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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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사건이 성경에 많이 등장함에도 우리는 환상을 본적이 없기에 환상을 이해하기 힘들다 필자는 그럼 환상을 봤을까 궁금하실 것이다 뭐 특별히 환상같은 걸 본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 독특한 꿈을 꾼적은 있다 그리고 징조라고 느껴진 작은 사건은 있다 그러고 보면 환상 비슷한 것을 본거 같기도하다
그걸 구지 환상이었다거나 계시적 꿈이었다고 이야기 한다면 현대를 사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닐 것이다 미쳤거나 아님 무속 신앙인이지...
과학적 태도라 함은 맞다고 증명될 때까지 최대한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타락한 천사 루시퍼는 악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 즉 God에게 도전하기 위해 악의 화신인 사탄이 되고 만다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나왔는지는 헷갈리는데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살짝 나온것으로 기억된다
이런 이야기는 천사 루시퍼 신God 사탄 이란 명칭을 통해 약간 우화적으로 악이 생긴 과정을 성서는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실체는 존재할 것이지만 그걸 언어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여 우화 즉 이야기로 추상적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자신이 벗은 것을 알았고 죄가 들어왔다고 하는 것도 우화이다 인류의 조상 아담은 분명하겠지만 선악과, 뱀의 유혹, 꾀임에 빠진 인간, 벗음, 부끄러움, 가리는 행위 등의 설정은 이야기로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본다
타락한 천사 루시퍼는 간교한 뱀의 모양을 하고 인간에게 다가왔듯이 일상생활중에 자주 우리의 마음 속에도 다가온다
죄가 들어오기전 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 동산을 생각해보자 사랑채 쓴 글에서 일본인이 원래의 사과를 복원한 과정을 보면서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참담한지를 느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사회, 지구의 자연의 모습을 보면 어떨지 상상이 가는 대목이다. 이런 것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과는 상온에서 2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만물의 영장 인간이었던 아담 유일하게 하나님의 아들인 사람.....사람의 아들 인자인 예수님과 대비된다..영을 가졌다는 것은 이 지구의 모든 생물을 지배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필자의 집은 오래된 아파트이다 원래 바퀴벌레가 없는데 바퀴벌레가 생겼던 적이 있었다 다 하수구를 타고 들어온 모양이다 근원적으로 박멸하고 유입통로를 차단하였다고 생각하고 안심하고 살던 때였다. 6개월이 지났을까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직감이 발달한 아내는 뭔가의 존재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때 완전박멸과 차단에 의심치 않았던 필자는 아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 실제 출현을 목격하게되고 그들의 단란했던 보금자리까지 찾아 완전박멸에 이르기까지 피를 말리는 혈투를 몇칠간 벌여야했다
어찌된 노릇인가 만물의 영장 인간이 왜 이리 나약해졌단 말인가 바퀴벌레 몇마리에게조차 이길수 없는 인간은 영장이 아니지 않은가 맞다 사람은 현재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누구일까 바로 우리모두의 적 사탄이다
그럼 다시 돌아가서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가 유혹에 넘어간 것은 무엇일까? 벗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뭐라고 도대체 죄가 들어오고 이런 난리법석을 떨게 된 것일까
뱀의 꾀임에 빠져 선악과를 먹었는데 웬걸 눈이 밝아져 벗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끝나고 마는 이 사건. 동산중앙에 있는 이 나무도 하나의 설정일수가 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규칙을 어기고 그 판도라의 상자를 아담이 연것이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부르는데 두려워서 숨는다 벗은 부끄러움을 알게 되니 완전한 신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많은 신학자들이 탐구하였던 것이다
정신의 세계를 잠깐 살펴보려한다 19세기말부터 정신의 세계는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알다시피 정신의 세계에서 프로이트가 차지하는 위상은 크다 그는 무의식을 발견하고 명명함으로써 인류에게 의식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린 공이 크다 그는 또한 꿈의 해석에 관심이 많았다. 의식없이 잘때 나타나는 정신활동인 꿈은 각개인의 무의식적인 것을 보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의식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개인의 행동을 조종하기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꿈을 통한 개인의 정신분석이다
"의식한다" "의식적이다"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알수 있듯이 의식이란 자신이나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고 의식세계라는 말은 인식하고 있는 세계의 범주를 뜻한다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바로 의식이 생겨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벗은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에 반대되는 의식이다 무의식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거 같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똑같은 것을 보는 시각이 바뀜을 뜻한다. 자신의 생각이 생긴거고 판단의 근거이고 생각의 바탕인 의식세계가 형성되기 시작한 거다
선인지 악인지를 구별하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 존재를 알아챈다는 것은 그것이 생겨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다시 실존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고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가 된다. 개인적인 차원에선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고 결국 나는 나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 된다 물론 사람들간의 공통분모는 존재한다
의식이라는 생각의 구조화된 틀은 어린시절(7-8세경과 사춘기경)에 형성되며 나이가 들어갈수록 견고한 자신만의 의식세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람마다 차이가나는 의식세계를 갖고있기 때문에 타인과의 공감과 소통에 장애를 겪게 되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사람이 의식한다는 것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 뿐아니라 자신의 벗음의 수치나 공포를 의식함을 말하고 그 의식은 사고의 바탕이 된다 의식하는 사실에 의거해 사고를 하는 것이다
