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위기 앞에서 한길교회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사적인 생활로 물러난 지도 어언 6년 6개월이 지났다. 내 삶의 전부였던 교회를 떠나 철저히 단독자로 살아야 했던 지난 시간은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쉽지 않은 세월이었다. 일 없이 살아야 하는 몸의 고독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정신의 고독은 말할 것도 없고, 반복되는 입원과 불가능한 희망을 부여잡아야 하는 고뇌, 인정사정없는 손익계산 앞에서 철저하게 짓밟히는 자존심과 싸워야 했다. 반복되는 일상을 견뎌내지 않으면 안 됐으며, 매순간 노심초사하는 아내와 아들의 염려와 돌봄을 받으며 제한된 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지난 시간은 그야말로 집안에 갇힌 따뜻한 광야의 세월이었다.
물론 단독자로 살아야 했던 그 세월이 단절의 시간이기만 했던 건 아니다. 무료함의 연속이지도 않았다. 고독했던 그 시간은 사실 고요한 성찰과 사색의 시간이었다. 목회 사역으로부터 물러나지 않았다면 돌아보지 못했을 많은 것들을 돌아볼 수 있었던 참으로 복된 시간이었다. 특히 나 자신의 지나온 삶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 한국교회를 현장에서 한걸음 물러나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글을 쓰면서 나 자신과 깊이 대화할 수 있었던 것, 용서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것은 정말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축복이었다.
그 시간은 또한 사랑의 시간이기도 했다. 아들 녀석이 자원하여 자기 몸의 일부를 떼어내 준 사랑의 헌신은 말할 것도 없고, 적지 않은 세월동안 영혼과 몸을 다해 격려하고 배려해 준 아내의 사랑 깊은 돌봄, 한없이 연약한 자를 잊지 않고 기도해주며 관계의 끈을 놓지 않은 많은 이들의 크고 작은 사랑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진실로 그랬다. 지나온 6년 6개월은, 겉으로 보면 별 볼일 없는 휴지기에 불과했지만 영적으로나 내면적으로는 더 깊어지고 풍요로워지는 은총의 시간, 숙성의 시간, 연단의 시간, 새로운 변화와 창조의 시간이었다.
나는 지금 또 다른 변화 앞에 서 있다. 그동안 쉬지 않고 꿈꾸며 기도해왔던 제2의 목회를 앞두고 있다. 다시 맨땅에서의 개척이다. 두 번 다시 그렇게는 시작하고 싶지 않았는데, 마음으로는 간절히 제2의 목회를 소원했지만 맨땅에서의 개척은 정말 피하고 싶었는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웬일인지 연초부터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은혜와 도전의 마음을 주셨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은혜와 맨 땅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다. 하여, 망설임을 접을 수 있었다. 개척이라는 도전 앞에 믿음으로 응답할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하다. 건강을 회복시키시어 썩지 아니할 생명의 복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위해 이 작고 부끄러운 삶을 드릴 수 있는 또 한 번의 은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제2의 목회를 앞두고 지나온 목회를 다시금 돌아보았다. 돌아보니 첫 목회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과 말씀으로 내가 앞장서는 목회를 했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말씀을 정직하게 선포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교회다운 교회와 성도다운 성도를 세워보기 위해 나름 몸부림쳤고, 하나님의 뜻을 지향하는 목회를 하기 위해 젊음의 의지를 불태웠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의 차원에서 보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가 판단하고 계획하고 시행하는 목회, 하나님이 목회의 주체가 아니라 내가 목회의 주체였다는 게 정말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렇다. 지난날 나의 목회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홀히 여기는 목회였다.
요즘 나는 기도할 때마다 ‘나의 목회’에서 ‘하나님의 목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강한 내적 부르심을 듣고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와 백성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사랑과 능력으로 돌보시며 구원해나가시는 것을 온 성도들과 함께 지켜보면서 마음껏 기뻐하는 목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소리높이 찬양하며 하나님의 이름만 높이는 목회로 유턴해야 한다는 절박한 회심을 하고 있다. 진실로 그렇다. 제2의 목회는 정말 순전한 하나님의 목회이기를, 하나님만이 목회의 주체이기를,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일을 행하시기를,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예배할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꾸며 기도한다.
또 하나의 꿈이 있다. 감히 하나님의 사람이고 싶다. 한국교회의 치부는 대부분이 목회자에게서 비롯된 것들이다. 교회의 모든 문제는 사실 목회자의 문제다.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반듯하게 서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의 교회가 몸살을 앓는 것이고, 세상으로부터 수치를 당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책임을 면할 길 없는 부끄러운 목사다. 얼굴을 들 수 없는 죄인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육신의 아픔과 사역의 현장을 떠나는 고독의 시간을 통해서 허물을 보게 하셨고, 회개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금 새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하여, 심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반듯하게 서기를. 날마다 회개하며 내 몸을 쳐서 순명하기를. 허탄한 입술이 아니라 말씀으로 말하고, 삶으로 말하고, 인격으로 말하기를. 복음을 외치는 자가 아니라 복음을 육화시키기를. 진리 외의 모든 것으로부터는 자유하되 진리에는 철저하게 순명하기를. 하나님을 이용하는 죄악을 완전히 버리기를.
