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강

바울의 개종은 사실인가?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갈 1:11-24)


사도행전과 바울의 편지에 의하면 바울은 초기 기독교를 박해하다가 나중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 사실은 큰 틀에서 본다면 옳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다. 개종이라고 한다면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움직이는 건데, 바울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신약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바울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사실은 아직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그 이유는 초기 기독교가 유대교와 무조건 대립해 있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에 놓여 있다. 말하자면 바울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고 해서 당장 유대교를 포기하고 기독교로 돌아선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유대교에서 유대-기독교로 돌아선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유대-기독교는 여전히 유대교의 한 분파였기 때문에 여기에 속한 이들을 개종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의 회심은 개종이라기보다는 구약에 등장하는 예레미야나 이사야 같은 이들의 영적 경험과 비슷하다. 유대-기독교의 위치에서 그는 이방인을 위한 선교 사명을 얻게 되었고, 그 뒤로 유대-기독교와 거리를 두게 되고, 결국 완전히 새로운 기독교 공동체로 떨어져나가게 되었다. 그 공동체가 바로 오늘 역사적으로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기독교인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모두 따라잡기 힘든 속사연들이 숨어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이 공부가 진행되면서 몇 번 더 언급될 예정이니까 이 정도로 접고, 오늘 본문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그 이전에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갈라디아서가 어떤 사건에 대한 현장 보고서가 아니라 추후 진술이라는 사실이다. 바울은 지금 십여 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자신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입장에서 풀어가고 있는 중이다. 갈라디아서에도 어떤 사건은 아주 자세하게 설명되지만, 어떤 사건은 주마간산 격으로 설명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할 때 필요한 대목을 간추리거나 강조하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갈라디아서 본문만으로 바울이 경험한 회심의 연대기를 재구성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가 바울의 갈라디아서의 역사성을 의심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그가 모든 역사적 사건을 꼼꼼히 진술하지 않은 책임을 물을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만약 필자가 먼 훗날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글을 쓴다고 할 때 여러 종류의 모임에서 행한 인문학적 성서읽기를 나름으로 서술할 것이다. 자세하게 할 수도 있고, 단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식으로 지나칠 수도 있다. 글을 쓸 당시의 필요에 따라 모든 사건들이 재평가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울의 갈라디아서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최선으로 글을 썼으며, 그 글이 영적 가치가 풍부해서 교회에 의해 경전*으로 선택되었다. 이제 이 글을 읽고 해석하는 건 바로 우리의 몫이다. 우리의 신학적 사유(영성)가 바울을 따라잡을 수 있다면 바르게 해석해낼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미숙하면 아무 것도 밝혀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유대교의 경전을 그대로 받아들인 구약과 초기 기독교에서 시작된 문서 중에서 일부를 경전으로 받아들인 신약은 처음부터 그런 권위를 확보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이런 문서들이 경전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이 역사적 검증을 거쳤다는 데에 놓여 있다. 시편 12:6절은 아래와 같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일곱 번 단련되었다는 말은 곧 검증을 거쳤다는 뜻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영적 권위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설교자들은 역사적 검증을 거친다는 자세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의 신자들에게 편지를 쓰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울이 전한 복음의 변질을 막아보자는 데에 있다. 토라를 지키고 할례를 행하라는 사람들의 요청에 갈라디아 신자들이 따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바울은 복음의 변질로 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단순히 복음의 내용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바울의 사도권으로까지 비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예루살렘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바울과 다른 복음을 전하면서 바울의 사도권에 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볼 때, 물론 여기에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바울은 복음을 전할 권위를 확보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예수의 제자도 아니고 혈육도 아니다. 그는 예수의 생전에 예수를 만난 적도 없다. 더구나 초기 기독교를 박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그는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자격증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비판 앞에서 바울은 다른 복음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일단 자신의 이런 약점을 방어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갈라디아 신자들이 바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건 불을 보듯 분명하지 않은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주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과 예수님의 동생들로 이루어졌지만, 그들이 모든 지도력을 독점한 것은 아니다. 그 속사정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안디옥 교회에서 벌어진 신학적 논란으로 촉발된 예루살렘 종교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크게 세 파이다. 바울과 바나바를 중심으로 한 이방인 교회 대표자, 이방인들에게도 토라와 할례를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 바울파, 중재 역할을 한 유대-기독교 파가 그들이다. 안건이 상정되자 많은 논란이 일어났으며, 베드로와 야고보에 의해서 일단락되었다. 이방인들에게 피해야 할 네 가지 요소를 제시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여기서 결과적으로 반 바울파가 패배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뒤로 그들은 훨씬 노골적으로 바울을 제거하려고 노력했고 중도파는 계속 침묵을 지켰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당하는 과정에서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바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사도행전 후반부의 보도에서 우리는 그 당시 예루살렘 교회가 처한 상황이 매우 미묘했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과 소아시아 지역에서 더 이상 복음을 전파할 수 없게 되었으며, 당연한 결과로 유대-기독교와 이방인 기독교 사이의 차이는 계속해서 벌어졌다. 기독교 역사에서 예루살렘 공동체는 소멸되고 이방인 기독교만 살아남게 되었다. 이런 투쟁의 흔적이 오늘 본문에 그대로 나타난다.