또 달리 말하면 자신이 한 무의식적 행위는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무의식적인 것은 기억이라는 사고의 재료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자체가 죄라는(죄성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의식이 있었기에 선에 해당하는 법을 만들었고 악에 해당하는 죄(과거의 의미, 범죄하게된것이다로 바뀌는게 맞음)를 짓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살아야하는데 의식적으로 인간이 무엇을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순리와 먼 삶을 살게 되었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의 타락이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아담은 타락함으로써 선과악(보통 나쁜범죄만 생각하지만 인간적 선도 하나님이 보실때는 죄의결과에 해당한다)을 들여왔지만 사람의 아들(인자)로 태어난 예수님은 그 인류역사를 바꾸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써 인간은 죄에서 해방되고 영원히 죽지 않게 되었다..우리는 새생명을 상징하는 교회의 일원이 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
이것은 20세기 심리학적 지식으로 봤을때 의식의 무장해제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식이 무장해제 될수 있는 길이 열린것이다 그렇게 열린 그리스도인의 삶인 신앙생활은 낡은 옛사람을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희생과 사랑의 삶을 살아가야한다 자신이 믿던 의식의 틀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고 변화되는 삶이란 것이다. 새사람을 덧입는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태초부터 있던 자연스러움 삶인 무의식적 삶으로의 귀환일수 있다
심리학은 그런이야기를 한다.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 함으로써 인간은 자기 자신의 본성(영혼, 자기)과 위대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 그 무의식을 인식하는 과정은 끊임없는 수련과 지속적인 노력, 최고의 책임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사람의 인생에서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수양의 종교인 불교의 경우에도 인간본성의 근원을 알았고 의식적 수련을 통해 해탈하여 부처가 된다고 하지만 뭔가 그끝과 기원이 모호하다. 그러나 인간의 근원인 참자기를 발견한다는 것이 나쁜 것 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물론 필자는 불교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인간성의 근원에는 닿아 있고 공동체의 선을 추구한다고(이것이 대중종교의 조건이다) 해도 뭔가 문제가 있다. 시작을 설명할수없고 끝이 없다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사이비라 부른다. 그러나 현대에 있어서는 종교에 대한 배타적 시각을 심하게 갖기 보다 조금은 포용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편협한 성경적 시각을 넓여 성경의 더 깊고 넓은 의미를 알게 해주는 간접장치가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마음수련이라는 사이비 종교가 있다. 필자는 이런 것을 매우 중대한 문제로 생각한다. 이 종교를 알게 된 것은 신문에 광고와 거리의 홍보물을 보고 알게 되었다. 교주가 책을 썼는데 이세상에 살지 말고 영원히 죽지 않는 하늘나라에 가서 살자?라는 제목이었다. 책을 구하여 읽어 보았다
망상의 세계에 살고있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 보고 듣고 하는 것은 자신의 카메라에 찍히어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를 긴 책 한권에다 지겹게 반복하고 있었다 결국 의식이란 어려운 단어를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그것이 의식세계라는 얘기였다. 읽어보고 책을 찢어 버렸다. 다른 사람이 봐서 현혹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나쁜책은 분서해야한다 더 알아보니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마음수련을 해야한다고 하며 수련법으로는 불교적 명상법과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엔 함정이 있었다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신 콤플렉스였다 교주 자신을 신의 예언자, 심지어 신 그 자체라고 믿고 인류에게 정의와 구원의 길을 계시할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콤플렉스가 전인격을 점령한 결과이다. 사이비는 이렇게 핵심을 교묘하게 비켜간다
(신 콤플렉스가 인격 전체를 점령하는 대신 인격의 일부로 그 기능을 한다면 그는 인류를 위해 큰일을 할수도 있다고 한다)
카톨릭에도 비오신부의 오상이나 마리아상의 눈물같은 신비적인 것이 가까이 들어와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부분에 열광하고 그것을 믿음이라 생각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럽의 경우 부패가 심하지만 한국 카톨릭은 이런 부분은 적절히 잘 처리하는 편이라고 알고 있다 신비적인 현상에 대해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 보고 있다. 이런 스타일은 성경을 통해 알고 있는 복음과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에도 병치유나 신비적인 현상이 있지만 그런 것을 통해 사람들이 현혹되고 믿고 따라가는 것은 성경의 본질을 벗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이비종교는 마음수련뿐아니라 비슷한 형태로 세계곳곳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인에게도 의식의 무장해제와 무의식의 인식이라는 새로운 지평에 대한 가능성을 역으로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지식이 바뀐만큼 성경적으로 새로운 사실이 추가될 수 있고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사탄은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제 그런 것을 원하고 자신안에 있는 신의 모습을 발견하길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을 가진 사람은 깊게 들여다 보면 하나님과 닮은 면이 있고 그것이 곧 신을 발견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이 그런 존재인 걸 알게된 인간은 자신이 신이라는 착각에 빠지며 인간성의 극에 도달할 수가 있는 문제를 함유하고 있다 자신이 신처럼 될수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교만에 빠진 형국이다
기독교의 신앙은 어떤가? 십자가를 통해 죄의 용서("사함"으로 바뀌는 것이 맞다)뿐아니라 사랑과 희생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심판의 날을 말하고 있고 재림과 생명에 대한 기다림의 신앙이 있다
