그렇더라도 아리안의 이동설은 인도-유럽어족의 연구로 힘을 받아왔다. 16세기 중반 영국 제수이트 선교사들로부터 제기된 인도어와 유럽어의 유사성은 1813년 박학다식하였던 영국의사 토마스 영이 인도-유럽어란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됨으로서 그 연구에 불을 붙이게 된다.


이 설에 따르면 기원전 1800여년 카스피해 연안의 아리안족이 이동을 시작한다. 서쪽으로는 유럽으로 동쪽으로는 이란을 거쳐서 기원전 1500년 즈음 인도로 들어온다. 이 사람들이 인도대륙에 살고 있던 선주민들을 정복 또는 동화시켜가면서 자기네들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식에 활용되었던 찬가 모음집이 베다다.


가장 오래된 리그베다는 성가(리그) 경전(베다)이다. 제사를 인도하는 제관(호뜨리)이 신을 찬양하는 시 모음이다. 사마베다는 리그베다와 내용이 비슷하나 많은 신중 제사의 신 소마에 집중한다. (소마) 마시고 법열에 빠져 트로트를 신나게 부르다보니 이 사마베다는 인도 고대 음악연구에 아주 중요한 문헌이 되었다. 야주르베다는 홍동백서, 어동육서 등 제사의 법을 모아놓은 것이고 아타르베다는 수리수리마하수리 주문 모음집이다.


바띠아는 힌두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이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조상을 두고 있다. 그 뿐이랴. 후대 신들의 전쟁에서 천둥과 번개의 신 인드라를 꺾고 승자로 살아남은 목동신 크리슈나의 후손이기도 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지금은 33천에 이른다는 신들의 변천사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


바띠아는 라자스탄 자이살메르의 바트네르에 기원을 가진 라즈푸트 계급이다. 1003년에 가즈니의 마흐무드가 지하드, 성전을 빙자한 침략을 했다. 처절히 싸웠으나 패하고 비제 라이 왕이 죽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1391년에는 절름발이 왕 티무르가 바트네르 성을 공격해왔다. 치열한 전투끝에 둘 찬드 왕이 죽고 성은 약탈당했다.

전쟁의 불운, 참패의 수치, 왕조의 자부심, 진취적인 정신과 자유를 향한 갈망은 바띠아 가문을 늪지 뭄바이 관구의 해안과 라자스탄과 신드의 사막으로 몰아내었다. 이들은 펀잡, 구자라트, 라자스탄, 봄베이와 델리로 흘러 들어갔다.


문자

전에는 샤푸르, 젤람, 데라 이스마일 칸의 바띠아는 시알코트와 구즈란왈라의 동부지역으로부터 온 바띠아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전부 파키스탄 령 펀잡지역 도시 이름이라고만 알고 계시라. 그들은 친척들 사이에서는 펀잡어를 쓰고 다른 사람들과는 힌디와 우루두 또는 영어를 사용한다. 문자는 친척들과는 구르무키와 데바나가리, 외부인과는 데바나가리 또는 로마문자로 소통한다. 이전에는 다수의 바띠야가 페르시아 문자를 썼다.


다시 쉬어가는 페이지. 구르무키는 시크교 2대 성자 루구 앙가드가 데바나가리를 수정, 표준화하여 사용한 문자다. 펀잡어 공식 문자이며 시크교 경전인 구루 그란트 사힙도 이 문자로 쓰여 샹트 바샤-거룩한 언어로 대우받는다. 현대 구르무키는 35개의 원문자에 6개 추가 자음, 9개모음 발음구별기호, 2개의 비음 발음구별 기호, 이중자음 구별 기호 및 3개의 첨자로 이루어져 있다.


데바나가리는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가리라고도 한다. 데브가 신이고 나가르는 거처니까 신이 거하시는 문자가 된다. 오옴이란 글자하나에 우주를 품는 인도인들의 사상이 그대로 보인다. 인도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는 물론 인더스 문명에서 사용하던 문자다. 국립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아직 해독 불가이니 예외로 제쳐두자.