  

바울은 자신의 복음을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12절) 주장한다. 여기서 사람은 물론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특히 바울을 적대하는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바울의 복음은 예루살렘 전승과 다르다는 뜻이다. 바울은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지 모른다. 만약 그의 이 말이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용납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는 완전히 배척당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의 말대로 사도들과 예수의 동생 같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로부터 복음을 받지도 않았고 배우지도 않았다면 그는 그 당시 최고의 교권을 행사하고 있었을 초기 기독교의 전승으로부터 벗어난 셈이다. 바울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또 그 당시의 정확한 상황이 어떤지 그 맥락을 추적하기는 쉽지 않지만, 거칠게나마 몇 가지 관점만 지적해보자.

바울이 예루살렘 지도자들과 일정한 선을 긋고 있긴 하지만 게바(베드로)나 예수의 동생들까지 거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사도의 반열로 인정하고 있다.(2:9)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그는 게바와 야고보를 만났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조금 더 살펴보아야겠지만 그가 예루살렘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더 중요한 것은 바울이 예루살렘 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에 관한 이야기, 즉 복음은 사도로부터 속(續)사도로, 속사도에서 교부들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 모든 권위의 꼭지점에 사도들이 자리한다. 각각의 공동체는 그들의 지도자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었다. 어떤 이들도 이런 연속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게 바로 복음의 전승 역사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전승의 역사에서 벗어나 있다고 주장한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로 말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바울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Offenbarung)는 무엇인가?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못 보는 빛을 보았고, 못 들은 소리를 들었다. 빛과 소리를 누가 보고 못 보았는지, 누가 듣고 누가 못 들었는지는 사도행전의 진술에 약간씩 차이가 난다. 이런 글쓰기의 착오는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도 이런 전승의 내막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그런 신비 현상보다는 바울의 신적 경험을 강조한 데 따른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지 우리는 바울이 말하는 계시를 이런 특별한 환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부활 장으로 일컬어지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부활의 주님에 대한 경험을 일목요연하게 진술한다. 부활의 주님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차례대로 나타나셨다. 게바,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바울 자신(고전 15:5-8)이 그 대상이다. 이런 정보를 바울이 어디서 얻었는지는 우리가 확인할 길이 없다. 이런 정보가 이미 초기 기독교 안에 잘 알려져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정보가 다른 서신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걸 보면 이것은 바울의 특별한 진술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지 바울은 자신도 부활의 주님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마스쿠스 도상의 환상에 대한 사도행전의 진술과 부활 경험에 대한 고린도전서의 진술이 동일한 것이라는 말인가?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인 롬 1:12절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말하는 것일까? 이런 문제를 자세하게 파헤치려면 한편의 신학석사 논문을 써야할 테니, 여기서는 이 정도의 문제 제기만으로 넘어가자.

본문으로 돌아와서, 이제 바울이 진술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생각해보자. 바울의 그 계시 경험이라는 게 무엇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어떤 특별한 환상을 말하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말과 문자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말과 문자는 물론 구약성서와 초기 기독교의 전승을 가리킨다. 바울이 어떤 기회를 통해서든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충분히 접했을 것이다. 처음에 그는 예수를 추종하는 이들을 유대교와 대립하는 이들로 생각하고 박해했다. 그런 과정에서 어느 순간엔가 그는 예수 사건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인식을, 또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 십자가와 부활이 전혀 새로운 구원의 길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흡사 어거스틴이 어느 날 “들고 읽어라.”는 아이의 외침을 듣고 말씀을 읽은 뒤에 크게 깨우친 것처럼, 요한 웨슬리가 올더스게이트에서 모라비안 교도들이 루터의 로마서주석 서문을 읽은 걸 어깨너머로 듣다가 크게 회심한 것처럼 말이다. 그게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 바울은 아무 말이 없지만, 그런 개연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교회에서 ‘계시’ 개념만큼 오해되고 있는 것도 드물기 때문에 참고적으로 이 문제를 한번 짚어야겠다. 아래의 글은 ‘다비아’의 <신학단상>에 올린 내용이다.

