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고백할 것은, 저는 신학적 기초, 지식은 거의 없습니다, 혹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제 질문이 목사님 보시기에는 너무 수준이 낮거나 우스꽝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저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부터 『칼 바르트이 신학 묵상』을 읽고 있습니다. 하루 단위로 읽을 수 있어 부담이 덜 하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옮긴이들의 한 분으로 계셔서 반가웠습니다.

 

책은 쉽지는 않네요. 아주 어렵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결코 술렁술렁(감히 이런 표현을 쓰는 걸 용서해 주세요!) 넘어갈 수는 없네요. 제 마음을 백지로 놓고, 그냥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도희가 얼마 전까지 무척 아팠기 때문에 제대로 못 읽다가 오늘에야 손에 펴들었습니다. 그러다 '전체주의 위에 계신 하나님 6월 21일' 부분에서 좀 막혔습니다. 이해가 안 된다기보다(앞서 말씀드렸지만 그냥 받아들이겠다는 게 제 자세입니다), 좀 헷갈린다 싶습니다.

 

책의 445쪽 첫번째 줄(①)과 같은 쪽 두번째 단락 다섯 번째 줄(②)입니다. '실로 자유로운, 참으로 하나님답고 참으로 인간다운 복음의 은총 역시 '전체주의적'이고, 모든 것을 포괄하며, 모든 인간의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①), '신적이고 인간적인 특징을 갖는 복음의 자유로운 은총은 '안으로부터 바깥으로' 이기고, 설득하고 통치합니다'(②)는 부분입니다.

 

제가 좀 헷갈리는 것은, '복음의 은총'을 '인간다운', '인간적인 특징을 갖는' 것으로 설명한 점입니다. 복음과 은총 모두 하나님의 영역이라고 해야 하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것 아닐까요? 인간은 피조물이며 유한하며 죄지은 존재인데, '복음의 은총'을 인간적인 것으로 보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신적이고 인간적인 특징을 갖는 복음의 자유로운 은총은 '안으로부터 바깥으로' 이기고, 설득하고 통치합니다'(②)에서 '안으로부터 바깥으로'라는 것은 무슨 뜻인지요?

 

마지막으로, 같은 쪽 같은 단락의 일곱 번째 줄, '복음의 은총은 요구하지 않고, 나누어줍니다. 그것은 보복하지 않고, 용서합니다. 그것은 굴레를 씌우지 않고, 일으켜 세웁니다. 그것은 화를 내지 않고, 죽이지 않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고쳐주고, 상처를 싸매주고, 보살펴줍니다'(③)는 부분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면 될까요?

 

목사님, 번거롭게해드려 죄송합니다. 책 전체와 맥락에서 볼 때 중요한 내용이 아닐 수도 있어 창피한 질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급한 질문은 아닙니다. 혹시 목사님 시간이 괜찮으실 때, 도움 말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고백하지만, 저는 교회사나 신학적 지식은 거의 없습니다. 칼 바르트 선생님이 하나님과 성경, 신앙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해오셨는지도 모릅니다. 언뜻 한때 자유주의 신학에 기울었다가 비판하고 나섰다는 얘기만 어디서 읽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릅니다.

 

그럼 왜 이 책을 읽느냐? 대한기독교서회 홈페이지에서 책을 찾아보다가 유료 회원에 가입했는데 책을 보내주더군요. 그 전에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한 번 읽어봐야지 생각은 했다가 좀 빨리 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며 끙끙대고 읽고 있습니다.

 

목사님, 사실은 오늘의 이 질문말고 이 책의 내용 가운데 여쭤보고 싶은 부분이 좀 더 있습니다. 특히 '은총'과 '믿음'에 대해 이 책의 진술이 좀 모순된다 싶은 부분이 있어서요. 다만 목사님이 번거롭다 하실까 싶어 조심스럽네요.

 

제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질문드려 죄송합니다. 목사님께서, 이걸 어느 눈높이에 맞춰 진리를 깨우쳐줘야 하나, 고민하실 것 같네요. 도움 말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주일에 건강한 모습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sola grat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