우리 부부는 지금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말씀샘교회’의 이름으로 드리는 첫 예배를 준비하고 있다. 두렵고 떨리면서도 행복한 마음으로.
paul님, 그러니까 자수하신건가요??
상대가 모를 땐 자수 안하고 슬쩍꿍 넘어가도 되는데요....ㅎㅎㅎ
제 글이 마치 조용한 호수가에서 수필을 읽는 것 같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고백한대로 항상 주님을 먼저 두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 않습니다.
노력해야지요.....
부족하지만 이곳 글쓰기는 할 수 있는 한 계속할 생각입니다.
사실 이곳만한 나눔의 공간이 없거든요.
진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곳이니까요.....
이런 공간을 허락하신 하나님, 그리고 대구성서아카데미에 감사하지요.
바울님, 기도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정 목사님
제 2 목회를 시작 하시는 목사님에게
진심으로 성원을 보냅니다.
6년 6개월 동안 고난 함께 축복이 있었으니
앞으로도 또 다른 그것들이 함께 하리라 봅니다.
말씀샘교회가 언제 어디서 예배를 시작 하는지요.
제2의 목회를 준비하시는 목사님께 응원을 드립니다.
쉽지 않는 선택 속에 모든 것을 다 내려 놓으시려는 목사님의 고뇌가 엿보입니다.
다시 무언가를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설렘임 이전에 두려움과 막막함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을 해봅니다.
저또한 설레임의 수줍은 마음으로 목사님의 시작을 축하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가를
목사님의 글을 통해서 늘 발견합니다.
이를 말할 수없는 주의 은혜와 자비가
더 고난과 가난과 고독가운데 주의 진실하심과 은총으로
메마른 이 대지위에 단비의 말씀샘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말씀샘교회>
교회 이름이 예쁘고 의미가 깊고,
부르기도 편하고, 여러모로 좋습니다.
요즘은 전문적으로 회사 이름을 지어주는 곳도 있다 하는데,
혹시 그런 곳에서 작명하신 건 아닌지요. ㅎㅎ
벌써 수년 전이지요?
제가 목사님의 저서에 추천서를 썼습니다.
목사님의 책을 읽고
이건 어디서 많이 본듯한 글이라고 느꼈는데요.
어떤 사안이나 사물에 접근해 들어가는 방식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추천서에 썼던 것 같습니다.
저와 전혀 다른 신앙적 배경에서 살아오셨는데도
이렇게 나이 들어서 비슷한 영성의 동지를 만났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목사님은 육체적 나락에 떨어졌던 경험과 신앙이 일치를 이루었다면
나는 그런 부분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부족한 부분을 신학적인 영성으로 채워가려고 노력하는데,
그것 자체도 힘들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거지요.
목사님은 이제 말씀을 영혼의 깊이에서 두레박으로 퍼올릴 준비가 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6년6개월을 주님께서 준비시키신 거겠지요.
청중들이 모이는 일만 남았네요.
두 세 사람이 모여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사람이 모여야만 말씀의 역동성이 더 살아납니다.
그동안 목사님의 칼럼이나 설교를 들었던 분들 중에서
목사님의 교회 개척 소식을 기쁘게 기다리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가능한 그런 분들이 좀 많았으면 합니다.
구체적으로 교회가 시작될 장소 등을 알려주세요.
다비안들이 가능한 널리 알리기도 하고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서로 협조할 일은 서로 협조했으면 합니다.
큰 용기를 내셨습니다.
주님의 도움이 함께 하기를 기도하구요,
박수로 격려를 드리립니다.
주님의 은총와 평화가...
말씀샘...
'하나님의 생명말씀이 맑고 깨끗한 샘물처럼 콸콸 솟구쳐 흐르는 교회'라는 느낌도 들고
또 '생명과 진리말씀을 제대로 알고 가르치는 선생이 목회하는 교회'라는 느낌도 드는군요.
선생님을 제가 나고 자란 고장에서는 '샘'이라 카거든요.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그냥 '샘요' 합니다.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우리 나라 곳곳에 이리저리 떠도는 전직 기독교 신앙인들이 많다는군요.
그분들도 말씀샘교회에서 갈한 목을 축이고 다시 신앙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빌어봅니다.
교회 시작하시는 날 찾아뵐 수 있도록 꼭 일자를 알려주세요~~~
신목사님,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서울샘터 강단을 내려와 죄송했습니다.
제 몫까지 감당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시고요....
얼마 전에 보니 또 인천다비아를 시작하셨더군요.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신목사님은 참 위트와 통찰력이 번득이십니다.
