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구원(58)

조회 수 1113 추천 수 0 2018.03.22 21:10:20

(58)

하루를 맞는 아침 시간이 나에게는 황홀하다. 여명이 찾아오면서 내가 침실로 사용하는 서재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젊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60대 중반인 지금은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두발로 서는 순간의 느낌이 더 생생하게 전달된다. 발목의 힘이 약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늙고 가난하고 외롭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이런 느낌의 중심에 지구의 중력과 내 몸의 교감이 자리한다. 그 교감이 예술적인 차원에 이르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행복을 맛볼 것이다.

나는 매일 스무 번 이상 내 서재인 이층에서 일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내린다. 내려갈 때는 춤을 추듯이 중력을 리드미컬하게 탄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발을 내딛기만 하면 저절로 내려올 수 있다. 올라갈 때는 중력을 거슬러야 한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중력을 뿌리칠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한다. 그 과정이 예술이다. 계단과 내 발바닥의 마찰을 적당하게 유지해야한다. 마찰이 너무 심하면 걸려서 중심이 흔들리고, 너무 없으면 미끄러진다. 중력을 발로만 느끼는 건 아니다. 손과 허리와 머리, 몸 전체가 한 호흡으로 거기에 연루된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나는 엉뚱한 생각을 간혹 한다. 오늘의 로봇 기술로는 나처럼 화려하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로봇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기계공학이 고도화된 로봇이 50년 후에 만들어진다고 해도 역시 지금 나와 같이 운동력은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 로봇은 중력을 수학적으로만 생각하지만 나는 수백만 년의 진화과정을 통해서 중력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력과의 교감에 돈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돈이 들지 않는 것을 무조건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중력마저도 하찮게 여길 것이다. 자신이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중력을 느끼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그는 중력이 아니라 무중력 상태에서 사는 거와 같다. 무중력 상태의 삶에서는 기쁨과 행복마저 비현실이 아니겠는가.


[레벨:17]홍새로

2018.03.22 21:36:10

말씀을 듣다보니,
수백만년의 진화를 거친 인간으로 태어난것은 큰 은총이네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8.03.23 21:08:07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이 무진장하다'는 표현이

당연하면서도 옳지만,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겠지만,

실제로는 그런 생각으로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는 에스더 님이 잘 아실 겁니다.

기독교 신앙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도

'오직 은총'이 핵심입니다.

은총의 깊이는 헤아리기 힘들어서

아는 사람만 압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사순절 묵상(36) [2]

  • 2015-03-31
  • 조회 수 1125

36) 3월31일(화)- 성 주간 <본문읽기> 사 49:1-7 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

목사 구원(110) [2]

  • 2018-06-02
  • 조회 수 1124

(110) 앞에서 나는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 경험에 대한 세 편의 이야기를 설명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이사야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목사 구원’의 중심인 하나님 경험을 거기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경험을 배운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배워서 하나님 경험이 이를 수는 물론 없다. 여기서 배운다는 것은 하나님 경험의 정보를 배운다는 게 아니라 그런 정보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 경험의 실체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다른 공부도 이와 비슷한 점이 있다. 아인슈타인의 ‘질량 에...

주간일지 [2]

  • 2017-06-05
  • 조회 수 1124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6월4일, 성령강림주일, 대구샘터교회 설립 14주년 기념주일 1) 오늘(6월4일)은 성령강림주일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대구샘터교회 설립 14주년 기념 주일이었습니다. 딱 떨어지는 조합입니다. 본질적으로 성령공동체인 교회가 성령강림주일에 시작되었으니까요. 오늘 예배는 전체적으로 품격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친밀감이 넘쳤습니다. ‘토기장이의 집’ 공동체에서 8명이 참석하셨고, 솔로로 예배에 오시던 분들 중에서 몇 분이(제 기억으로 네 분) 파트너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이 네 분이 누군지를 맞추는 ...

구원 지향적 삶 [4]

  • 2017-03-16
  • 조회 수 1124

3월16일, 목 구원 지향적 삶 지난 설교 제목은 ‘심판과 구원’이었다. 이에 해당되는 핵심 구절은 요 3:17절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은 심판과 구원을 이원론적인 시각으로 대하게 할 염려가 있다. 어떤 이는 심판받고 어떤 이는 구원받는다고 말이다. 이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옳은 것도 아니다. 이런 표현이 애매하게 들리겠지만, 궁극적인 것은 애매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그 누구도 심판과 구원을 결정할 수 ...

