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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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전도사가 저에게 다비아에서 놀지말고 니골라에 가서 놀라는 답을 썼더군요.
제가 개인적인 일로 바쁜 관계로 계속 궁금해하다가 오늘 일과를 마치고서는 한 번 찾아봤습니다.
대체 니골라가 뭘 말하는가?
분명 성서에서 보긴 본 것 같은데... 해서 찾아 보았습니다. 결과는
성서에는 니골라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되어 있더군요.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요한계시록2:1)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 하노라" (요한 계시록 2 : 6 )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요한계시록 2:12)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 요한 계시록 2 : 15 )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 에베소와 버가모 교회에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께서 에베소 교회가 미워하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자신도 미워 한다 하셨고,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책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니골라당은 대체 어떤 자들이기에 이렇게 책망을 받았을까요?
1. 니골라당의 배경
니골라는 시리아 안디옥에서 태어났으며,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그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었습니다.
니골라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72명의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고,
일곱 집사를 뽑을 때 안수까지 받았던 집사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초기 교회 박해때 은든생활을 하면서 따로 교리를 정립 하였습니다.
니골라가 정립시켰다는 교리가 어떤 것이기에 예수님(?)도 미워 한다고 하였을까요 ?
그럼 교리를 보겠습니다.
2. 니골라당의 교훈이란 ?
교회사와 역사속에 의하면,
니골라의 교리는 구원에서 행위를 부정하는 사상이었습니다.
니골라의 사상은 구약의 율법적인 제도와 교리들은
신약교회 안에서는 필요치 않으므로 율법의 행위에 제약받지 않는다는 교리였다고 합니다.
니골라당의 교리는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는 중요한 요소는 영만이 구원 받는다.
그래서 육신은 땅에 묻어 썩어지므로 육신을 마음대로 즐겨도 된다며 행위를 부정시하는
교리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생활 속에 있는 육신은 정욕으로 써도 좋으니 영만 순수하면 된다는 것이 당시 니골라당의 교훈이라
합니다.
당시 니골라당의 교리로 인하여 고린도 교회는 도덕적으로 타락되어 성적행위도 죄로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신자들의 신앙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에 반하는 예수님의 지적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면.
"내가 심판날에 행위대로 갚고, 행함대로 심판하고, 행함에 따라 영벌을 받으리라"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야고보서 2 : 22 )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으니 그러므로 회개하라" (요한 계시록 2 : 3 )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야고보서 2 : 24ㅡ26 )
"너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카 전서 5 : 23 )
이처럼 신약성경에는
에베소 교회처럼 구원관에서 행위를 부정하는 잘못된 교리를 미워하고 배척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 예수의 행위를 가르치지 아니하고, 예수의 십자가 의를 자신의 것으로
도적질하는 사람들이 바로 니골라당의 교훈에 빠진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는 "그리스도 자신의 것이며"
우리에게 그것을 본으로 보여주시면서 각 사람은 거룩한 행실로서 "자기 의를 나타내라"고 행위를
강조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 온전케 되었나니, 저(예수)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한일서 2 : 3ㅡ6 )
성경의 교훈은 누구든지 자신의 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라 합니다.
이유는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 속에는 진실이 없기 때문이라 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행함은 없고 말로만 믿는다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를 자신의 것으로 도적질하는 사람 입니다.
믿음은 곧 확신 입니다.
믿음과 행위가 함께 나타나야 온전히 믿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ㅡ 이상은 장죠셉 목사님의 글 내용중 요약 발취함 ㅡ
저는 왜 이렇게 예수님(?)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니골라당에 속한 사람일까요?
대체
그분은 무슨 근거로 저에게 다비아가 아니라 니골라당에서 활동하라는 것일까요?
만약 그 분이 이 글을 읽는 다면 저의 어떤 모습이 니골라당과 흡사하다고 여겨서인지 한 번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용기가 샘솟는군요.
하지만,
이미 싸이트운영자께서
다비아와 샘터교회의 싸이트 분리에 가까운 작업을 하셨기에
앞으로는 그런 일은 없을 듯 합니다.