그 이후 인도대륙에서 1-4세기에 시작되어 7세기에 정착화된 브라미 문자가 바로 데바나가리의 아버지다. 120여개의 언어에 8억 이상이 사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채택된 문자중 하나다. 한글? 아쉽게도 7천만이다. 산스끄리뜨, 힌디, 네팔리, 팔리, 보즈뿌리, 차띠스가리, 하르얀비, 낙뿌리, 라자스타니, 마라띠, 카시미리, 꽁까니, 신디 등등에 쓰인다. 다시 말하면 데바나가리를 익히면 뭄바이, 네팔, 비하르, 라자스탄을 가든 이정표 읽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말이다.


갑자기 데바나가리를 배워보고 싶은 욕망이 확 당기는데 소피아선생이 운영하는 생수 어학원에 확 등록을 해버려? 좀 지나친 감이 있지만 구르무키를 익히면 바띠야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가족 또는 친척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구르무키까지는 좀 어렵더라도 데바나가리는 한번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의식주

남자들은 바지와 윗도리, 피자마와 구루따를 입고 여성은 사리, 블라우스, 살와, 카미즈와 두빠따를 착용한다. 그림을 참조하면 이해가 쉽다.


바띠아는 채식주의자도 있고 육식주의자도 있다.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은 밀, , 두류와 야채로 이루어져있다. 감자, 고구마, 생강, 당근 등 먹을 수 있는 근류는 다 먹는다. 우유와 유가공제품인 기, 빠니르와 각종 과일도 먹는다. 노인들은 보통 육식주의자들의 음식을 먹지 않으나 젊은 세대들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제외한 육식은 먹는다. 일부는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술을 마시고 담배도 피우며 빤을 씹기도 한다.

 

공동체와 구분

바띠아 공동체는 84개 씨족으로 이루어져있다. 여기에는 사친, 간디, 소니, 탁게, 바블레, 자그마나,시그왈레 등등이 있다. 결혼 연맹은 누크에 의해 조정된다. 바르나 제도에 대해 알고 있고 자신들이 크샤트리아 바르나에 속한다고 인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카뜨리 바로 아래 지위이며 아마도 아로라아래 일것이다. 공통의 부계(父系) 또는 선조를 지닌 파라사라, 삼라, 바라드와이, 데브다스 우다르반, 비쉬반, 마도바다와 같은 다양한 고뜨라가 있다.

 

짝짓기 함수

결혼은 같은 누크가 아닌 고뜨라와 했다. 선사시대부터 신드지방에서는 자기 이름외에 각 가족들은 뿌리라는 뜻의 누크가 있었다. 원래는 자신들의 카스트를 의미했다. 아리아인들은 한 지붕아래 사는 사람들을 또는 파리와르라고 했는데 누크를 통해 구별했다. 우리 이름의 향렬과 비슷하게 7대만에 이 누크가 돌아간다.


그 규모가 하나의 꿀 또는 파리와르 이상이 되자 이를 고뜨라라고 불렀다. 더 큰 마하꿀(maha kul)이 된거다. (go)는 암소고 뜨라(tra)는 우리, 암소 우리란 뜻이다. 이로 인해 누크를 알면 어느 고뜨라에 속했는지 알게된다.


결혼은 먼 친척간에 이루어진다. 처제나 형수의 동생과 결혼도 허용된다. 조혼 풍습이 있었으나 현재는 성인 결혼이 대세다. 배우자를 구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협상을 통해서 한다. 일부일처제가 가장 선호하는 혼인방식이다. 바띠아는 아내가 불임이거나 바람을 피우기 전에는 일생동안 첩을 둘 수 없다.


유부녀들은 신두르, 빈디, 발가락 반지, 코걸이 등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신두르는 진사(황화수은)로 만들어 이마로 시작하여 머리에 바른다. 정절이 위협받을 때 손바닥으로 그것을 쓸어 먹는다. 죽음으로 절개를 지키겠다는 우리나라로 치면 은장도쯤 된다. 이마 가운데 찍는 빈디는 리그베다에서 창조가 시작되어 완성되는 지점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요즘에는 그렇게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여성의 장식품이 되었다.


바띠아는 깐야단을 생활화하고 있다. 부모는 보석, 의류, 살림살이들과 그릇과 같은 지참금을 시집가는 딸에게 준다.

결혼후 거주지는 시부모와 동거하거나 분가한다. 이혼은 허용되나 매우 드물다. 부부중 어느쪽이든 간음, 불임, 가정폭력 또는 가정부적응의 경우에 법정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고 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혼할 수 있다.