새로운 현실

  • 2015-12-19
  • 조회 수 1124

12월19일 새로운 현실 설교 마지막 구절은 다음이다. ‘그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현실이 되었으니 우리가 어찌 기뻐하고 노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설교 제목을 다시 강조한 결론이었다. ‘새로운 현실’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을지 모른다는 염려가 있었지만, 과감하게 그대로 그 단어를 사용했다. 일상에서 익숙한 다른 마땅한 단어를 찾기 힘들었다. ‘하나님의 구원이 실현되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실현과 현실은 비슷해보여도 다르다. 현실, 또는 현실성은 실현보다 ...

주간일지 11월11일 file

  • 2018-11-12
  • 조회 수 1124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2018년 11월11일, 창조절 11주 1)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설교에 가장 큰 은혜를 받는 사람은 설교자 자신이라는 걸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깊이 느낍니다. 이런 점에서는 설교자로 산다는 건 행운이겠지요. 오늘 설교에서 ‘가난하니까 할 수 없는 일과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간략하게 열거했습니다. 만약 가난하게 살아도, 아니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면 굳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삶을 소비하지는 않겠지요. 이게 단순히 논리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합니다. 우리...

주간일지 12월5일, 대림절 2주 file

  • 2021-12-06
  • 조회 수 1123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1년 12월5일, 대림절 2주 1) 빈 들- 누가복음 기자는 예수님과 요한의 출가 활동을 ‘빈 들’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말 성경 번역자가 헬라어 ‘에레모스’를 요한 이야기에서는 순수 우리말 ‘빈 들’로, 예수님 이야기에서는 한문 ‘광야’로 번역했습니다. 번역의 일관성이 떨어져서 아쉽습니다. 누가는 요한의 빈 들을 말하기 전에 황제와 총독과 왕과 대제사장들을 언급함으로써 ‘빈 들’을 더 도드라지게 합니다. 황제 같은 이들은 빈 들에서 살지 않으나 선지자는 빈 들에서 삽니다. 모든 선지자가 빈 들에...

목사 구원(139) [7]

  • 2018-07-13
  • 조회 수 1123

(139) 존재 신비라는 말에서 ‘신비’는 오해받기 쉬운 단어다. 특히 개신교회에서는 그런 오해가 잦다. 신비를 산신령에게 나타나는 속성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더 극단적으로는 마술 비슷한 것으로 여긴다. 한국교회에서는 기도원 운동이 이런 왜곡된, 또는 정통 기독교 사상과는 구별되는 신비주의와 결합되었다. 방언, 입신, 축귀 등의 능력도 신비로 받아들여진다. 기독교 정통신학에서의 신비는 그런 것과 전혀 차원이 다르다. 나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같은 중세기 신비주의자에게서 기독교의 정통 신비주의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

예수가 온다(3) [2]

  • 2017-12-15
  • 조회 수 1123

12월15일, 금 예수가 온다(3) 생명 완성의 순간이 종말이라는 주장은 크게 이상하지 않다. 교회 밖의 사람들도 인정할 수 있다. 다른 종교만이 아니라 물리학이나 생물학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다. 문제는 여기서 왜 예수가 개입되는가에 달려 있다. 교회는 처음부터 이 주장을 끈질기게 이어왔다. 예수 없는 종말론적 생명 완성은 교회에서는 말이 안 된다. 설교와 신학과 영성을 포함한 기독교의 모든 복음 활동은 바로 이 사실에 대한 변증이다. 그것이 경우에 따라서 설득력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설득력...

주간일지, 대구샘터교회 11월6일 [3]

  • 2016-11-06
  • 조회 수 1123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11월6일, 창조절 열번째 주일 1) 요즘 대한민국 국내 정치 상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나라라고 한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순실이라 이름 하는 여자와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국정을 농락했습니다. 앞으로 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예배 후 식사 자리에서 오랜 만에 방문한 아무개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구성서아카데미 사이트에 이 사태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을 글로 올려주...

생명 완성

  • 2015-07-08
  • 조회 수 1123

7월8일 생명 완성 나는 지난주일 설교 후반부에서 ‘부활은 하나님만이 고유한 능력으로 행할 수 있는 생명의 완성’이라고 말했다. 부활과 생명 완성이 설교의 중심 주제라 아니라서 더 긴말은 하지 않았다. 오늘 간단하게나마 보충하려고 한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속하는 이 주제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으면 기독교 신앙의 전체를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때로는 오해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의 생명은 완성된 것일까, 아닐까? 이런 질문이 간단한 게 아니다. 우리는 아프고, 늙고, 그리고 죽는다. 이런 것만 보면 생명의...