간혹 “내가 어젯밤 기도하는 중에 계시를 받았어.”라는 말을 듣곤 한다. 이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충분하게 해석이 되지 않는다면 위험성이 많다. 크게 두 가지 관점만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이런 경험에서 언급되는 계시는 흡사 점쟁이들이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듯이 무언가 비의적인 성격이 아주 농후하다. 계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비밀스럽게 보여주는 사건이라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보려고만 한다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자기 알림이다. 따라서 자기가 계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자기에게만 특별하게 알려주는 어떤 비밀로 생각하는 한 이런 계시는 잘못된 것이다. 또 하나의 다른 문제는 위의 내용과 연결되는 것인데, 계시를 어떤 소유물처럼 생각한다는 점이다. 물론 성서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이들이 많이 등장해서 그 비밀을 선포했다. 그들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소유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계시를 소유한 게 아니라 계시가 그들을 소유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계시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그것에 사로잡힐 뿐이다.

이런 사태를 확실하게 규정해줄 수 있는 신학 용어가 바로 “하나님의 자기계시”(Selbstoffenbarung Gottes)이다. 신론과 계시론이 결합되어 있는 이 신학용어를 소화하기만 해도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많은 부분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기계시라는 용어는 주로 헤겔 이후로 바르트에 의해서 신론의 중심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기독교의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이다.” 이 말은 곧 하나님과 계시의 동일화를 뜻한다. 하나님이 따로 있고 계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계시가 곧 하나님이며, 하나님이 곧 계시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 말을 충분히 소화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론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옥황상제처럼 어느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고, 자기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린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구조에서는 하나님과 계시가 구분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런 세계의 존재방식 안에 들어와 있게 된다. 이런 사유방식이 아니라 계시가 곧 하나님의 존재방식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하나님은 계시로서 존재한다. 계시가 곧 하나님의 존재다.

이 말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가 동일하다는 사실과 연관된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을 구분해서 생각한다. 하나님은 원래 따로 존재하고 그가 자신의 능력으로 펼쳐나가는 나라도 따로 있다고 말이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을 실체론적 존재론 안에 가두어 버리는 격이다. 그게 아니라, 하나님은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물처럼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서, 즉 그의 통치로서 존재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통치로서 존재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늘 어떤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역시 그렇게 존재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예컨대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비유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인간과 똑같은 인격적인 대상물로 여긴다. 이런 생각이 비약되면 신인동형동성론으로 발전된다. 하나님 자체인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한 다스림이다. 흡사 바람처럼, 사랑처럼 실체가 아니라 어떤 힘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존재와 통치의 궁극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모른다. 이런 점에서 그는 세계의 비밀로서(융엘) 존재하는 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시 오늘의 주제로 돌아오자. 계시는 곧 하나님의 자기 알림이다. 계시가 곧 하나님이다. 계시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함부로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지 말자. 구약시대는 하나님을 본 자는 죽는다고 했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고 보게 되는 경우는 우리가 죽든지, 아니면 이 우주의 종말이 오는 때이다. 우리가 아직 하나님을 완전히 알지 못하듯 계시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 판넨베르크가 말한 대로 하나님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전체 역사로서 자기를 알리는 분이라는 점에서 아직은 은폐된 분이다. 아직은 종말이 오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특별히 그의 부활을 통해서 종말에 일어날 그 계시가 선취적으로 발생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오늘 우리 신학자들과 기독교인들에게 맡겨진 숙제는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어떻게 참된 궁극적 계시인가를 설명하는 일이다. 그냥 믿는 게 아니라 믿을 만 한 근거를 제시하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당연히 인간들의 세계 경험과 그 해석이 무엇인지 눈여겨보아야만 한다. 종말과 계시는 이 세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바울의 계시 경험을 부활하신 분의 실질적인 현현경험이라고만 본다면 우리는 논리적 모순에 빠진다. 부활의 주님을 경험한 이들의 목록에 따르면 바울은 가장 늦게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 그의 경험은 예수의 승천 이후인가, 이전인가? 이후라고 한다면 예수는 바울을 만나기 위해서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야 했으며, 이전이라고 한다면 그가 초기 기독교를 박해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오늘도 부활의 주님이 직접적으로 현현하신다는 말이 가능한가?

