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순이 씨가 삶을 마감했다.

전주 호스피스 병원에서 64년의 삶을...

오늘 장례와 화장 절차를 마쳤다.

빈소도 마련되지 않고 호스피스 영안실에서 곧바로 화장장으로 향했다.

그녀의 삶처럼 가는 길도 간단했다.

교인 몇 명과 이복 형제인 남동생 부부만이 그녀의 마지막을 같이 했다.

쓸쓸하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마지막 길이었다.


 영안실에서 순이 씨는 한지 수의를 곱게 입고 창백하게 누워있었다. 옅은 화장을 한 채.

이제까지 본 모습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정신지체라는 딱지도, 가난함도, 천대도 멸시도 다 사라진 새로운 세상을 만나서 일까.

 평소 때 보이던 헤픈 웃음기도, 어딘지 모자라 보이던 표정도 싹 가신 채

 이리도 단아하고 조촐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니.. 평소 찾아볼 수 없던 기품까지 엿보였다. 놀라웠다.

" 젤 이쁜 모습이네요... 잘 가요..."

그녀에게 한 나의 마지막 인사였다.


목사님께서도 이런 말을 하셨다.

 마지막 임종 전, 길순이 씨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다.

지난 금요일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병원에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가셨을 때,

기도하자고 했더니 고개를 순하게 끄덕이던 표정이 너무나 새로운 모습이었단다. 

아마 오늘 내가 본 이런 느낌이었나 보다.

그리고 세 시간 후 그녀는 임종했다.


주일 날 순이 씨의 추모 영상을 온 교인이 함께 보았다. 

사진 속 순이 씨는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우리는 울면서 보았다.

입관 예배를 드리면서도 많이 울었다.

그녀의 64년 삶이 어떠했을지...

지적장애를 가진 몸으로 태어난 그녀에게 붙여진 가장 흔한 이름 순이.

같은 장애를 가진 어머니와 함께  

외양간을 개조한 누추한 방으로 쫒겨나 평생을 살았다.

가족이 아닌 거의 일꾼으로 살아 온 셈이었다고.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고 동네에서 사람 취급도 못 받고..

한 평생을 산 동네에서 그녀의 장례식에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그녀가 받은 대우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나라가 잘 살게 되면서 복지 혜택으로 매달 나오는 지원금도 찾아 쓸 줄을 몰라 

이복 형제에게 빼앗기곤 했다고. 그걸 알고 나중에는 교회 목사님께서 관리를 해 주시기도 했다.


그런데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살다 갔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무엇이 그리 좋은지, 순이 씨는 볼 때마다 웃었고 눈만 마주쳐도 하하 웃었다.

어찌 보면 그녀가 세상에 먹인 통쾌한 한 방이 아니었을까.


가장 일찍 교회에 와서 같은 자리에 앉아 찬송가 곡조를 몰라도 어깨를 들썩이며 신명나게 불렀다.

아마도 예수님의 눈으로 보신다면 가장 사랑스런 예배자이지 않았을까....

교우들 앞에 서서 생일 축하를 받을 때는 얼굴 가득 주름이 지도록 파안대소하곤 했다.


멀쩡하다는 우리들에게선 그렇게 행복한 찐 웃음이 어려운데 

모자란 순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웃다가 갔다.

건강하던 그녀가 난소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이런 작별이 실감나지 않았었다.

구릿빛 피부가 점점 창백해지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급기야는 복수가 차고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도 그녀는 교회에 빠짐없이 나왔고 여전히 호탕하게 웃었으며 

놀라우리 만치 잘 먹었다.

왜 좀 더 자주 찾아가지 못했을까? 

왜 그 좋아하던 숯불갈비를 좀 더 사주지 못했을까....

홀로 남은 어머니는 또 어떻게 남은 여생을 이어갈까... 

얼마 전, 옷 정리를 할 때

순이씨 옷이라며, 그냥 두라고, 순이가 나오면 입을 거예요.... 하던 어머니는.


그녀를 보내고 와서 잠이 오지 않는다. 

정작 그녀는 지금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이 유영할텐데... 

떠나 보낸 우리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런 저런 상념으로...

그녀에게 교회는 어떤 자리였을까... 

이 작은 교회가 오늘 그녀의 가는 길을 지켜준 것 만으로도 존재 가치가

충분히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 해본다.

가난한 자, 병든 자, 고아와 과부 같은 설움 많은 이들의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장례를 마치고 오는 길에 우리는 갈비탕을 아구 아구 먹었다.

장례식장에서 늘 느끼는 거지만 이런 현실도 웃프다.

배고픔이 슬픔을 압도하나보다.

이렇게 남은 자들의 애도는 끝나고 곧 그녀는 잊혀지겠지.


모든 죽음은 슬프지만 오늘 그녀의 죽음은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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