예수 어록(023) 요 2:16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3)

  • 2019-01-03
  • 조회 수 1123

예수 어록(023) 요 2:16 “이것을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3) 하나님을 가장 친근하고 가장 신뢰할만한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야말로 신구약성경의 요체다. 우리가 말로는 이런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어떤 이들은 기도와 예배와 말씀과 봉사를 통해서 일단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존경받을 정도로 ...

누가복음 톺아 읽기 054, 눅 2:1

  • 2021-01-15
  • 조회 수 1122

대구 성서 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054, 눅 2:1 https://youtu.be/qR2EYyv3thA

목사 구원(100) [4]

  • 2018-05-19
  • 조회 수 1122

(100) ‘스스로 존재하는 자’에 대한 경험이 우리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꾼다는 말은 자칫 공허한 말로 들릴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혁명적으로 바뀐다는 말 자체를 별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 생활에서도 이런 경향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자신이 알고 있던 기존의 신앙 패러다임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낀다. 한국교회에 성서문자주의가 계속해서 힘을 발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젊은 시절에 읽은 몇 권의 책에서 나는 사유가 혁명적으로 바뀐...

사순절 묵상(21)

  • 2015-03-13
  • 조회 수 1122

21) 3월13일(금) <본문읽기> 시 107:1-3, 17-22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3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17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18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19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0 그...

누가복음 톺아읽기 173

  • 2021-07-01
  • 조회 수 1121

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173, 눅 7:18~23 세례 요한의 제자들 https://youtu.be/8cAv5PdoB9o

목사 구원(66)

  • 2018-04-03
  • 조회 수 1121

(66) 목사의 경우에 죄는 목회 업적의 강요와 유혹에 굴복당하는 것이다. 구원이 죄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한다면 목사 구원은 목회 업적의 강요와 유혹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목회 업적의 강요와 유혹은 목사에게 숙명적이다. 여기에는 외부적인 요인도 있고, 내부적인 요인도 있다. 외부적인 요인은 한국교회 구조다. 목사가 순전히 목회 업적으로만 평가되는 구조다. 목회 업적을 이루지 못하면 목사와 가족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다. 내부적인 요인은 목사 자신이 목회의 업적에 매달리는 것이다. 자신이 담임 목사로 있는 교회...

위로하라(5) [2]

  • 2017-12-09
  • 조회 수 1121

12월9일, 토 위로하라(5) 내일 대림절 둘째 주일 예배의 헌금찬송과 마침찬송은 105장 ‘오랫동안 기다리던’ 1절과 2절을 각각 부른다. 나이가 든 이들은 이 찬송가를 처지는 속도로 부를 텐데, 찬송가 악상으로는 조금 빠르게(1분에 사분음표 100번의 속도) 부르는 게 좋다. 대림절 찬송이니 기쁜 마음으로 가볍게, 뭔가를 치고나가는 느낌으로 불러야 한다. 가사를 읽어보자. 1절: 오랫동안 기다리던 주님 강림하셔서 죄에 매인 백성들을 자유 얻게 하시네 주는 우리 소망이요 힘과 위로되시니 오래 기다리던 백성 많은 복을 ...

섬뜩한 기분으로서의 불안(2)

  • 2015-09-26
  • 조회 수 1121

9월26일 섬뜩한 기분으로서의 불안(2) 어제 말한 섬뜩한 기분, 또는 아주 낯선 느낌, 또는 거룩한 두려움은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게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지만 대다수는 그걸 외면한다. 순간적으로 그런 느낌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너무 낯설기 때문에 거기로부터 도피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부모를 피하는 것과 비슷하다. 박찬국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현존재는 불안에서 드러난 섬뜩한 세계를 감내하지 못하고 세계 내의 존재자들에 의지하고 매달리게 된다. 즉 현존재는 돈이...

물(物) 168- 고량주 file [2]

  • 2022-10-26
  • 조회 수 1120

북안면에 있는 중국집 식당에서 정말 오랜만에 125ml짜리 고량주인가 뭔가 하는 중국 술을, 사진에서 보듯이 정확히는 이과두주를 반만 마시고 반은 가져와서 저녁때 다 마셨다. 알코올도수가 자그마치 56도다. 술은 역시 도수가 높아야 제맛이다. 중세기 수도사들이 왜 술을 마셨는지 조금씩 더 실감하는 중이다.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