지상낙원이라는 문제도 사이비로 자주 대두되는 부분이다. 인간의 세계에서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가능할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운데 있는 죄의 싹을 뿌리 뽑아야한다. 인식하는대로 회계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자복해야한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발견할수 있도록 온교회와 목자를 위해 기도해야한다. 그것은 지상 낙원이 아닌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위해 우리가 부지런히 해야하는 일이다. 소공동체인 우리가 다니는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기 위해선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죄(의식)에 물들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라는 것은 공산주의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돈이 될만한 것은 무엇이든 팔다보니 자신의 영혼마저 팔아버린 사람들이 허다하다. 교인중에서도 마찬가지 이다. 하나님을 믿고 예배를 보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중 일부는 천국에 가기 위해 자신의 의를 하나하나 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겐 천국마저도 사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기 싫은 갖고싶은 것일지 모른다. 이런 사람에게 천국은 멀리만 있을 것이다
선이란 것도 우리를 헷갈리게 하며 찾아온다.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선이라는 정의와 옳고 그름을 따지다 보면 우리는 쉽게 화를 내고 말기 때문이다. 화라는 것은 성령이 주시는 평화와 다른 것이다. 정의와 선함이라는 것도 결국 돌변하면 화와 분노가 되고 만다. 자신의 의식의 기준이라는 것은 판단의 근거이기 때문에 쉽게 벗어나기 힘든 사슬이다. 이일은 이렇게 되어야하는데, 이렇게 되는게 바른데, 이 사람 이렇게 행동하다니 너무한거 아니야라고 말하기 쉽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자신에게만 그렇게 계속 보이는 것이지 그 사람은 그런 나쁜 사람은 아닌 것이다.. 필자는 신앙생활하며 이런 부분을 통렬히 느끼며 타인을 더욱더 보게 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인도를 믿는다. 정말로 정말로 그 사람은 내가 생각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보는 관점과 잘할려면 이렇게 되어야 된다는 생각은 틀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해하기 힘든 그들과의 갈등을 야기할 뿐이었다. 갈등은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견고한 자기만의 의식에 막혀버리면 타인과의 불통을 야기하고 자신은 이세상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만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적으로 보기 시작한다. 남을 쉽게 의심하고 자신을 해할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고 자신의 마음의 문제를 타인의 행동때문이라고 투사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은 이러한 문제로 부터 해방을 뜻한다
산상수훈에 보면 남에게 오른쪽을 맞으면 왼쪽을 돌려대라고 하였고 송사로 재판관에게 가거든 가기전에 급히 화해하라고 했다. 왜냐면 자신이 잘한게 있을지라고 남에게 책잡힐 작은 것이라도 있으면 결국 그것이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감옥살이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정의보다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행여 나의 잘못이 부각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대처가 아닐수 없다.
남이 나에게 돈을 꾸어달라하면 돈을 주고 돌려달라고 하지 말라고 하셨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 내것을 챙겨야되고 돈없는 삶을 생각할수 없는데 이것이 말이 되는가 성경의 말씀은 우리의 현실로 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믿어야한다 지혜를 배워야하는 것이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에게만 잘하는 것은 감옥에 있는 죄인들도 하는 것이다. 나에게 잘못하고 나를 해하는 자들에게 진정으로 잘해주라고 한다. 그건 악을 선으로 돌려주는 것을 말한다.
이런 말씀은 최근 필자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성경을 원어로 설명하지 않음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의 평화가 우리에게 오고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믿었는데 왜 삶은 갈등과 불행 분노로 가득하며 삶은 자연스러움과 자연으로부터 오는 행복을 빼앗기고 살게 되는가
위 내용에서 답을 찾았으리라 생각한다. 필자가 다른복음을 전한다고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들이 겪은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
예수님의 평화는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살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삶이 개개인들의 삶을 통과할때 세상은 우리를 칭찬하게 되고 우리가 가진 진리를 궁금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복음의 전달이다. 그래도 도저히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세상의 주인이 현재 사탄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믿지 않는 학자의 이야기를 보거나 사이비종교가 생기는 형태를 보면 진리의 말씀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방법론을 배울수 있고 사탄이 존재하는 것을 확실히 살면서 볼수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의 완성이 새생명은 더 확연히 드러난다
이러한 우리의 복음 말씀을 믿는 믿음은 세상을 이기게 될 것이다. 그날이 언제인지 알수는 없지만 말이다 세상을 이겨온 말씀의 역사가 교회의 역사였다. 변화된 사람들이 이어오는 살아있는 말씀 그리고 시대를 따라 달리 나타나는 성경의 의미...교회는 세상 마지막까지 지속될 것이다...세상에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교회가 아무리 타락하더라도...창조의 역사를 이어가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절망하고 있을때 기적을 일으키신다
카톨릭 개신교 할 것없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악뿐만 아니라 선에 대한 의식을 버리고 자신을 발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열릴 것이면 열릴 것이고 때가 아니면 아마 배척될 것이다. 필자는 작은 육신에 불과하지만 참된 교회 공동체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하나님의 순수한 어린양을 닮은 아름다운 교회는 어짜피 대세이니까 걱정하지 않는다
이쪽으로서는 댓글로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란 추호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본인 스스로 글을 내린 건지 어쨌든 삭제된 듯한데...