만약 남편이 이혼소송을 제기할 경우 위자료를 지불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 어느쪽이든 책임을 져야 하며 유소년들은 어머니쪽으로 간다. 바띠아는 과부의 재혼을 허가하지 않는다. 남편 잘 모시라는 이야기다. 어쨋든 오늘 날에는 재혼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홀아비와 이혼한 남녀는 재혼할 수 있다. 이전에는 대가족이었으나 오늘 날에는 핵가족이 대세다.


약혼의례인 사가이(Sagai)는 결혼전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약혼은 일반적으로 불가역이다. 물릴 수 없다. 약혼식에서 양자는 사간(sagan)이라고 알려진 현금, 당과, 의류등 선물을 교환한다. 신랑 신부후보는 반지를 교환한다.

결혼은 춤추는 친구들, 친척들과 함께 백마타고 등장하는 바라트(barat)가 도착하는 신부집에서 거행된다. 결혼식은 성화 주위를 일곱 바퀴 도는 사뜨 페라(saat pheras), 신부의 가르마에 신두르를 바르는 것으로 진행된다.


결혼식 맨 마지막 절차인 사뜨 페라는 보통 새벽 2시경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했더라도 이것을 볼 기회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작년 히말라야 산자락 동네에서 지병으로 소천한 여인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 인도 여행기를 쓴 정무진 선생의 부인이었다. 이 부부도 20여년전 인도 친구의 도움으로 델리 니티박에서 사뜨 페라를 치루고 그 기도대로 잘 살고자 했다.


사뜨 페라는 말그대로 일곱바퀴다. 한바퀴 돌때마다 아그니 호뜨리(불을 관장하는 제관)이 범어로 신랑신부를 위해 기도한다. 먹거리, 영육간의 강건함, ,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자녀, 백년해로, 좋은 동반자로 살도록 하는 일곱 가지 기도는 동양의 수,,,강녕,자손중다(壽富 貴 康 寧 子孫衆多)의 오복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일곱 바퀴를 다 돌고 나면 신랑은 신부의 가르마에 신두르를 두른다. 친구과 친척들을 위한 잔치가 준비된다.


다음이 결혼식에서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인 비다이(vidaai)가 있다. 신부가 친정집을 떠나는 순간이다. 문턱을 넘어서며 신부는 머리위로 세 줌의 쌀과 동전을 던진다. 그동안 키워준 부모님께 드리는 보답이다. 부의 여신인 락시미가 자기가 떠난 친정집에 계속 머물러 축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비다이가 끝난 후 신부는 신랑집으로 간다. 환영식이 신랑집에서 열리고 결혼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가족관계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사이에 회피관계가 존재한다. 형수, 처제와 처남과는 농담 따먹기 할 수 있는 편한 관계다. 재산이 갈등과 대립의 주된 원인이 된다. 모든 자녀에게 부친의 재산이 동등하게 분배된다. 부친 사후 장남이 승계한다. 만약 아들이 없으면 아내나 조카가 재산을 승계한다. 여성은 가족 내에서 동일한 지위를 갖는다. 사회, 규례, 종교와 경제방면에 의견을 개진한다. 교육받은 일부 여인들은 직장을 갖고 가족의 수입에 기여한다. 일부는 또한 의사결정권을 갖고 가족 지출을 통제한다.

 

명명식(남까란)과 삭발식(문단)

바띠아 가족은 자녀 탄생 40일 후 남까란(Naamkaran)의식을 거행한다. 브라만 제사장이 의식을 위해 초빙되고 적절한 이름을 아기에게 준다. 몇 몇 부모는 별점을 준비한다. 하완친구와 친척들을 위한 잔치를 벌인다. 집이나 사원 또는 여타 종교적인 장소에서 문단(mundan)이 거행된다. 일부 가족은 아이가 3살 또는 5살 될 즈음에 문단을 거행하기 위해 바탈라 또눈 구루 바와랄로 데리고 간다.


여기서 다시 남까란이 뭐고 문단이 뭔고? 살짝 의문을 표현하는 이들을 위해 친절한 아제의 설명이 들어간다. 인도 인적자원부에서 외국인들을 위해 운영하는 힌디 어학원에서 힌디를 배울 때 가장 처음 배운 문장중의 하나가 압가 남 꺄헤?’. (Naam)은 이름이다. 흔들리는 몸짓에 지나지 않던 풀이 이름을 불러 주면 꽃이 되듯 인도인에게 이름은 무척 중요하다.