'말씀샘'을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들으시는 놀라운 귀를 갖고 계세요.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인데 그 해석도 매우 좋은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해석도 집어 넣겠씁니다.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가르치는 선생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당근 알려드려야지요....
저도 뵙기를 원합니다.
주의 평화.
목사님,
전 목사님께서 "집안에 갇힌 따뜻한 광야의 세월"을 이렇게 무사히, 그것도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깊이 여기는
상태로 지내오신 것에 대해 어떤 경외감을 갖습니다.
오랜 감옥생활이나 망명생활을 거친 분들이 자신의 정신의 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경이입니다.
하나님중심의 목회로 전회하시겠다는 큰방향성을 잡으면서 과거의 목회를 회고하는 장면에서
초신자로서 제가 겪고있는, 그러나 그 경계가 너무나 애매하여 늘 잘 모르겠는 지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이나 탈렌트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실것이라는 저의 믿음(이를테면 과거의 목회의 모습)과
온전히 하나님중심(앞으로의 방향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구별입니다.
목사님께서는 목사님으로서 이런 전회의 경험을 하셨으니 이 둘이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하나님중심으로 옮겨갈 수 있는지를 설명하실 수 있을듯 하여 이 글을 씁니다.
대가들의 글을 읽으면 하나님중심으로 옮겨가야한다고 하는데, 전 도통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이성이나 지식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이 믿음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초신자의 특권님, 반갑습니다.
매우 어렵고 진지한 질문을 하셨네요. 진짜 멋진 고민을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런 고민은 적절하고도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됩니ㅏㄷ.
우리의 이성이나 텔런트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그걸 외면하거나 거부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지요.
하나님 중심과 인간 중심이라는 것은 사실, 깊이의 차원에서 보면 이분법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분법적으로 대립하고 있기도 합니다.
근본적으로는 둘이 이분법적이지 않은 것인데,
죄악의 현실 속에서는 이분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바로 이렇게 이분법적인 대립이 현실이기 때문에 초특님과 같은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물론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면서도 자아가 소멸하지 않는 것,
또 자아가 살아있으면서도 하나님과 대립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경계선이 모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 중심이면서도 그것이 명목일뿐 자아 중심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 때가 오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도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과거에는 지각하지 못한 것을 조금 지각하는 정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ㅏㄷ.
아마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 겁니다.
새로운 출발을 격려해주시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주의 평화....^^
정병선 목사님,
말씀샘교회를 개척하셨다니 반갑고 또 기대가 됩니다. 샘터교회와는 당연히 자매교회가 되겠지요(샘자 돌림이군요).
무엇보다 단독자로 사셨던 시간의 고통을 솔직하게 나누어 주셔서 저같은 사람에게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간은 기다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건이 아니라 과정의 철학이 이런 통찰에서 나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에 성패가 있다면 기다림을 어떤 자세와 행동으로 채워가느냐에 달려있는 건 아닐까요.
부지런한 기다림이라는 아포리즘을 생각해봅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고 말씀샘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아, 그렇게 하셨군요...
부럽기도 하고, 또 어떻게라도 할 수 있다면 작은 힘이라도 드리고도 싶은데...
교우들과 첫 소풍을 천수만으로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건강 때문에 첫 목회를 쉬셨다니 아마 건강이 건강한 목회의 뒷받침이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아시겠지요. '하나님의 목회', 저도 배우겠습니다. 앞으로 잘 일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큰 용기를 주실 줄 믿습니다.
샘의 특징 중에 하나가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것인데
말씀의 근원이 끊임없어 우리네 삶의 갈증을 해소하는 교회될줄 믿습니다.
6년6월이라는 세월을 생각하며
모세의 광야생활 40년이 오버랩되면서
목사님의 남은 삶도 모세의 삶과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
이 아침에 목사님의 글을 통하여서 감사와 평화와 기쁨을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요
아, 정말 반가운 소식이군요!!
이런 계획이 있어 특별한 준비기간을 주셨었나봐요.ㅎㅎ
개척교회를 하신다니 축하를 드려야할지, 용기를 드려야할지..
암튼 목회 하시는 내내 영적 샘물이 마르지 않기를 기도드릴께요.
목사님 건강하신지요?
처음 목사님의 병소식을 듣고 제가 그만 덜렁거리고 정용섭 목사님과 정병선 목사님을 그만 착각했던 점 다시 한번 사과 드립니다.
목사님의 글은 마치 아치 조용한 호수가에서 수필을 읽는 것처럼 참 마음을 차분하게 하여 줍니다.
목사님의 넓은 마음 때문인지 효자 아드님을 두신 것 같아 부럽웠습니다.
아프신 중에도 좋은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했는데 이제 다시 목회를 하신다니 게으른 제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항상 주님을 먼저 두시는 목사님의 마음에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기도드립니다.
염치없지만 바쁘시더라도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