20세기 심리학은 그런이야기를 한다.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 함으로써 인간은 자기 자신의 본성(영혼, 자기)과 위대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우리는 우리가운데 있는 죄의 싹을 뿌리 뽑아야한다....필자가 다른복음을 전한다고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열릴 것이면 열릴 것이고 때가 아니면 아마 배척될 것이다…무의식을 아는 것은 자신에게 작용하는 악을 차단할 수 있고 사람사이의 갈등을 조절하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핵심이다”(??)
그래도 명색이 기독 신앙을 가진 이들의 모임이라는 곳에 내걸릴 수 있는 건지
의아해 할 수밖에 없는 이들도 있겠으니
이 사이트에 접속하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폐해를 좀 돌아보아 주십시오.
그 설교 밑에다가 “환상”(?)이란 단어를 말꼬리로 이어받은 독창적인(?) 상상력으로다가
이런 황당한 게시글들을 시리즈로 내놓을 기세로 나오지를 않나,
그야말로 이 뭔 "잡탕짬뽕" 사이트인가 싶어 ‘............just speechless........’ 인 사람들 및
같지도 않은 '말'(?)들로 피해 보게 되는 이들도 더 더욱 부지기수이겠으므로,
그런 본인의 생각을 내놓고는 그에 반응하는 상대를 '사탄'이라고 비방하는 거야 뭐 님 자유일 수 있겠으나
( PS. : 그리고 그걸 거들어 "완성판"(?)으로 만드는 데에 "일조"하느라고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는 사탄"이니 "개독"이니 운운 비방하는 거야 뭐 님들 자유일 수 있겠으나 ㅋ~ )
어쩔 수 없이 다를 수밖에 없는 각각의 영적 상황 조건에서 그저 "부담 없이" 내놓는 말이라 하더라도
일정 수위의 공적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는 특정 커뮤니티 공개 게시판에서의 발언에 관한 한
적어도 그 '특정' 측면에 상관되는 일정 수준의 통제성 대응이란 것은
그게 그 누구로부터의 발언이 되었든 간에 수반되어야 하는 만큼
'이 다비아 사이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서' 부득이 발언하는 것이니
'송현곤'이란 닉네임 쓰는 분, 제발 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임시저장된게 공개 게시판에 뜨더군요 그래서 놀라서 제가 지운 것입니다
융을 검토해보려고 융의 책을 다시 읽었는데
융의 글이 헷갈리게 다가왔기 때문에 글을 중단하였는데
융을 통한 사탄의 장난에 제가 놀아난 꼴이 되었군요
(융이 사탄과 제법 관련있는듯 한데 그런 위험성이 있음에도
그의 시대적의미와 융의 현대사회에서의 위상때문에 보지 않을 수 없는 책입니다
아마 융도 자신이 사탄의 장난에 의해 몇몇 글을 쓴 것을 모를 겁니다)
그러나 아무튼
2C120님의 보시기에 문제가 많은 글이었나 보군요
다른 분들도 많이 그러신듯한데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송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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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그런 황당한 자의적 생각에서 나온 글들을 대한 독자들이
기독 신앙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이 사이트가 기독사이트라고 되어 있으니까?)
그릇 인도될 수도 있다는 폐해를 고려해서 즉,
‘그리스도의 몸’이 받을 수 있는 손상의 충분한 개연성 때문에
부득이 발언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는 점은 이미 밝혔고 따라서
어처구니없는 ‘인간 판정’(?)까지 들어야 할 이유가 추호도 없다는 걸
라 하시는데
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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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곤님, 변변찮은 제 글도 힘이 되었다고요. ^^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비아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어서.. 라는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당연히 아니지요.
더구나 정목사님이 누구랑 사전에 논의하고,
저 특정한 어떤 분이 대표선수인줄 알았군요.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이제 정확하게 아셨으니, 짐 싸시는 건 보류하셔요.^^
그러니 마음에 부담 내려 놓으시고, 글 천천히 더 올려 주세요.
참고로 여기는 회원가입에 특별한 조건이 없는 줄 압니다.
이단도 들어오고요.^^
와서는 본인소속이나 자기자랑 엄청 해요.
그러면서 정목사님 다비아, 다비안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지요.
그럴려고 작심하고 들어오는지 아닌지는
알수 없으나, 하옇든..대부분 그러더라구요.
그럼에도 다비아는 별 제제가 없더라구요.
저도 이런 다비아의 포용성에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어요.
이런 게 진정한 기독교의 사랑 아니겠냐고요.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서로 용납하며 살아가야 할
연약한 피조물이니까요.
저는 이게 정목사님의 지론일 거라 믿습니다.
진심으로 주님의 위로를 빕니다.
