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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본격적으로
예수님에게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 안으로 들어갈 차례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그것입니다.
그 이외의 모든 가르침은 이 것에 각주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착각입니다.
일단 사도신경의 역사에 참여한 이들이
어떤 방식과 어떤 차원에서 이 사건을 이해하고
경험하고 해석했는지를 따라가는 게 중요합니다.
앞으로 몇 주간에 걸쳐서
예수님의 수간, 십자가, 죽음, 매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판넨베르크의 한 마디를 전하지요.
"오늘날 주석학자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주장에 따르면
수난 예언들은 예수 자신의 권위 있는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어떤 사실에 근거한 추가적 진술이라는 겁니다.
다른 사실이라는 게 뭘까요?
예수님에게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 안으로 들어갈 차례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그것입니다.
그 이외의 모든 가르침은 이 것에 각주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착각입니다.
일단 사도신경의 역사에 참여한 이들이
어떤 방식과 어떤 차원에서 이 사건을 이해하고
경험하고 해석했는지를 따라가는 게 중요합니다.
앞으로 몇 주간에 걸쳐서
예수님의 수간, 십자가, 죽음, 매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판넨베르크의 한 마디를 전하지요.
"오늘날 주석학자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주장에 따르면
수난 예언들은 예수 자신의 권위 있는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어떤 사실에 근거한 추가적 진술이라는 겁니다.
다른 사실이라는 게 뭘까요?
2009.04.09 08:26:54
박은옥 집사님이
그동안의 제 설교, 강의, 신학단상 등을 통해서
시험에 들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네요.
그동안 거쳐왔던 교회 공동체의 신앙적 흐름과
크게 다른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요.
일단 박수를 쳐 드리고 싶고요.
앞으로 진도를 너무 나갈 경우에
그걸 본인이 감당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겠군요.
거기에는 뭔가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요.
아마 박 집사님이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대한성서공회의 여러 강의와
하이덱거 책을 읽을 정도니
내 염려는 노파심이겠지요.
"바람에 실려가는 삶으로..."
이 말은 곧 성령에 의존하는 삶으로와 똑같은 내용이군요.
좋은 하루.
그동안의 제 설교, 강의, 신학단상 등을 통해서
시험에 들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네요.
그동안 거쳐왔던 교회 공동체의 신앙적 흐름과
크게 다른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요.
일단 박수를 쳐 드리고 싶고요.
앞으로 진도를 너무 나갈 경우에
그걸 본인이 감당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겠군요.
거기에는 뭔가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요.
아마 박 집사님이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대한성서공회의 여러 강의와
하이덱거 책을 읽을 정도니
내 염려는 노파심이겠지요.
"바람에 실려가는 삶으로..."
이 말은 곧 성령에 의존하는 삶으로와 똑같은 내용이군요.
좋은 하루.
2009.04.11 22:16:53
목사님,
'창조완성'의 범주안에는 우리의 구원, 온 피조물의 구원이 포함되는 거잖아요?
그 카테고리가 '구원'보다 더 커보여서요.
왜냐면, 우주가 생겨나기 전 부터 하나님은 하나님이셨으니까요.
그러니 범신론에 대한 이해가 좀 풀릴 것도 같네요.
그리고 구원에 대한 개념을 다시 잡아야 할 것 같아서요.
죄사함과 구원이 하나로 이해 되었는데,
구원이 훨씬 더 상위개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2015.01.19 13:09:40
오늘 강의는 전혀 새로운 낯선 세상을 경험한 느낌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미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 주장이라니...
좀 구체적으로 어디를, 누구를, 기독교의 메인 스트림에 있다고
생각하면 될지요?
십자가의 죽음, 부활이 예수님 자신도 예견하지 못한 사건이었다고요.
목사님께서 자주 말씀해 주셔서 저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말씀이지만,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이 인류구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에 맞춰 십자가에 순종 하신 것이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허공에 대고 헛발질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예수님께서 가리키는 곳이 어디인지 도통 알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목사님, 이제 더 선명해 지네요.
구제와 전도,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벌리는 많은 일들..
그것들이 우리는 인류를 구원하는 일로 알고 있었네요.
아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길이며, 뜻을 이루는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요.
아마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수난예고와 또 그대로 그 일을 행하시고 이루셨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그동안 한 번도 저희들 붙박이 생각을 내려 놓을 줄 몰랐던가 봅니다.
목사님, 저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틈새에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또 생각하게 됩니다.
살짝 열어 주신 커텐 사이로 생명의 빛이 눈 부시게 들어 오는 군요.^^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강박증'이 훨훨 가벼워 졌음 좋겠습니다.
네팔의 오체투지 인들처럼, 그렇게 바람에 실려 가는 삶으로
살아 보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오늘 밤은 유난히 밤 풍경이 곱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