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4일 수요일 맑음


우리가 다니는 병원에는 암병동이 따로 있다.

3일 째 아침 일찍 암병동에 출근이다.

지난번 지독했던 항암주사가 조금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3개월 시한부를 선언하던 의사는 우선 급한 불은 껐다며 

이 항암주사로 버티면서 신약을 기다려 보자고 한다.

지난번 너무 힘들었던 터라 한 텀을 쉬었는데

이제는 용량을 20% 줄여서 3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맞기로 했다.


이젠 의사의 말에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효과를 보인다니 한시름 놓인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틀 간 5시간 동안 항암주사를 맞는다.


항암주사를 맞는 202호실은  환자용 안락의자가 9개가 있고 

그 옆에  보호자용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있다.

이윽고 비어있던 의자들이 주사바늘을 끼운 환자들로 꽉 채워진다. 

오늘은 여자 30프로, 남자 70프로 정도로

대부분 환자는 나이든 남자들이다.

보호자 동반이 필수로 되어있는데 대부분 환자는 혼자 맞고 간다.

모자를 쓰거나 창백한 얼굴들....모두들 어떤 암이고 어떤 상태인지는 모르나

이발소나 미장원에 앉아 있는 듯한 담담한 표정으로 주사를 맞고는 무표정하게 하나둘 병실을 떠난다. 

환자마다 주사 시간이 다른데 남편은 5시간 동안 수액과 두 종류의 항암제를 교대로 맞는다.

 환자들은 주사투여를 하는 동안

대부분 자거나 (아주 심하게 코를 고는 이도 있다) 

무료한 듯 핸드폰을 들여다 본다.


병실 창너머의 오월의 푸른 신록과 밝은 햇살이 반쯤 가려진 블라인드 아래로 보인다.

병실은 대체로 침묵이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주사를 준비하는 간호사의 달그락 거림, 환자와의 짧은 대화, 발자국 소리,

삐리릭거리는 주사액 끝나는 신호음... 

그런 소음들이 있지만 왠지 병실 안의 침묵에 압도되는 것 같다.

창밖의 생명 넘치는 풍경과 이 병실 안의 무채색 침묵이 묘하게 대조적이다.

 

남편은 잡지를 보다가 어느새 곤한 잠에 빠져들어서 의자를 제끼고 아예 길게 눕혔다.

나는 지금 그 뒤에서 노트북 자판을 두둘기며 이 풍경을 기록한다.

밖은 더 말할 수 없이 화창한 5월이다.


갑자기 시장기가 돈다.

지하에 내려가 밥을 먹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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