어떤 사람도 저에게 정확한 얘기를 해주지 않으십니다..모르는 거 같기도 하고 피하는 거 같기도하고요
다비아의 포용성에 놀란다고 하셨는데 제가 인간적으로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 그것이었습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포용성입니다. 그러기에 목사님의 마음을 알면서도 의심하고 짐싼다는 얘기를 자꾸만 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용납 입니다 관용과 포용이 아니면 우리를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을 알수도 없고 우리의 책임을 회피하게 될 뿐일 겁니다 자신을 비난하고 나쁘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모두 자신의 스승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문제가 사라지면 그들은 떠나간다. 진짜 입니다.
첫째,
이 사이트의 다른 목회자 글 내용에 대한 문제 제기 성격의 댓글들이 붙은 게시물—은
즉각 게시물 삭제해 버리는 것으로
할 수도 있어서
준수해야 할 기본적인 네티즌으로서의 시민 의식에서조차
“본인 소속이나 자기자랑 엄청” 해 대면서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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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생각하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면 안됩니다.
WCC 관련 글을 이동조치한 것은 다비아랑 성향이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만약 그렇다면 다비아에 냉소적인 2C120님의 글이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겠지요)
본인의 글이 아닌 단순 퍼오기방식의 글을 토론방에 올렸기 때문입니다.
열린토론방의 공지에 펌글이나 단순링크의 글에 대한 제재조치가 명시되어있구요.
글 게재 당사자에게도 쪽지를 통해 토론방에 적합하게 글을 수정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글 게시자가 아무런 응답이 없어 해우소이동사실을 알리고 조치를 한 것입니다.
인신공격성 비방글에 대해서는 인신공격이나 비방이 명백할 경우가 아니라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쉽지 않고 다비안 스스로의 자정을 기대하는 측면도 있으며
글쓰기를 위축시킬 위험도 있어서 그간 최소한의 조치만을 취해왔습니다.
지난번 2C120님과 관련된 논란과 관련하여 명백한 인신공격이라고 판단된 글의
글쓴이에게는 이미 쪽지를 통해 운영규정에 따른 주의조치를 했습니다.
추가 및 후속 조치 등에 대해서는 운영원칙 등에 대한 정비와 함께 진행하려고 합니다만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시간이 조금 지연되고 있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다비아의 사이트 관리와 관련하여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수 없는 위치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면 안됩니다.>
공정성의 원칙에 의해 모든 회원들에게 균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게 상식이고
(이 사이트 운영자가 주관하는 교회 교인이라 해서 예외가 적용될 수는 없다는 그런 말!)
게시자 Jäger’ (변경 전 닉네임은 ‘포크숟가락’ )의 인신공격 비방 시리즈 게시물들의
게시자 Jäger’ (변경 전 닉네임은 ‘포크숟가락’ )에 의하면, 왈,
이쪽 2C120 이 “운영진의 권유나 요구”(?) 및 “운영 방침”(?)을 명백하게 "수차 어겼었기 때문에"
그 자신이 나서 그걸 저지해 보겠노라고 그런 개 같은 인신공격 비방 게시물들을 내걸어 대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에 대해 피해자인 이쪽에서는 분명,
'운영진'을 빙자해 부득이하고 필연적인 '게시 근거'(?) 운운 해 가며
그 같은 허위정보 생산 유통을 하는 "행태"(!)에 있어서는 그 "사실 관계"에 관한 한
운영진으로부터의 책임있는 공개 답변이 있어야 한다고 그걸 요구했었던 바가 분명 있었고
그런 허위정보 생산 유통으로 인한 피해를 더 더욱 '방조'와 '비호'로 증폭시켜 온
정용섭 목사님과
그 대리자 김태형 님이
본인이 생각하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면 안됩니다.”
도대체 그런 어이도 없는 자기모순의 말을 공개 게시판에 내놓을 수 있다니,
도대체가 양심 안에서 부끄럽지는 않으신지요.
(만약 그렇다면 다비아에 냉소적인 2C120님의 글이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겠지요)
본인의 글이 아닌 단순 퍼오기방식의 글을 토론방에 올렸기 때문입니다.
열린토론방의 공지에 펌글이나 단순링크의 글에 대한 제재조치가 명시되어있구요.
글 게재 당사자에게도 쪽지를 통해 토론방에 적합하게 글을 수정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글 게시자가 아무런 응답이 없어 해우소이동사실을 알리고 조치를 한 것입니다.>
‘믿음소망사랑’ 님이 올린 지난 4월 12일에 연속 3꼭지 올린 게시물은
‘믿음소망사랑’ 님이 지난 4월 11일에 올린 ‘이단 WCC 의 정체’는 열린 토론방에 게시되어 있는데,
운영 참여 및 건의사항 게시판으로 이동 조치된 게시물들이나
지난 3월의 게시물을 가리키는 말임은 님이 더 잘 알고 있으실 겁니다.
