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03쪽, 오늘이 마지막 강의입니다.
우리는 현상하고 있는 실재가
항존적인것의 현상으로서 이해되어야 할것인가?
미래적인 것의 도래로서 이해되어야 할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어 왔다.
이 두가지 길은 각기 종교적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원초적 시간과 원형에로의 신화적 지향에서 오는것이고
또 하나는 종말론적 미래에 의한 파악에서 오는것이다.
전자는 우리의 익숙한 사고습관에 깊이 인상 되어진 길이며,
후자는 지금까지 별로 고찰되어 보지 못한 길이다.
인간적 구성은 우연성과 시간에 의하여 제약되기 때문에
자연히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실재를 파악하는 능력을 가졌는바,
그 능력에 의하여 자신의 유용함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다.
인간은 헤아릴수 없이 많은 우연적 사건들에 대항해서
자기 자신을 주장하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이 특히 암시적이다.
인간은 항존하는 것을 신화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절대적으로 확립하려고 한다.
사람은 아직은 궁극적 미래는 살고 있지 않고
미래로 부터 오는것에 의해서 항상 기습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안심의 결여를 견디어야 하지 않은가?
반복의 현상도 미래적인것의 도래의 의미로 접근될수 있다.
사건의 우연성은 분명히 확실성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미래는 항존적 현재에서 그 도래에로 향하고 있다.
결국, 읽기를 마쳤습니다. 혼자서는 중간에 포기했을테지요...
이러한 말씀들이 저의 머리나 어딘가에 조금은 남아있기를 바라며
긴 시간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생산적 구상력은 경험을 초월한다.
근대의 창조적 주관성은 자신을 세계의 미래로 만들며,
현상하는 것의 본질적 미래에 대해 예견할 수 있다.
현상하는 실재를 종말론적 미래의 도래로서 이해해 보자.
영원한 현재는 궁극적 미래의 경험이며,
반복의 현상도 미래의 도래로 볼 수 있다.
우주의 모든 현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미래의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있는 것이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판넨베르크의 <신학과 하나님 나라> 강독의 모든 파일을
31강만 제외하고 모두 유튜브로 업로드했습니다.
정 목사, 수고 많았습니다.
우리는 현상하고 있는 실재가
항존적인것의 현상으로서 이해되어야 할것인가?
미래적인 것의 도래로서 이해되어야 할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어 왔다.
이 두가지 길은 각기 종교적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원초적 시간과 원형에로의 신화적 지향에서 오는것이고
또 하나는 종말론적 미래에 의한 파악에서 오는것이다.
전자는 우리의 익숙한 사고습관에 깊이 인상 되어진 길이며,
후자는 지금까지 별로 고찰되어 보지 못한 길이다.
인간적 구성은 우연성과 시간에 의하여 제약되기 때문에
자연히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실재를 파악하는 능력을 가졌는바,
그 능력에 의하여 자신의 유용함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다.
인간은 헤아릴수 없이 많은 우연적 사건들에 대항해서
자기 자신을 주장하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이 특히 암시적이다.
인간은 항존하는 것을 신화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절대적으로 확립하려고 한다.
사람은 아직은 궁극적 미래는 살고 있지 않고
미래로 부터 오는것에 의해서 항상 기습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안심의 결여를 견디어야 하지 않은가?
반복의 현상도 미래적인것의 도래의 의미로 접근될수 있다.
사건의 우연성은 분명히 확실성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미래는 항존적 현재에서 그 도래에로 향하고 있다.
결국, 읽기를 마쳤습니다. 혼자서는 중간에 포기했을테지요...
이러한 말씀들이 저의 머리나 어딘가에 조금은 남아있기를 바라며
긴 시간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