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검찰!

조회 수 2584 추천 수 2 2010.04.09 19:44:09

 

오늘 한명숙 뇌물수뢰 사건 선고공판에서 무죄로 나온 걸 그대도 들어서 알고 있을 거요. 법조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을 비롯해서 거의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걸 예상했던 터였소. 여당 인사들도 마찬가지였소. 아주 일부는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오. 한명숙 전 총리가 분명히 5만 달러를 받았다고, 사실 여부는 불문하고 일단 그렇게 믿고 싶었던 일부 말이오. 마녀 재판에서 그녀가 마녀이기를 바란 사람들의 심리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작동할 수 있는 거요.

 

무죄 선고는 당연한 결과였으니 그렇게 감탄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소.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한국 검찰의 행태요. 이번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권오성 부장검사)가 맡았다 하오. 검사들 중에서도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특수 1부와 2부요.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패스 하고, 모르긴 해도 사법 연수원에서도 선두권에 들어야 검사로 임명받소. 대한민국에서 머리가 가장 명석하고, 정의감에 가장 투철한 분들이 바로 그들인 거요.

 

나는 검찰이 한명숙 전 총리를 뇌물수수로 기소했을 때 이에 상당한 뭔가 명백한 사실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소. 일개 정치인이 아니라 전 총리를, 그것도 바로 전 정권의 총리를,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검찰에 대한 신뢰가 크게 손상된 이 시점에 기소를 했다는 것은 검찰이 배수진을 친 형국이니 말이오. 유죄 선고를 예상하지 못한 채 ‘묻지마’ 기소를 할 수는 없는 거요. 재판 진행은 그대도 알고 있는 바요. 곽영욱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횡설수설이었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재판부에서도 확인하기 힘들 정도요. 다른 이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한 배려인지 모르겠으나 검찰이 호랑이보다 무서웠다는 말도 했소. 그는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을 두 가지 말했소. 5만 달러를 직접 준 게 아니라 의자에 놓고 나왔다는 것이 하나이고,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게 다른 하나요. 증인으로 나온 경호원들도 검사들의 기대와는 다른 말을 했소. 의전과 경호 원칙에서 볼 때 피고가 2만 달러나 3만 달러가 든 돈 봉투를 따로 챙길 기회가 없다는 거였소.

 

재판에 관계된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그만 둡시다. 한 전 총리가 무죄라는 사실을 변호하려는 것이 이 글의 주제도 아니오. 이렇게 부실한 수사를 근거로 기소를 했다는 게 불가사의요. 대한민국 검찰의 수준이 이 정도였소? 오락가락하는 곽영욱 씨의 말만 믿고 전 총리를 기소할 수 있다는 발상을 한 사람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엘리트 법조인인 검사들이란 말이오? 하도 이상해서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있었소. 재판과정의 어느 시점에 뇌물수수를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이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소. 검찰은 5만 달러 뇌물수수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하나도 대지 못했소. 정황적인 증거도 없었소. 검찰은 전혀 신빙성이 없는 진술로 일관한 곽영욱 씨가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만 반복했을 뿐이오. 급기야 재판장의 권고를 받아들여 검찰은 공소장도 변경했소.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는 그대의 상상에 맡기겠소.

 

검찰은 법원의 무죄 선고가 있자, 검찰 수뇌부는 법원 판결에 합리성이 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즉시 항소를 했다 하오. 체면을 위해서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거요. 이게 궁금하오. 지금까지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것만으로 유죄를 끌어낼 수 있다고 검사들이 실제로 믿었을까 하는 거요. 그렇게 믿었다면 그들의 지능에 문제가 있는 거고, 믿지 않았으면서도 기소를 했다면 그들의 인격에 문제가 있는 거요. 기소를 하려면 똑바로 하든지, 자신이 없으면 그만 두든지 해야 할 거 아니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 같아서, 보기에 안 됐소. 어제는 또 별 건으로 한 전 총리에게 혐의를 두고 중소업체를 압수수색 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유포했다오. 아, 대한민국 검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검찰이 소환 조사를 할 때 나는 화가 났었소.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는 할 말을 잊었소. 검찰이 권력의 주구(走狗)라는 말에 실감이 갔소. 다른 한편으로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소. 오죽 했으면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는 비굴하고, 죽은 권력 앞에서는 불한당처럼 굴까 하고 말이오. 이번에 나는 검찰 때문에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기로 했소. 그들은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익스트림 연기를 마다하지 않는 개그맨이라는 걸 확인했소. 우리 오랜 만에 크게 웃어봅시다.

 

사족이오. 모든 검사를 싸잡아서 말한 것 같아서 미안하구려. 여전히 포청천처럼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눈을 가린 채 진리의 눈금만 보는 검사들이 왜 없겠소. 문제는 정치 검사들이오. (2010년 4월9일, 금요일, 맥주 맛이 좋은 날)


[레벨:5]오영숙

2010.04.10 07:42:55

웃을 수 없는 일이죠.

 

가슴이 아프다는 말 밖에......

 

목사님의 해학......라라님의 응수........

 

여기는 정말 멋진 곳입니다. ^^

profile

[레벨:14]이성희

2010.04.10 22:30:18

그지 개떡같은 검찰이지요......

[레벨:3]킴스

2010.04.12 21:38:43

예전에 노대통령이 검사들과 방송대담을 하면서 대한민국 검찰을 믿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등,

검찰을 깔아뭉개자...검찰은 복수(?)의 칼을 갈게 되었고...

 

MB의 bbk 사건들을 검찰이  모종의 결탁을 통해 무죄로 선고하면서 MB가 권력을 잡게하고... 

이후 검찰의 앙갚음이 시작되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지...

 

아무래도 제가 좀 더운가봅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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