게다가 지난 3월의 그 게시물이 아니라 사랑채 게시판에 게시되어 있다가
이동 조치되어 있는 지난 4월 게시되었던 그 3개의 게시물 또한 마찬가지로
단순 링크로 소개한 게 아니라 ‘펌 글’ 그대로를 게시물 내용으로 했다 라든가
유사한 화제의 게시물들이 동일 게시자에 의해 게시되었다 라는 정도의 사유 이외의
다른 사유를 찾을 수 없는 바, 그런 식의 게시판 관리 사유를 사실상
3개 게시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동조치되어야만 할 게시물들이 부지기수라는 점은
이미 이쪽이 누차 아래 게시물들에서도 지적한 바도 있구요.
즉, 다비아 운영원칙에도 명시되어 있는 바, 게시판 관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부분—가령
'비위에 거슬리는'(?)특정 회원에 대한 집중 인신공격, 비방, 개인정보 유출 침해, 모욕,
명예훼손 등등의 사이버 폭력 발언들—에 있어서는 왈,
게시판 관리자라는 게 원래 없어서
관리가 안 될 수밖에 없으니 그리들 아시라 라고 하는 공식 변명을 내놓기도 하는데,
그러나 사실상 그런 변명과는 달리
게시판 관리자에 의한 게시판 관리라고 하는 것은
위의 게시물 이동조치나 삭제에서도 바로 확인되는 바와 같이
다른 사이트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시행되고 있는 중이라는 점,
그런데 그 같이 게시판 관리가 시행되고 있는 부분에 있어서도
또 위 예들에서 본 바와 같이
운영원칙의 공정한 적용에 의한 관리가 아니라 편파적 차등 적용 모습으로
게시판 관리가 실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라는 점,
등등 게시판 관리 운영에 관한 이런 얘기는
이미 누차 나왔었고 지적되었던 얘기인 것도
관리자로서는 다른 회원들보다 더 잘 아실 겁니다.
글쓴이에게는 이미 쪽지를 통해 운영규정에 따른 주의조치를 했습니다.
추가 및 후속 조치 등에 대해서는 운영원칙 등에 대한 정비와 함께 진행하려고 합니다만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시간이 조금 지연되고 있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리스도인들의 기독교 '성서 아카데미' 운운 하는 명칭으로
사이트 개설해 남의 개인 정보 받아다 회원 만들어선
'그리스도인'(?)이자 운영자/관리자로서의 양심과 양식에 입각한 사이트 운영은 커녕
네티즌 기본적 상식까지도 "막 가자" 식으로 "망가뜨려" 가면서
사이트 글에 대해 찬탄, 감사, 감격의 칭송 댓글을 달지 않는 회원에 관한 한
그 받아 챙겨 둔 회원 개인정보로다가 자칭 "정 빠"들이 제 하고 싶은 대로
남 개인 정보를 공개 게시판에서 사이버 폭력 자료로까지 쓸 수 있도록
웬 별천지 치외법권(?) 인터넷 왕국을 다 만들어 그 따위 폭력 "행태들"을
묵인, 방임해 주는가 하면,
사이트 글에 대해 찬탄, 감사, 감격의 칭송 댓글을 달지 않는 회원에 관한 한
측근 교인(?)이 '운영진'이니 '운영 방침'이니 를 빙자해 가며,
운영진을 등에 업은, 웬 어이도 없는 거짓말들을 '게시 근거'로 떠벌리며
그 회원에 대한 집중 인신공격 시리즈들을 내걸며 나대도
명시된 운영 원칙이란 건 내팽개쳐 버리고서,
그런 행태에 대해 운영자/관리자로서 합당한 네티즌 상식상의 경고 한 마디는커녕
대신, 사이트 글에 대해 찬탄, 감사, 감격의 칭송 댓글을 달지 않는 회원을
공개 게시판에서 은근히 비난하는 공개 발언들이나 내밀면서 도리어
그런 인신공격 "행태들"을 우회적으로 두둔하고 비호해 주기까지 하는,
그처럼 끼리끼리 "유유자적" 노니는 초록동색들만의
웬 그런 희한한 "영성"(??)과 "평화"(??)의 "경지"에서
심지어
"(그런 점에 관한 한), 이 사이트에는 원래 게시판 관리자란 게 없어서 그렇다"(??) 운운의
그야말로 삼척동자도 듣고 웃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가관"의 공식 발언을
공개 게시판에 내놓기까지도 다 하는, 그런 대단한 양심(?)과 '포용성'(?)을 지니신
'관리자' 님,
도대체 ‘누구’에게
언제,
“뭔 내용의 쪽지를 통해 운영 규정에 따른 주의 조치를 했었다”
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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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송님이 쪽지를 받은 후 회원탈퇴를 하여(그뒤 다시 가입하였습니다만) 그동안 삼송님이 쓴 게시글과 댓글 쪽지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이 캡쳐사진은 관리기능을 통해 해당 쪽지에 접근한 것으로 받는이가 비어있는 것은 그때문입니다.
