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일- 죄 (5)

조회 수 2782 추천 수 16 2006.08.02 00:16:17
2006년 8월1일 죄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2:5)

본문에서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사람의 죄가 용서받았을까요? 이 사람이 온전한 몸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이 사람의 죄가 용서받은 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병이 치유되었다는 사실이 곧 사죄의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흉악범으로 변했을지도 모르며, 아니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자살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우울증에 걸려 한 평생 불안하게 살아갔을지도 모르고, 중풍병이 재발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제가 공연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는 죄의 문제가 그렇게 간단히 취급해도 괜찮은 주제라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려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이단 종파 중의 하나가 구원파입니다. 그들은 정통 그리스도교와 다른 주장을 많이 펼칩니다. 죄 문제와 연관된 문제의 하나는 그들이 지속적인 사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한번 용서를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며, 이미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죄를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에 철저하게 의지한다는 것은 좋은 점이긴 합니다만 그것이 지나쳐서 죄의 심각성을 놓쳐버린다는 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앞서 중세기 그리스도교가 죄 숙명주의에 빠졌다며, 구원파는 죄 낭만주의에 빠진 셈입니다. 죄의식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나, 죄의 깊이를 간과하는 것이나 모두 인간의 생명을 놓치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구원파 유의 죄 인식이 왜 인간 생명을 놓치는 걸까요? 구원파는 우리가 행할 미래의 죄까지 주님이 이미 용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해서 결코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죄가 이렇게 기계적으로 해결된다면, 그렇게 믿는 건 그들의 자유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과 우리의 인격적인 관계는 허물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일종의 기계적인 원리가 되고 맙니다.
성서의 하나님은 세계와 역사를 작동하는 원리가 아니라 매 순간마다 우리와 대화하고 소통하시는 인격이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사죄와 우리의 구원은 어느 한 순간에 완성되고 완료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이 지속하는 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 땅에서 일어나게 될 최후의 심판은 참과 거짓, 의와 죄, 진리와 비진리, 생명과 거짓 생명이 최종적으로 구분되는 사건입니다. 그런 최후심판 이전에 모든 인간, 모든 제도, 모든 사상, 모든 사람들은 아직 완전한 구원도, 완전한 생명도 얻은 게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그 순간까지 잠정적인 상태에 놓여 있을 뿐입니다.
구원파 유의 죄 이해는 죄의 리얼리티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이미 미래의 죄까지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죄의 리얼리티를 심각하게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입니다. 만약 이 세상과 이 역사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의 주장이 옳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또한 예수가 이 세상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신다는 그 약속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과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삶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창조행위가 훼손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매 순간마다 자기 성찰을 치열하게 추구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곧 죄의 리얼리티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주님의 말씀은 한번만이 아니라 우리가 죽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죄 선언에 의지하지 않으면 한 순간도 스스로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키리에 엘레이송!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바우로

2006.08.02 17:16:45

정 목사님.
키리에 엘레이송은 기리에 엘레이손이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성공회 기도서(미사에 사용되는 예문을 담은 작은 책)를 보면 기리에 엘레이손이라고 음역되어 있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6.08.02 23:21:27

kyrie를 '기리에'로 발음 할 수 있나요?
키리에는 퀴리오스(kyrios)의 호격이겠지요.
만약 기도서에 기리에도 되어있으면,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 같군요.
엘레이송은 엘레이손이나 똑같은 거지요.
라틴어는 나도 자신이 없네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29 8월7일- 속의 생각 2006-08-08 2425
128 8월6일- 신성모독 (3) 2006-08-06 2927
127 8월5일- 신성모독 (2) 2006-08-05 2507
126 8월4일- 신성모독 (1) 2006-08-04 2987
125 8월3일- 서기관 (2) [2] 2006-08-04 2432
124 8월2일- 서기관 (1) [1] 2006-08-02 2348
» 8월1일- 죄 (5) [2] 2006-08-02 2782
122 7월31일- 죄 (4) 2006-07-31 2816
121 7월30일- 죄 (3) 2006-07-30 2769
120 7월28일- 죄 (2) 2006-07-28 2910
119 7월27일- 죄 (1) [3] 2006-07-27 3185
118 7월26일- 그들의 믿음 [5] 2006-07-26 3163
117 7월25일- 구멍 난 지붕 2006-07-25 3262
116 7월24일 중풍병자 2006-07-25 2944
115 7월23일- “도” [2] 2006-07-23 2667
114 7월21일- 많은 사람 [2] 2006-07-21 2766
113 7월20일- 집에 계신 예수 2006-07-20 2776
112 7월19일- 가버나움 [2] 2006-07-19 2902
111 7월18일- 민중 (5) -민중과 한국교회- [5] 2006-07-18 3335
110 7월17일- 민중 (4) -주체성- [3] 2006-07-17 2787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