안타깝지만 우리는 바울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른 성서기자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사도 바울은 지금 신문기자처럼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독특한 신앙경험을 전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횔덜린의 시(詩) 한편이 놓여 있다고 하자. 시인은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고유한 언어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 언어는 그 시인의 고유한 세계를 담아낸다. 오늘 이 시를 읽는 사람은 횔덜린의 고유한 세계경험을 해석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 시에서 어떤 생물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사실들을 끌어내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바울은 지금 예루살렘에서 올라온 반(反)바울 파 지도자들에 의해서 자신이 전한 복음이 훼손되는 위기에, 더구나 사도적 권위가 근본적으로 손상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그는 자신의 사도적 권위가 그들보다 못할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그 당시에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사도권을 배타적으로 확보한 이들은 없었다. 신약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도 개념은 그렇게 확실한 게 아니다. 사도 개념은 두 개의 기원이 있다. 하나는 시리아의 영지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유대교가 그것이다. 말하자면 초기 기독교에서 사도 권위가 각축을 벌였다는 뜻이다. 오늘 본문도 그런 흔적이다.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초기 기독교가 아무런 진리론적 근거도 없이 허구한 날 싸움질만, 즉 교권 투쟁에만 몰두했다는 말이 아니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이나 바울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진리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입장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한쪽은 토라와 할례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다른 한쪽은 그것을 과감히 버렸다. 누가 옳은가? 지금 우리는 후자에 속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자를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다. 그들은 모두 역사 안에서 진리를 선택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바울이 승리자가 되었다. 역사의 승리자가 무조건 옳은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지금 필자가 바울의 복음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이런 진리 논쟁이 바로 교회의 역사였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이 역사의 주인은 물론 하나님이시다. 그가 역사의 주인이라는 말은 그가 역사적으로 심판한다는 뜻이다.


삼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서 배운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천명한 뒤에 자신의 회심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자신의 회심을 유대교적 소명 방식으로 설명한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자기를 부르셨다는 것이다.(15,16절) 바울은 자신의 소명이 사람들과 상관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반어법으로 강조한다.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복음과 사도권만이 아니라 소명에서도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분명한 선을 긋는 이유는 갈라디아 신자들이 바울의 지도력을 예루살렘에 귀속된다고 보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돌아갔다. 그 당시 아라비아에는 고도로 발전된 몇 개의 도시들이 있었다고 한다. 바울은 그곳에 복음을 전하러 갔을까, 아니면 자신의 소명 경험을 성찰하기 위해서 갔을까? 사도행전 9장의 설명에 따르면 바울은 회심 후에 즉시 다마스쿠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위해를 느끼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이런 연대기 서술에서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는 조금 씩 차이가 난다. 그 이유는 일단 글쓴이가 다르기도 하고, 집필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울은 삼 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게바를 만나기 위해서 갔는데,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게바는 만났을 것이다. 이는 그의 방문이 사(私)적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삼 년을 아라비아 체류 기간으로 말한다. 모세의 미디안 광야 40년, 바울의 아라비아 3년처럼 우리의 내면을 심화하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건 잘못된 계산이다.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몇 년을 지냈는지 정확한 정보는 없다. 여기서 3년은 그가 다마스쿠스로 돌아간 뒤의 시간을 가리킨다. 참고적으로, 바울은 소명 이후에 영적 훈련을 거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아예 처음부터 초기 기독교의 신앙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박해자였지만, 그것도 역시 입장의 차이였지 근본적으로 반기독교적인 것은 아니었다. 즉 박해자라는 말은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초기 기독교에서 사도권을 중심으로 각축이 벌어진 것처럼 복음 전파에서도 각축이 벌어진 것에 대한 수사적 표현이었다는 뜻이다. 필자가 지금 이것을 단정적으로 말할 입장은 못 된다. 신약신학을 전공한 사람도 정답을 말할 수는 없으리라. 

