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산골의 성탄은 고요하기만 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오늘 한 장의 성탄카드를 받았다. 이제는 사라진 우편으로 받는 성탄카드. 

영국의 발레리 아주머니로부터 온 것이다.

톤브릿지 튤립트리 크로스에 살 때 이웃이던 발레리 아주머니. 

이제는 90을 넘긴 고령이신데

성탄절이면 잊지 않고 카드를 보내주신다. 20년을 한결같이.


곱던 아주머니와 쾌활한 배리 아저씨.

그때 그분들은 70대셨고 우리는 40대였다.

 곱고 단정하던 아주머니는 그녀처럼 단아한 거실에서

늘 차와 과자를 예쁘게 준비해 놓고 나를 혹은 우리 가족을 초대해 주시곤 했었다.

어설픈 외국 생활 속에서 발레리 아주머니의 따뜻한 환대는 참 온기가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분들이 꾸준한 성탄카드 덕분에

일년에 한 번 씩 소식이 오갔다.

성탄카드는 우체부가 되어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우리와 발레리 아주머니의 소식을 전달했다.


우리의 이야기들은 조금씩 변해갔다.

나는

진안이란 남쪽마을로 내려왔다는 얘기,

그리고 시골에 작은 집을 지었다는 얘기를,

남편이 암진단을 받았고 투병 중인 소식

아들 Jee가 장가를 갔다는 소식..

그리고

손주가 태어났다는 소식들을....


 발레리 아주머니의 소식도 한 해가 다르게 쇠퇴해갔다.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다는 소식,

배리 아저씨가 점점 거동이 힘들어진다는 얘기,

발레리 아주머니가 골수암이라는 슬픈 얘기.

이제는 배리가 치매가 왔고  시설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오늘 온 카드에는 배리 아저씨는 시설에서 돌봄을 받고 있고 

아주머니와 아들이 둘 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얘기가 들어있다.


오늘 성탄카드를 받고서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녀의 사진이다.

그건 삼십대의 발랄한 발레리 아주머니가 바닷가에서 어린 아들 딸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흑백사진이다. 아마도 가족 휴가 때 배리 아저씨가 찍었으리라.

이 사진이 어떻게 내게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 생기 넘치던 곱디 고운 여인이 이젠 늙고 병든 몸이 되어 떨리는 손으로 

성탄카드를 써서 봉투에 넣고

느릿한 걸음으로 하이스트리트로 나가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서 항공우편으로 보냈으리라.

다시 느릿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

 옛집, 정원이 내다 보이는 거실 창가 흔들 의자에 앉아 가쁜 숨을 고를 것이다.

그리고는 느릿한 몸을 움직여 밀크티를 끓여 다시 천천히 돌아가 

차를 음미하며 지난 날을 회상할지도 모르겠다. 찻물을 우려내듯 천천히...

선물을 기다리던 어린 날의 성탄절을,

두근거리는 맘으로 배리 아저씨랑 데이트하던 이십 대의 활기찬 성탄을,

아이들의 선물을 고르고 집안 장식을 하며  행복하던 30대의 성탄을...

그리고 지금 홀로 남은 거실에서 보내는 쓸쓸한 노년의 성탄을...

아담하던 발레리 아주머니의 정원도 이젠 생기를 잃었을까.


모든 것이 변한다...

우리 부부도 60대 초로의 모습으로 저무는 2024년 성탄을 조용히 맞고 있다.

창밖이 어둑하다.

남편이 장식한 자잘한 성탄 장식등이 어둠 속에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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