이 건과 관련해서는 시간 관계상 더이상의 대응은 하지 못함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게다가,
그나마 미봉책으로 내놓은 그 두 가지 내용만 놓고도
즉각 삭제 행사되었던 것으로 나타나거나
이 사이트 목회자 글에 대한 신학적 문제 제기 댓글들이 달렸던 게시물을 놓고는
그런 해당 게시물은 즉각 삭제한 걸로 나타나거나
했던 사실들에서
인신공격 비방 시리즈 게시물들에 있어서는
단 한 마디 경고 조치조차 없이 도리어 비호, 두둔해 오다가
게시물 등등 경우에 있어서는 왜 즉각 삭제해 버리는 것으로
그 "대응"책으로다가
'내 운영'에 필요하면 '생겨나서'(?) 게시물 삭제권을 행사하다가는
또,
'내 운영'에 필요하면 "이 사이트엔 원래 관리자라는 게 없는 거다"(??)로
'종적을 감추기'도 하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어이없이 지저분한 카멜레온 모습의 "가관"을 보여 주더니
너는 정 목사님께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흠집을 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만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라 너 같은 노인네가 다비아를 어지럽히면 안 된다.. ”
운운으로 게시판에서 욕질들 한 것에 대해
더욱이
할 일 다했다고 주장해 보겠다는 것??
또 그 후에도,
재가입한 그 닉네임 ‘삼송’이
심지어 남의 실명 정보까지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공개 게시판에 공개해 올려대는
그 실명 개인정보, 허위정보로 조작된 연령 개인정보들을 놓고
뭔 "1000년 묵은 구미호"니,
뭔 "사탄의 알바생"이니,
뭔 "TV 봉숭아 학당에 나오는 맹구"니,
뭔 "남의 피를 빨아먹고 기생하는 기생충, 신학적 기생충"이니 하는
고 따위의,
천하에 개 같은 짓거리들은 완전히 묵인해 온 상황에서??
특정 회원에 대한 인신공격 시리즈 게시물들 —
"수차례 무시하고 어겨 왔었다"나(??) 그런 이유로 해서(??)
고 따위 인신공격 비방 시리즈 게시물들을 게시해
도대체가 그런 거짓말들을 공개 게시판에 내놓을 수도 있고,
운영 원칙을 어겨가면서
시리즈로 내걸 수도 있는
뭔 "기독교 성서 아카데미"??
운영원칙을 외면해 가면서까지, 아울러
운영진을 빙자한 고 따위 거짓말들을 묵인, 비호해 주기까지
해 가면서,
성인 네티즌들로서의 기본 상식적 법규까지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서
파행적으로 찌그러뜨려 놓고 지킬 줄도 모르는
시민으로서 보여 주는 그 정도 수준의 '견강부회' 양식(?)으로다가
뭔 "신학적(?) 지식"(?)이며 뭔 "기독교 영성"??
"그러면서"도
"홀로 의로우신 하나님" 운운 해 가며
빈 깡통 소리로 "엄청" 떠들어 대는
뭔 씨도 안 먹히는 "본인 소속이나 자기자랑"??
게다가
정 목사님 글에 감사, 찬사 '아닌' 댓글들, 즉
성서 진리와 관련해 질의성, 문제 제기성 내용의 댓글을 다는
회원에 대해서는
자칭 "정 빠"라고도 하는, 다비아 "대표선수"가 되고 싶어
몸이 달아 난리 치며 나대는 족속들이 나서서
일반 회원들은 확인할 수 없는 남의 개인정보를 가지고 그걸 다
공개해 가며 공개인신공격 비방 자료로 다 써 먹으면서
천하에 몹쓸, 개 같은 장난질(?)이나 해 대는
천벌 받고야 말, "행태"를 연출하거나
또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는 사탄"(?)이니,
"돼지고기 김치찌개든 참치 김치찌개든 다 마찬가지로 결국 김치찌개"일 따름인데
그걸 뭘 '돼지고기'가 들어갔느니 '참치'가 들어갔느니 따져 "비판"하면서
'참치'든 '돼지고기'든 그 "잡탕짬뽕" "김치찌개" <다른 복음> (갈 1:6~9)의
맛깔스런(?) 글들도 "제대로"(?) 감상(?)해 낼 줄도 모르는 "개독"(?)에나
그저 "일조"(?)하면서,
도무지 "사리분별 못하고"(?) 있는 "개독"(?)의 특정 인물 이라느니 해 가며
욕질이나 해 대는
그런 한심하기 짝이 없는 "행태들"이나 연출하고 있는
뭔 어이도 없는 "기독교 영성"??
고 따위 '양심'과 분별력과 "행태들"로
그야말로 지나던 개도 듣고 웃을,
뭔 "성서 진리와 실재를 추구하는 우리 다비안들만이 나아갈 우리의 길"??
또
고 따위 "행태들"을 놓고서도
차마 눈 뜨고 못 봐 줄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그런 짓거리들을
도리어 묵인, 방임, 방조까지 하고 있는 운영/관리(?)의, 도대체
뭔 씨도 안 먹히는 어이없는 "기독교 영성"?? ) — 을
공개 게시판에 떠벌리는 "행태들"을 놓고서도
운영자로서는 단 한 마디의 책임있는 양심적 공개 해명도 없이 도리어
피해를 가중시켜 오면서,
달랑 하나 내놓는 웬 "주의" 쪽지??
