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005)- “와서 보라!”(2)

조회 수 1129 추천 수 0 2018.12.08 19:59:28

예수&로고스 005- 1:39(2)

 

와서 보라!”(2)

 

 

와서 보라.’는 문장은 동사 두 개의 결합이다. 하나는 오라.’. 기독교 신앙의 시작은 일단 예수에게 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것도 옳다. 예수의 복음 전하려면 일단 그 복음 공동체로 사람들을 데리고 와야 한다. 예수에게 온다는 말은 더 근본적인 것이다. 참된 것에 대한 열망이다. 이것이 없으면 교회에 나오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그냥 교회 구성원이 늘었다는 의미일 뿐이다. 예수에게 오는 게 어려운 이유는 참된 것에 대한 열망이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구조적으로 그렇다. 참된 것보다는 현실적으로 돈 되는 것에만 신경을 쓰게 한다. 참된 것에 대한 열망은 우선 자신이 길들여진 것들이 지나가고 만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에 따라서 젊어서부터 그걸 절감하는 사람이 있고, 늙어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늙으면 저절로 그걸 생각하게 되지만 이미 살아온 삶의 관성에 따라서 그걸 부정하면서 노년을 보낸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이 안 되니, 나중에는 체념한다.

다른 하나는 보라.’. 예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보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정보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과 일치를 이루는 차원에서 깨닫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는 볼 것이 너무 많아서 정말 봐야할 것을 보기는 어렵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많고, 소위 먹방이나 홈쇼핑 프로그램도 점점 더 늘어난다. 그런 것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사는 것이 현대인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개중에는 직장에서 집에 돌아가는 즉시 티브이를 켜두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데에 마음이 분산되어 있으니 예수 이야기 역시 사소한 에피소드로 전락된다. 예수를 통해서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실제로 깨닫고 보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자질이 아니라 은총이다. 은총을 은총으로 깨닫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니 은총을 허락해달라는 기도를 쉬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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