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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과 커피

조회 수 2554 추천 수 0 2018.01.05 21: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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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에 알람이 울리면 천천히 일어나서 침대에 걸터 앉아 간단히 기도를 드리고

밤 12시쯤 자기 전에는 침대 앞에 무릎을 꿇고 간단히 기도를 드립니다.

아주 짧막한 기도를 드리는데, 밤과 아침에 자세가 다른 것은 특별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게 내 습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무릎을 꿇기는 힘들고 밤에는 관절 운동 겸해서 좋습니다.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다고들 하는데 나는 왜 안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곧 밤이 지루하게 느껴질 순간이 오긴 하겠지지만 그때가 되면 그런 방식으로 잘 적응하면서 살면 됩니다.

1층으로 내려갈 때 낙상 조심하려고 손잡이를 잡습니다.

여기 원당에 들어와서 지낸지 이제 5년이 다 되어가는데 한번도 계단에서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그 순간이 오긴 올거라 각오하고 있는데, 아직 오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쓸데 없는 말을 줄이고 위 사진에 나오는 달걀과 커피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이틀에 한번씩 저는 달걀 네 개를 찝니다. 가족과 하루에 한 개씩 먹는 겁니다.

오늘 네 개를 찌고 찬물에 담갔다가 접시에 올려놓은 걸 보니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습니다.

저게 유정란인지 무정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보통 계란보다 크기가 작습니다. 청란이라고 하나요?

같은 돈 주고 왜 작은 계란을 사오지는 이상합니다. 다 생각이 있겠지요.

저 계란을 낳은 어미닭 덕분에 저와 가족이 영양분을 섭취하고 있습니다.

남이 낳아놓은 계란을 허락도 받지 않고 먹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어서 고맙기도 합니다.

달걀을 손에 쥐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느껴보셨는지요. 껍질의 감촉이 특이합니다.

내가 손으로 그런 감촉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구요.

매일 아침에 2인분 커피를 끓입니다. 사과를 깎아 놓을 때도 있습니다.

대개는 내가 다 먹고 다시 이층으로 올라간 뒤에 집사람은 나와서 먹습니다.

사이가 나빠서 혼밥 하는 게 아니라 아침을 맞는 템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커피 알은 교회가 있는 1층의 카페에서 구입해서 사용합니다.

마켓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비쌉니다. 그래도 팔아준다는 뜻도 있고, 맛도 좋아서 그곳의 커피를 구입합니다.

커피 봉지를 여는 순간에 커피 고유의 향기가 나오고, 콩을 기계에 갈면 향기가 배가됩니다.

처음 커피를 수확한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려고 합니다.

더 올라가서는 커피가 영그는 순간도 느껴보려고 하지요. 뜨거운 햇살을 받던 그 커피 나무 말입니다.

커피 거름 종이를 잘 접어서 커피 머신 안의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여기에 기술이 필요합니다.

자칫하면 종이가 겹쳐져서 커피 가루가 밖으로 흘러나올 수도 있습니다.

물은 보통 400에서 500씨씨를 넣습니다. 젊었을 때보다 양을 줄였습니다. 우리 커피가 비싸기도 하니까 절약해야지요.

커피를 잔에 따르면 엷은 안개 같은 수증기가 올라옵니다. 신비로운 현상입니다.

요즘처럼 추운 날에는 커피 잔을 두 손으로 잡으면 온기가 따뜻하게 전달됩니다.

계란과 커피만으로 아침을 해결하느냐고요? 아닙니다. 빵과 과일, 때로는 떡을 먹을 때도 있습니다.

어쨌든지 계란을 쪄 내는 과정과 커피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쾌감을 느낍니다.

이것이 삶의 예술이고, 창조에의 참여하고, 존재의 기쁨이 아닐는지요.

내일은 계란을 찌지 않아도 됩니다. 2개가 남았거든요. 일이 줄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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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8]은나라

January 05, 2018
*.105.196.251

같은 시간대 안에 산 저는 시간에 쫓겨 계란을 손에 쥐었었는데..
그 촉감의 신비함을 경험하지 못했네요.
커피도 타서 마셨지만, 습관적으로 맛만 음미하며 마셨구요.
커피의 존재, 계란의 존재, 빵의 존재..
그 존재들의 기쁨을 누림이..
예술적 삶과 하나님 창조의 참여와 내 삶의 존재기쁨 누림과 연결된다는걸 알게됨이 좋습니다.
또 다른 기쁨의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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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anuary 06, 2018
*.182.156.80

매일 닭장에 들어가서 달걀을 들고나오는

은나라 가족의 감동을 제가 어찌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닭들도 쑥쑥 알 잘 낳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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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8]은나라

January 07, 2018
*.105.196.251

ㅎㅎ 네.. 감사합니다^^
목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침을 무쟈게 간단하게 드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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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하늘연어

January 06, 2018
*.128.178.149

원당을 방문했던 기억이 분명하여 목사님의 일상이 눈에 선합니다.

글 속에 들어가 글쓴이의 내면을 공유해 보려고 했지요.

넘어질 순간을 각오하고, 그 때를 기다리는 모습이 제겐 가장 마음에 듭니다.

와 닿는다고 하지 않고 마음에 든다고 한 것은 저도 그런 경지에 이르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달걀 중에 암컷이 한개 있었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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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anuary 06, 2018
*.182.156.80

와, 달걀도 암컷이 구분된다는 말인지요.

대단한 투시력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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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뚜벅이

January 06, 2018
*.143.126.12

간소한 아침식사가 참 좋아보입니다.

나이들수록 식사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간소함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손에 쥔것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간소한 삶에 방해가 

되는것은 날마다 버리리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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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anuary 06, 2018
*.182.156.80

모든 것이 귀찮아지는 순간이 오기 전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일단 가까이 갈 수는 있겠지요.

교회조차도 '버림'의 영성에 기반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것을 채우려고 공연히 수고하는군요.

2018년에 버릴 것이 무엇인지 살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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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쿠키

January 08, 2018
*.255.183.176

목사님, '모든 것이 귀찮아지는 순간이 오기 전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거듭 생각할수록 새해에 큰 글 선물을 제게 주셨네요.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일단 가까이 갈 수는 있겠지요' 격려의 말씀도 함께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평생 교직생활을 하시고 퇴직 후 감기약 부작용으로 가슴 아래로 마비가 와서 20년 넘게 불편하게 사셨지만 한번도 그 몸을 귀찮게 생각 안하시고 무소유로 정말 자유롭게 사시다 재작년 88세로 돌아가신 시아버님 생각이 나서 코끝이 찡합니다. 목사님, 새해 인사도 못드렸네요..그러나 목사님 안계신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인입니다.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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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anuary 08, 2018
*.182.156.251

예, 쿠키 님도 복된 새해를 맞으세요.

오늘은 여기도 비가 좀 내려서 좋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누이들 세 명이 내려와서

옛날 이야기도 하면서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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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문전옥답

January 09, 2018
*.119.67.254

목사님 건강하시지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자주 들르지도 못하고

또 와도 잠시 글만 보고 가곤했네요.

오늘은 달걀이 먹음직스러워서 잠시 눈길을 멈추게 한 것 같습니다.ㅎㅎ

흰달걀을 오랜만에 봐서 반가워서 그런가...저도 먹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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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anuary 09, 2018
*.182.156.190

문전옥답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ㅎㅎ

저는 달걀을 손에 쥘 때마다

10만년전 고대인들이 수풀에서 먹을 걸 뒤지다가

새 알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상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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