20169월에 시작하여 거의 2년 동안 스타플러스를 통해 안방극장을 달구었던 드라마가 있다. 이름하여 남까란. 힌두 시어머니가 무슬림 며느리를 인정하지 못하고 손자가 태어나자마자 며느리를 병원에서 베개로 눌러 질식사 시킨다. 아기의 이름을 아만에서 아몰로 바꾼 후 키운다. 세월이 지나 그 아몰이 이 진실을 알고 할머니를 불태워 복수하면서 그 이름을 되찾는다. 아몰이 죽고 아만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힌두 생애 16가지 거쳐 가야 할 의례(산스까르) 중 처음 다가오는 이름 짓기 의식은 일반적으로 생후 12일째 거행한다. 바띠아는 왜 40일지나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아기의 태어난 일자, 시간, 장소에 따라 점성술사(조띠쉬)가 아기의 별을 선택한다. 남아는 그 별의 첫 글자에 이어 이름을 짓고 여아는 좋은 여자 이름목록에서 선택한다. 남아는 짝수, 여아는 홀수를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버지 또는 고모가 그 이름을 쌀이 깔린 놋쟁반위에 쓰고 아기의 오른쪽 귀에 네 번 말한다. 이날 가까운 친척들이 주는 선물, 특히 여아에게는 나중에 시집갈 지참금 밑천이 되는 적금으로 사용된다. 간단한 잔치가 뒤따른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자라 충분히 길어질 1-3살 즈음 문단(mundan)의식이 거행된다. 첫 머리 깎기 의식이다. 과학적으로는 머리카락이 자랄 힘을 주고 종교적으로는 정화의 의미를 갖는다. 제관이 길일을 선택하여 집이나 사원에서 이 의식을 거행한다. 머리 깎기용 만뜨라(주문)을 외우면서 제관이 머리 일부를 깎는다. 나머지는 전문 이발사 차지다. 깎은 머리카락은 신에게 드려져서 나중에 따로 활용(?)된다.


파그리(장례의식)

장례는 화장이다. 일반적으로 장자가 이 마지막 의례를 주관한다. 뼈는 흘러가는 물에 던져넣는다. 사후 4일 또는 1일째 파그리(pagri) 의례를 거행한다. 이 의례는 6개월, 1년 단위로 반복된다. 의복, 금전, 그릇이나 누비이불로 이루어진 단(dan)을 브라만에게 주고 비라다리(biradari) 멤버들을 위해 연회가 준비된다. 모든 삶의 의례들에는 브라만 제사장이 관여한다.

 

바띠아 사바

바띠아는 중앙 바띠아 사바(모임)에 등록된다. 이 단체는 회원들의 기고뿐만 아니라 결혼광고를 게재하는 월간 잡지 바띠아 프라카쉬(Bhatia Prakash)를 발간한다. 문화행사를 조직하고 가난한 과부들에게 재정지원도 제공하고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한다. 공동체의 복지향상을 위한 기능도 갖고 있다. 나이든 회원들은 타협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논쟁하는 당사자들과 협상을 시도한다. 법적인 문제는 법정으로 보낸다.


바띠아중에는 힌두와 시크가 있고 각기 자신의 종교의 의례를 준수한다. 힌두와 시크 바띠아는 상호간 결혼과 식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힌두 바띠아중에는 사나탄 다름, 라다 스와미와 아르야 사마즈 분파 추종자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베다 의례에 기초한 관습을 따른다. 힌두들은 하르다와르, 바나라시, 바드리나드, 바이스노 데비, 알라하바드와 여타 다른 성지를 방문한다. 한편 시크는 암리차르와 파트나를 방문한다.


힌두들은 두르가, 시바, 크리슈나, , 하누만을 숭배하고 홀리, 디왈리, 락샤반단과 두세라를 열정적으로 기념한다. 시크들은 구루 그란트 사힙을 숭배하고 구루 나낙과 구루 고빈드싱의 생일을 매우 헌신적으로 기념한다.

여인들은 민요를 부른다. 전통문화와 민화도 있다. 전통악기뿐만 아니라 현대 악기도 사용한다. 일부는 가벼운 고전음악이나 서구 음악에 관심을 갖고 있다. 남녀 공히 춤추는데 참여한다.