지금까지 해당 게시물들의 조회 수가 어떻게 되며 그에 따른 피해가 도대체 얼마나 한 건데
“영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응대해 줄 수가 없다는 가당치도 않은 사유로
'성서아카데미'라고 개설해 놓은 사이트에서 해당 게시물을 놓고 하는
성서 진리 관련 논의도 외면한 채, 다름 아닌 글 게시자 본인의 글에 대해서까지도
열혈 다비안 지원부대나 대신 나대며 지원 발언으로 떠들게 내버려 두거나
때로는 인신공격 비방까지 하게 내버려 두곤 하는 비정상적 '아카데미'(??)의 진국을
다 내보여 주다가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시간이 조금 지연되고 있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2013년 1월 12일 이 사이트에 회원 가입이란 짓을 다 해 보았던
그 당시엔 그야말로 꿈에도 생각 못했던 바,
이런 희한한 '세상'이란 것도 다 있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 어쩌다 그만
두루 다 목도하게 되면서, 볼 만큼 충분히 잘 “구경”했네요.
“어떤 사람도 저에게 정확한 얘기를 해주지 않으십니다.. 모르는 거 같기도 하고 피하는 거 같기도 하고요”
했으니 조금은 더 알려 드리죠.
마침 한국어 번역문도 붙어 있기에 그대로 그 부분을 가져와 보면
“하나님이 당신을 번영케 하시기를 바랍니다.”라는 표현에서 왔습니다.
요즈음은 이 말을 자주 듣지 못하지만, 요한사도가 요한2서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Godspeed)도 하지 말라”
(요이 1:10).
“사랑의 사도”로 불리어 온 요한은 왜 믿는 자들에게 다른 사람에게 축복하는 말을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고 있을까요? 당시 복음전도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따뜻하게 제공하는 숙소와 식사 대접에 의존하며 돌아다녔습니다. 여기서 요한은 믿는 자들에게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순회하는 전도자들이 사도들의 가르침과 일관된 교리를 가르치지 않으면, 그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거나 재정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그들의 사역을 축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믿는 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듯이 우리도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께 먼저 지혜를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님께서(요 16:13)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성공을 빕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적절한 때를 알려주실 것입니다.
(기도)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어디서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를 알게 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PS. :
‘인간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그것이었다는.. ㅎㅎ
그런 것은 ‘포용성’이라 지칭되는 것이 아니고 이름하여
성령님과의 “살아 있는” 교제로부터 빗나가 있는 경우가
그 같은 폐해에 대한 관심 및 우려의 마음이 있을 따름인 사람이니 그 점에 관해서도 분명히 해 두지요.
게시판 교통정리를 위해 (더욱이 이 사이트에서?!)
기독교 사이트를 지켜 잘 못된 글들이 한국교계에 가져올수 있는 크나면 문제를 걱정하셨기에
이렇게 댓글을 아니 달 수 없었군요>
게시판 대하는 독자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건
적어도 사리분별이 되는 성인 네티즌이라면 지켜야 할 일인 것이며
제가 존경하는 로이드존스 목사님도 의사 출신이셨죠.
아무래도 성경을 받아들이는 도화지가 다르기 때문에 아웃풋도 다른 것 같습니다.
1. 선악과와 관련된 글을 읽어보니
송현곤님의 죄에 대한 인식이 궁금합니다.
지금의 글의 논리를 따라가면
인간이 이성적으로 의식을 하게 된 것 자체가 죄의 근원이다라고 하시고
예수를 통해 죄가 없어진다.라고 이어지네요.
이것은 결국 예수를 통해 의식이 없어지게 된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원하시던 결론과는 좀 차이가 있나요?
아니면 정확하게 이해한건가요?
예수를 통해 의식이 없어진다라는 것은 신과의 일체 즉 불교의 범아일체이고
이것은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가진 쪽에서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죠.
즉, 인격신이 아닌 범신을 추구하는 것이구요.
죄는 하나님에게로의 방향성이 깨지는 것이지,
의식이 생겨남으로 인해 파생된 결과가 아닙니다.
죄가 의식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된다면
예수를 통해 구원받는 우리는 의식세계와는 단절해야하죠.
성경에서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을텐데요.
2.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외부와의 의식관계성에서의 평화를 주는 사건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너무나도 많이 축소하는 겁니다.
달라이라마가 인터뷰중에 나라를 빼앗은 중국에 대해 화가 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제가 화를 낸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없고 제 자신만 상할 뿐인데 그런 일에 화를 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제가 나라를 위해서 해야하는 일들은 화를 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한 적이 있습니다.
송현곤님의 인식에의 해방에 관한 인식은 달라이라마의 인터뷰에서 나온 것과 유사합니다.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신실하심을 입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지
의식문제에서의 해결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참고.
그리고 성경에서 환상이라는 표현이 원어상으로는 쓰인 적이 없습니다.
히브리어의 하존이 한글성경에서 계시, 환상, 이상 등으로 혼합되서 쓰이고 있지만
결국 하존의 의미는 계시로 보아야 합니다.
무의식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면
자기자신에게 더 솔직해질 수 있기에 정말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의식이란게 의외로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진짜 콤플렉스는 본인은 인식할 수 없다.' 라고 설명하던데
우리 행동 하나하나에 영향을 주는 무의식을 인지한다면
타인과의 관계도 자신과의 관계도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to be continued
하신다니 긴장보다 기대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