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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완성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으니라.”는 말씀이나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는 말씀은 그렇게 간단하게 아닙니다. 사랑은 몇 가지 선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다 되는 게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우리에게는 사랑의 능력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율법을 이루기 불가능한 것처럼 사랑도 불가능합니다. 바울은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더 근원적인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바울이 몇몇 윤리적인 것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건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서 그 믿음이 진실하다는 사실이 나타나려면 당연히 윤리적인 삶을 말해야 합니다. 믿음은 적극적인 차원이고 윤리는 소극적인 차원입니다. 이 두 가지를 똑같은 차원에 놓고 말하면 바울을 오해하는 겁니다. 적극적인 차원을 전하기 위해서 소극적인 차원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런 것을 전제하고 이제 우리는 윤리, 즉 율법적인 삶을 위해서 나름으로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믿는다고 당장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좋은 습관이 필요합니다.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는 삶의 습관 말입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나 그 믿음의 실체로 들어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믿음의 실체에 들어갔다면 당연히, 아주 자연스럽게 빛에 속한 사람의 삶이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우리 삶의 어둔 부분을 속살이 들어나듯이 빛으로 밝혀주십시오. 우리가 감추고 말고 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빛 자체인 사랑만이 우리 삶을 완성한다는 말씀에 사로잡히기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