이미 지난 과거는
발전적인 미래의 밑거름으로만 의미가 있기에
지난 주간의 논쟁은 끝내고 싶습니다만
저에게 니골라.넷에서 놀라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하여 이렇게 글을 쓴 것입니다.
하랑님께서도
다비아에 실망을 하셨다는 표현을 하셨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대를 하셨었다는 이야기와 동일하므로
앞으로 애정을 가지고, 함께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한표 감사합니다.
저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다비아가 더욱 발전적이고 내실있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에 한표라고 생각합니다.
저에 대한 공격이 내용이 아니라 말투(글투)때문인 것을 보면 제 생각이 문제가 아니라
공격적인 글쓰기에 대한 이의제기인 듯 합니다.
물론 제 글쓰기가 그리 은혜넘치는 방식의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직설적이고 공격적으로 보인다는 것도 알구요.
그리고, 저는 그런 공격에 대해서 대응은 하지만 그리 크게 심각하진 않습니다.
대부분 수용을 하면서도 저를 바꿀 생각은 하지 않지만요...
왜냐면 제가 모든 글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과격하게 쓰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온라인의 특성상 그렇다는 핑계를 대기도 하구요.
하여간 다비아에 애정을 가지시고 꾸준한 활동 기대합니다.
다양함 속의 일치야말로 다비아가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방향이지요.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곳은 다양한 생각을 인정해주지 않는 곳인가요?"
라고 적어주신 문장에서 잠시 생각이 머무는데요,
어느 누구도 '이곳' 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모든 글들을 한 개인의 사적인 생각으로 읽어 주셔야지
특정한 글을 읽고, 아~ 다비아는 어떠어떠하구나, 라고
전체의 이미지를 결정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는 일이 다들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별똥별님이 그런 오류를 범하셨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냥 평소에 생각했던 점을 님의 글 아래에 댓글로 달게 된 것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좋은 월요일 아침입니다 ~
기자님에게는 또다시 전쟁같은 한 주를 시작하는 긴장된 시간이겠지만요 ^^*
깊이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댓글을 지운 것이 아니라 꼭지글을 쓴 사람들이 서로 합의해서 자신이 쓴 글을 내린 것입니다.
물론 이런 행위들은 무책임한 일이지요.
함부로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이구요.
하지만 당시엔 어쩔 수 없었습니다 ....
변명을 하자면,
솔나무님과 제가 문제 해결에 대한 의견의 충돌이 있어서
거친 모양새의 글을 잠시 올리게 되었는데,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의 방식이라 생각하고 올렸던 긴급조치성 글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긴급 상황에 대해 다른 방식의 해결책을 찾기로 합의한 후
함께 글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꼭지글 아래에 댓글을 달아 주신 분들에게 쪽지로 양해를 구했는데
평민 장로님을 제가 빼먹은 모양입니다.
사실 지난 토요일은 물밑에서 무지하게 정신 없었거든요 ㅠ.ㅠ...
가끔씩 전화 통화도 나누고, 격의 없이 마음 전하는 어르신이라
제가 무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장로님 정말 죄송합니다,
함 봐주세요~~
이러한 사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염려로 보시는 다비안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조용한 것, 문제 없는 것, 덮어 버리는 것, 거짓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적이라 여기는
분위기에서 오랜동안 지내온 경험으로는, 약간의 당혹감이 없지 않음은 사실이나,
이런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솔직한 것임을 인정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없고, 미움이 없고, 싸움이 없다고, 아니면 없어야 한다고
줄곧 들어왔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도 고난도 오고, 마음에 미움도 있고, 그 공동체에 갈등도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절대로 비신앙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점이 있다면, 이러한 고난과 갈등, 충돌등을 어떻게 우리가 대하고, 처리해 나아가느냐가
진정한 예수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생각됩니다.
