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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중절모를 손 보았다.

피부에 닿는 안감의 촉감이 꺼칠하다길레

안 쪽에 부드러운 천을 대어 감쌌다. 아주 좋다고 한다.

모자를 싫어하는 사람인데 요즘 그에게  모자는 필수품이다. 

항암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뒷통수 피부가 보기 흉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마와 뒷통수에 각가 두개 씩 작은 흉터마저 생겼다.

얼마 전 찍은 뇌사진에서 2.5 센티미터 짜리 두 개와 0.5 센티미터의 종양 하나가 발견되었다.

복부로 전이 된 암세포는 지금 먹는 실험용항암약으로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있었는데

그 약이 뇌의 견고한 막을 뚫지는 못한 것이다.

두 달에 한 번 씩 복부 스캔을 해서 결과를 듣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복부만 찍어보는 것이 불안했다.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었을지도 모를텐데.... 

그래서 담당의사에게 

전신스캔을 해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사는 전신으로 전이가 됬으면 증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증상이 없으니 전신을 스캔해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그래도 전신을 스캔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의사도 한 번 찍어 보자며 일정을 잡아주었다.

그 결과 뇌로 전이가 됬다는 것을 알았다.

전이가 됬다... 그것도 뇌로!  

작년에 처음 수술을 한 두경부 전문의가 우려하던 뇌전이..., 안 좋은 싸인이다.


 그 날도 한 달에 한번 의사를 만나는 날이자, 일주일 전에 찍은

스캔 결과를 듣는 날이라서 여느때 처럼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서 몇 가지 검사를 했다.

심전도, 폐 엑스레이, 혈액, 소변등...

그리고 나면 8시 정도가 된다. 9시 반 의사를 만나는 시간까지는 약 한 시간 반 가량의 시간이 생긴다,

그 막간의 시간에 우리는 병원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그날 따라 식욕이 돌지 않아 남편은 빵과 간단한 크림스프로 

나는 라떼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어설픈 아침을 대신했다.

그때였다. 이런 소식을 들으려고 그랬을까...,

돌연 집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게  

눈물겹도록 감사한 일임이 왜 그토록 사무치게 다가왔는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상,

아침에 일어나 국을 끓이고 상을 차리고  

가족과 함께 집에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덤덤한 일상이 말이다. 


뇌에 전이된 종양이 확연히 보이는 사진을 놓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 재산정리를 하시는 게 좋겠어요."

뇌로 전이되면 갑자기 의식을 잃을 수도, 몸에 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그 다음엔 화가 났다. 의사의 무신경함에.

왜 우리가 요구하기 전에 좀더 일찍 전신스캔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에겐 생명이 달려있는 문제인데 의사는 그저 할당된 일을 습관적으로 처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10분에 3명씩 진료를 보는 의사에게 뭘 더 기대하랴...

남편은 다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자고 했다.그 말을 들으니 좀 편안해진다.

그래...사람의 목숨이 어찌 한낱 의사의 손에 좌우되겠는가, 생명의 주관자는 의사가 아니다....


혈액종양내과에서 곧바로 신경외과로 옮겨져 3일 후 입원을 하고 감마나이프라는 방사선 수술을 받았다.

예전처럼 골을 열고 종양을 제거하는 대수술이 아니고

감마선을 종양에 쬐어 암세포를 서서히 죽이는 것이므로 환자에도 무리가 없고 간단하단다. 

전날 입원을 하고 정교한 수술계획을 위해 자정에 불려나가 MRI를 찍었다.

MRI 결과 콩알만한 종양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나왔다. 

다음날 아침 6시 반부터 마취를 하고 

머리에 네 개의 작은 구멍을 뚫고 틀을 씌운 다음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킨 후,

종양 세개를 죽이기 위한 방사선 치료에 들어갔다. 120분이 걸린다고 했다.

감마선 치료를 받는 중 치료실 밖에서 앉아 있는데

참으로 적요했다.

수술실 밖 복도의 공기마저도 고독한 절망으로 차 있는 것 같았다.

아, 사람은 살면서 무엇으로도 위로가 안되는 절대고독과 대면하는 순간들을

홀로 맞고 홀로 감당해야 하는구나...  산다는 게 참으로 만만찮게 다가왔다.

벼랑 위에서  깜깜 절벽으로 떨어지는 날도 오리라.

그 때가 되면 나를 받아줄 그 손길에 대한 믿음도 함께 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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