전통적으로 바띠아는 불가촉천민인 짜마르(무두장이), 추흐라(방기 또는 발미키라고 불리는 청소부), 파시(양돈업자) 또는 무슬림 공동체가 주는 음식과 물을 받아먹지 않는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이 문제에 그렇게 엄격하지 않다. 바띠아는 바니아, 야다브와 자뜨 공동체가 주는 요리된 음식(pucca)은 받아들인다. 브라만, 타꿀, 라즈푸트와 카야스타는 바띠아로부터 요리된 음식을 받아들인다.


오늘날 카트리, 아로라, 바니아 공동체와 결혼이 허용된다. 이전에는 힌두와 시크 바띠아 결혼 중매가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감소추세다. 추정상의 혈족관계가 존재한다.


다른 공동체와 화장터를 공유하고 같은 종교사원을 방문한다. 다른 공동체의 중요한 사회 종교적인 전통 축제에 참여한다. 바띠아의 전통적이고 주직업은 사업과 무역이다. 가게주인이나 상공인에 종사하기도 한다. 일부는 정부와 개인서비스 부분에 종사한다. 인도에서 바띠아는 사업가, 기업가, 군인, 행정가, 엔지니어, 의사와 예술등 각 분야에서 바띠아는 우수하게 자신들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들의 보다 나은 교육뿐만 아니라 병원시설를 해위 편의시설을 활용한다. 젊은 세대는 가족계획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고 이를 위해 현대장비(?)를 적극 활용한다. 

 

  1. [2018/10/11] 인도에서 올리는 말씀 by 사띠아 (39) *1
  2. [2014/02/11] 서문 by 사띠아 (2038) *4
  3. [2013/01/30] 2012 인도 구제현황 by 사띠아 (69) *3
  4. [2010/11/08] 부패공화국 by 사띠아 (6108) *4
  5. [2009/08/19] 암리차르의 황금사원 by 사띠아 (115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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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7]정용섭

2019.07.11 22:03:10
*.182.156.135

아주 독특한 유형의 글입니다.

인도에 관해서 이론과 현장 경험이 겸비된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군요.

잘 읽었는데, 여전히 거대한 인도라는 코끼리의 꼬리만 만진 느낌입니다.

앞으로 나올 글을 기대하겠습니다.

인대 수술을 받으셨나요?

테니스를 치다가 삐끗하셨는지,

속히 아물기를 바랍니다.

'의식주' 항목에서 그림을 참조하라고 하셨는데,

내 눈에 그림이 안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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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5]사띠아

2019.07.13 06:56:54
*.201.12.21

목사님이 꼼꼼이 읽으실 줄 몰랐습니다.
아, 인대이야기는 축구하다 다친 다른 청년 이야기입니다. 
편집된 화일을 올렸습니다.
읽기가 훨씬 편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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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 인도의 길 델리의 사람들-서론 및 바띠아편 file [2] 2019-07-11 794
69 인도기독교사 크리스천과 민족운동 [1] 2019-06-03 413
68 인도기독교사 여성 및 아동교육의 발전과 기독교 선교단체 2019-06-03 271
67 인도기독교사 카스트 관습에 대한 기독교 선교단체의 태도 2019-06-03 501
66 인도기독교사 의료사업과 기독교 선교단체 2019-06-03 246
65 인도의 길 인도 수상 모디 청렴의 비결 file [2] 2018-10-13 715
64 인도의 길 인도인의 다양성 [2] 2017-03-14 893
63 인도의 길 우파니샤드와 붓다 [7] 2016-12-27 2001
62 인도의 길 바가바드 기따의 아들 간디 file [12] 2016-06-23 2170
61 인도의 길 인도에서 듣는 개성공단 중단소식 [6] 2016-02-16 1226
60 스탠리 존스 제8장 간디의 금식들 file [2] 2016-02-02 1750
59 인도의 길 모디가 이끌어갈 인도의 미래 file [2] 2016-01-08 1510
58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9장 반대와 핍박에 직면하기 [2] 2015-08-30 1062
57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8장 지속적인 헌신 - 2 [2] 2015-08-04 1061
56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7장 지속적인 헌신-1 [2] 2015-07-30 968
55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6장 모범적인 가정생활 [2] 2015-07-17 1321
54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5장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2 [2] 2015-07-12 1164
53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4장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1 2014-03-22 2622
52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3장 영성 훈련 2014-03-08 2351
51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2장 전적인 헌신 [2] 2014-02-27 2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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