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28. 금 


새벽

밤새 담당 간호사가 두어번인가 들락거리며  혈압, 맥박, 체온등을 체크하고 나간다

남편은 특히

쇄골부위가 아프단다.

마치 팔뚝만한 스페너로 양쪽 쇄골 부위를 짓누르는 것 같다고.

뭐든 잘 참는 사람이 이 정도라면 통증이 큰가 보다.

생살을 도려냈으니 왜 아니그렇겠는가. 

현대의학이 좋아서 그나마 이 정도 견딜 수 있는 것이리라.

귀 뒤와 턱밑으로는  감각이 없고

만지면 멀리서  당기는 듯한 자극이 느껴진단다.

시간이 지나면서  꿰맨 부위 위 그러니까 

턱밑으로 얼굴 아랫부분이 부어 오르기 시작한다.

아픔의 터널을 지나 날이 밝아온다.


아침 06시.

"이 00 님, 치료실로 오세요~"

 젊은 의사가 들어와 외치고 간다.

그 바람에 겨우 잠들었던 우리는 화들짝 놀라 부스스 일어났다,

남편을 부축해 "두경부 치료실"이라고 쓰여진 방으로 갔다,

목부터 얼굴 머리 쪽에 암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모이는 곳이다.


목에 숟가락 만한 구멍이 뚫려 그 곳을 핀셋트으로 소독하는 환자

(몸이 에곤 쉴레의 그림처럼 말라있다),

얼굴 안면 한 쪽이 쳐진 젊은이, 

무슨 연유인지 목 뒤쪽이 불룩해진 환자,

혀 속이 흰 브로콜리처럼 변색된 환자... 등등

얼마나 심각한 이들이 많은지..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저릿하다.

세상의 모든 아픔을 이들이 대신 앓고 있는 게 아닐까...


남편 차례다.

수련의인 듯한 젊은 남자 의사가 

수술 부위에 붙어있는 거즈를 떼어내고 

꿰멘 자리를 소독한 후 다시 거즈를 붙여준다. 손놀림이 영 엉성하다. 

입천정에 붙여 놓은 껍질이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나머지도 너덜거린다고 했더니

다시 붙일 수는 없으니까 혀로 잘 부착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다시 병실로..

남편은 수술부위를 찍어달라고 한다.

내키지 않았지만 수술한 부위와 환자복을 입은 모습을 찍어주었다.

그 와중에서도 익살을 떨며 온갖 요상한 표정을 연출한다.

파이(ㅠ3.14)모양으로 턱 아랫부분을 절제한 걸 보더니 

어눌한 발음을 굴려 이렇게 외친다.

"와... 이거 뭐, 자해공갈단 수준이구나...! "

무참히 파헤쳐진 입천정은 볼 수 없어 다행이다.


08시

아침식사시간이다.

"식사왔습니다~"

식사담당 아주머니들이 식판을 들고 들어온다

옆 환자는 아침을 먹는데

남편은 금식이다.

당분간 모든 영양은 우유같은 액체로 정맥 투여된다.

간호사가 와서 진통제를 체크하고 능숙한 솜씨로 

수술부위에서 나오는 진물 주머니에 고인 진물을 주사기로 빼서 양을 잰다.

 몸에서 나온 진액이 토마토 주스 같이 색이 곱다.

수술실에서부터 달고 나온 소변관을 빼준다. 

그것만으로도 거동이 한결 자유로와진다.

환자 식사도 약도 다 정맥주사로 들어가니 

보호자가 할 일이란 고통을 함께 하며 곁에 있어주는 일 뿐이다,


 오후 3시

 잠시 눈을 붙이려는데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1층 로비로 내려가니 일산에서 언니 형부 오빠 올케가 한 짐을 들고 와 있다,

간호하는 동안 먹으라고 밥과 반찬을 잔뜩 싸 들고 온 것이다.

오지말라고 그렇게 말렸는데 막상 가족들 얼굴을 보니 위로가 된다.

코로나 때문에 병실에도 못 올라오고 간첩 접선하듯 잠시 만났지만

어젯밤 잠을 설친 피로가 사라지고 몸이 가볍다. 참 사랑의 기운이란 게 이런 건가 보다.


헤어지기 전, 오빠가 내 손을 잡고 조용히 기도를 해 준다.

오빠는 3년 째 유육종증이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중이다. 

왜 이런 아픔들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가운데에서도 내가 힘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아픔을 나누고, 진심으로 함께 아파해 주고 기도해주는 이들.

그들이 보여주는 사랑 안에서 내가 위로를 얻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고 있음을 본다.

그동안 기도를 해달라고 말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나만큼 내 문제에 간절한 이가 또 있으랴.. 싶은 마음에서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잘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내가 요즘  중보기도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내가 내적으로 이 만큼이 나마 평온함을 유지한다면

전적으로 우리 부부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는 이들의 기도의 힘이다.

다른 이들을 위한 격려와 기도... 그 속에서 하느님은 활동하신다고 믿는다. 


저녁

언니가 싸다 준 밥과 반찬 국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식당에서 사 먹던 밥보다 훨씬 개운하고 입에 맞는다.

맛있게 먹고 문자를 보냈다.

"참 맛있다!

역시 언니는 밥하는 은사가 있어.ㅎㅎ"

어제 수술하는 하루 종일 나보다 더 초죽음이 된 언니 .

나중에 통화를 하니 울음을 터트린다. 

전화가 안되 뭔가 잘못된 줄 알고 엄청 걱정했나 보다.

여리고 여린 울 언니.

언니로부터 답이 왔다.

"잘 먹었다니 내 맘이 좋다.

니가 잘 먹어야 해. 식사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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