소명 이후 삼년 동안 바울은 어디서 무엇을 했나? 바울이 말하는 삼 년은 자신의 입장과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입장 차이에 대한 암시가 아닐는지. 바울이 그걸 의식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그런 추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만약에 바울이 예루살렘 지도자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라비아 체류까지 포함하면 삼 년도 훨씬 넘는 기간이다. 이는 곧 예루살렘과 상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부터 복음을 전달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글쓰기 기법이 아닐는지.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겨우 십오일을 머문 뒤에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떠난다.(21절) 수리아는 안디옥의 남쪽 지역이며, 길리기아는 안디옥의 서쪽 지역으로 그곳에 바울의 고향인 다소가 있다. 당시 기독교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으로부터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셈이다. 결국 유대 지역의 교회에는 바울이 알려질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22절) 유대 지역의 교회에는 당연히 예루살렘 교회가 포함되며, 그 교회들의 신학적 특징은 유대-기독교적이면서 동시에 반(反)바울적이다. 이런 일련의 진행에서 본다면 바울은 유대 지역의 중심 교회와는 신앙적 왕래가 거의 없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그는 유대의 교회들이 자신을 ‘얼굴로’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바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비록 유대-기독교와 자신 사이에 신앙적 친교가 별로 없었다고 하더라도 바울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고 말이다.(24절) 이게 사실인지 아니면 역설적 표현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유대-기독교 지도자들 중에서 일부가 바울의 이방인 선교를 지지했다는 점에서 사실일 수도 있고, 일부가 극단적으로 배척했다는 점에서 역설적 표현일 수도 있다. 어쨌든지 서로 입장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doxology)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아니겠는가.


*영광(헬: 독사)이라는 단어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다. 우리의 일상적 신앙생활에서도 역시 그런 경우에 이 단어를 사용한다. 예배는 곧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인간의 가장 경건한 종교 의식이다. 이 예배에서 핵심은 바로 영광이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자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말로만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하지 실제로는 자기의 영광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오류가 실제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는지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다. 일부 대형교회에서 일어나는 행태는 바로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할 영광을 사람이 차지하는 경우라 하겠다. ‘열린예배’에서 행해지는 복음찬송 부르기가 과연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의 심리와 감수성에 몰입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검토해야할 것이다. 성경에도 어떤 것이 “우리에게 영광이다.” 하는 표현이 있지만,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이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 영광은 인간이 생산할 수 없으며, 규정할 수 없는 궁극적인 생명의 능력으로서 오직 하나님에게만 돌려져야 하며, 우리는 그 앞에 무릎을 꿇을 뿐이다.


결론 삼아, 글머리에서 한번 짚은 “바울의 개종은 역사적 사실인가?” 하는 질문을 다시 해보자. 표면적으로는 유대교로부터 기독교로 개종한 게 분명하지만 당시에 유대교와 유대-기독교 사이의 차이라는 게 그렇게 결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개종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점을 앞에서 밝혔다. 이에 관해서는 성서 신학과 초기 교회사를 중심으로 훨씬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약간 다른 시점으로 들어가면 바울의 개종은 더 분명해진다. 그가 유대-기독교를 거쳐서 결국 이방인 기독교로 넘어온 시점이 바로 그것이다. 바울이 유대-기독교가 유대교와의 연결 끈으로 삼은 토라와 할례를 완전히 거부했다는 것은 이제 유대교와 단절되었다는 의미이다.

바울의 개종 문제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독교의 선교는, 특히 한국 개신교의 선교는 늘 개종을 전제로 한다. 불교 신자가 복음을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들이 일종의 무용담처럼 교회 안에서 회자된다. 심지어는 불교 승려가 목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해외 선교사들 중에서도 이슬람교도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걸 선교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람은 경우에 따라서 개종이라는 천지개벽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만, 기독교가 그것을 목표로 전도하는 건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을지 모른다. 필자의 생각에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도, 바울도 공격적인 개종을 요구하기보다는 예수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증언했을 뿐이다. 자기의 진리를 소박하게 표현하는 삶이 잘못이라는 말이 아니라 공격적인 선교를 문제 삼는 것뿐이다. 특히 오늘의 다원적 사회에서 개종보다는 각자의 종교에 진실하도록 돕는 게 참된 선교가 아닐는지.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