덮어 버리고, 묻어 버리고, 쉬쉬하는 평안이 아니라, 온갖 문제 가운데에서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승리하는 다비안 공동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다비아 온/오프라인 공동체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시는 시드니님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지난 한주간 작은 이슈와 논란들이 있었습니다.
주로 오프라인 상에서 진행된 일들이라
온라인에만 접속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궁금증을 안겨드렸을 것입니다.
특히 월요일을 맞아, 주일이 지나고 뭔 소식이 없나? 궁금해하실 분들도 많이 계시겠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갈등의 많은 부분이 원만히 해소되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하나의 마음으로 예배 공동체에 동참한 후,
공식 대화를 나누고, 자리를 옮겨 함께 식사를 하고,
또 남은 이들끼리 뒷풀이도 가지면서
조금씩 달랐던 이견들이 큰 흐름속에서 통합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했던 것은, 시드니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갈등을 통해 오히려 건강한 유익을 얻기 위해
다들 열심히 고민하고, 집중하고, 서로를 배려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비아와 서울샘터교회가
역시 일반 교회와는 다른, 신실한 영성에의 집중력과 건강한 자정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쁜 마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많은 부분이 미성숙하겠지만 말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가지 죄송한 것은
이런 논란들을 일일이 온라인상으로 공개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워낙 많은 분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복잡하게 상호 충돌하는 양상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각자가 하나하나 온라인상으로 끌고 와서 논의를 전개했다면
문제의 본질은 상실되고 엉뚱한 오해와 추측들만 난무했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심스러움이 혹여라도
오프라인 사람들의 '그들만의 리그' 정서에서 비롯된
언론 통제처럼 비추어지지는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온라인상에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문제들이 도출된다면
언제라도 명백히 논의를 전개하고자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건은 그렇게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정황상의 특수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다비안들이
주님이 허락하신 참 생명의 기쁨을 누리며
이 한주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소풍님의 말씀 충분히 이해합니다. 인간의 글이라는 매체가 얼마나 부족한 것인지
늘 통감하는 저로서는 온/오프라인의 미묘한 차이를 말씀하시는 소풍님의 뜻에
동감합니다. 문제를 덮어 버리는 것과, 소모성의 논쟁을 방지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죠.
한가지 제가 바라는 것은, 다비아나 샘터교회가 신앙공동체로서 나아가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스라엘이나 신약시대의 교회나 그 자체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나머지
세상에 '보여지기'위한 존재로서의 의미도 크다고 배웠습니다. 그 '보여지는' 것이, 결과 뿐만 아니라,
그 과정까지 포함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물론, 소풍님이 말씀하신 기술적인(온/오프) 범주 안에서요.
우리가 정말로 공동체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신뢰한다면, 감출 것은 아무것도 없을겁니다.
당사자들의 문제지만 만약 감정적인 발언이었다면 해명이나 사과가 있어야 겠고요.
최근에는 필요한 싸움을 폭력이나 악으로 간주해버리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월광님에게 뭐라 그러는 댓글들을 보면 대개 감정적이고 거친 말투 때문인데
텍스트 내용이 아닌 말투 따위로 트집을 잡는 것은 지양해야겠지요.
그런것은 건전하고 발전적일 수 있는 싸움을 비생산적이고 감정적인 싸움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니까요.
비판적인 내용의 텍스트라면 그 말투가 다소 거친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중요한것은 비판하는 내용이겠지요.
월광님의 비판과 문제의식이 다비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다비아에 가끔 들리지만 월광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보는 듯한 느낌이 자주 들게 됩니다.
가입한지 얼마 안된 회원인 저로써는 이러한 것들 때문에 이곳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만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도 아쉽고요.
물론 그런것도 적당히 필요하겠지만 이곳의 친구놀이에 관심없는 저같은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아니, 이미 많이 떠났을수도 있겠군요.)
따라서 월광님의 용기에 한표를 던지며 문제제기에 동의합니다.
애정어린 문제제기를 유치하게 말투니 어쩌니하는 다른 방향으로 흐리지 말고 심각하게 숙고하고 논의해서 그 결과 더 나은 다비아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