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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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3주 전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어떤 독서 모임에 나가기 위해 책 몇 권을 빌리려 안국 역에서 내려 정독도서관으로 걸어갔습니다.
중간에 있는 수제 타르트 가게에 들러 에그 타르트와 유자 타르트를 사서 한입에 삼켰습니다.
달콤쌉사름한 향내의 수제 타르트는 바삭바삭한 알갱이에 약간의 비릿함과 고소함이 섞여 삼키고 난 뒤에도 입맛을 다시게 했습니다.
그렇게 어기적어기적 북촌길을 걸어서 정독 도서관 입구에 다다른 저는 우연히 한 후배를 만났습니다.

예전보다 살이 꽤 붙은 대학 2년 후배 K였습니다.


K와 저는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우선은 군대를 안 갔고(그것도 동일한 병력으로),
중문과로 들어와서 국문을 복수전공한 저와,
중어중문 가전공으로 들어와 국문과 신문방송을 복수전공한 K.
책을 좋아하고, 문학도의 꿈이 있던 우리는 제가 3년간의 휴학 생활을 마치고 복학한 2000년부터 많은 수업을 함께 들었습니다.
같이 소설 창작 개론을 듣고, 한국현대작가론을 듣고, 그 외 많은 국문과 수업들과 교양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2001년 초봄에 제가 취직을 하고, K는 4학년 생활을 하다가 저와 함께 2002년에 졸업을 했지요.
둘다 문학적인 재능은 별로 없었는데도. 작가를 꿈꾸고 시시껄렁한 소설 나부랭이를 쓰곤 했습니다.
굳이 작품성을 따지면,제 유치찬란한 소설보단 그 친구 것이 나았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겠습니다만, 흔히 말하는 오십보 백보였습니다. ㅎㅎ

그래도 어쨌든 저는 제 이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모 출판사에 입사했고, 그 친구는 기약 없는 취업준비생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 이후 몇 해 동안,
저는 3년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학교 앞에 가게를 차렸다 실패하고,
턱도 없는 시나리오작가를 한다고 설치다 자신의 무능과 게으름에 절망하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어줍잖은 이력을 받아주는 출판계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K는,
저의 뒤를 따라 출판계로 오려고 여기저기 지원했으나 대부분 경력자만을 채용하는 출판계의 속성 때문에
취직을 하지 못하고 제 조언에 따라 영어 공부만 죽어라 하면서 어줍잖은 직장에 몇 번 다니다 금세 관두고
요새는 공무원 공부를 하고 있다더군요.
막 2년 시효가 지난 토익 점수를 다시 따기 위해 시험을 치고 온 후였고요.


한때 한국문단을 뒤흔들겠다는 무모한 꿈을 꿨던 두 선후배는...
정독 도서관 정원의 벤치에 앉아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적잖이 쓰라린 속을 부여잡고 신세 한탄을 했습니다.
K가 저에게 묻더군요.
"형 제가 취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더 이상 공부할 엄두가 안 나요."
한번도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해 주지 못한 선배가 염치없이 한 마디했죠.
"국비지원으로 받을 수 있는 무료 직업교육이 있어. 그걸 받아봐."

국비지원 교육은 대부분 우리의 전공과는 상관 없는 IT 쪽 교육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뭐라도 배워야겠지만... 한때 작가를 꿈꾸던 그 친구에게는 참 가혹한 조언일 것입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친 우리는 헤어졌고,
저는 도서관으로 들어가 책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한구석에 쳐박아 뒀던 2009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꺼내 읽었습니다.
2009년 이상문학상의 수상자는 김연수 작가입니다.
아마도 우리와 같은 도서관을 썼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았고,
같은 술집에서 술을 마셨을지도 모르는 선배죠.
사실 우리 학교에서 이름 날린 문인이 거의 없었기에(좀 유명한 문인으로는 비공인 세계 최다 소설 창작 기록을 갖고 있는 서효원 씨?) 김연수 씨의 존재는 참 이채로웠습니다. 그리고 교회 독서 모임에서 그의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서 막연하게 느끼던 그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반쯤 질투 어린 존경의 시선으로 그의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그는 드디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면 꼭 거쳐야 하는 이상문학상을
올해 받았고요.








책 속 그의 '문학적 자서전'을 읽었습니다.

10여 년 전 서평지<출판저널>에서 기자로 일하던 김연수 씨는 문학을 향한 관심을 끊고 실용과 경제경영 분야를 맡아 인생의 중요한 진리들을 열심히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다 아는 이런 것들도 모른 척하면서 잘도 살았군 하며 혀를 차던 그에게 잡지사에서 장편 소설을 연재하지 않겠냐는 청탁이 들어옵니다. 뜻밖의 제안에 어리둥절해 하던 그는 인생에 쓸 수 있는 단 한 편의 장편소설, 자기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장편을 쓰자는 결심을 하고 자신에게 문학을 가르쳐 준 이상의 이야기를 소설로 씁니다.
그것이 소설 <굳바이 이상>입니다.
그 소설을 쓰면서 그는 글을 쓴다는 것은 고독을 대면하는 일이며, 평생 글을 쓰겠다는 것은 평생 고독을 대면해야 한다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그는 그 고독이 따뜻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어떤 실용서에도 나오지 않는 인생의 진리였습니다.

그렇게 작가 김연수는 다시 태어났고, 그 이후로 우리가 읽은 <밤은 노래한다>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을 양산해 냅니다.
앞서 말한 따뜻한 고독에 중독된 덕에 그렇게 많은 작품들을 쓸 수 있었고, 앞으로도 쓸 수 있을 거라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기가 쓴 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발췌합니다.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라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다시 찾아오면서 그들을 습격하고 복수하지만, 그리하여 때로 그들은 사기꾼이나 협잡꾼으로 죽어가지만 그들이 죽어가는 세계는 전과는 다른 세계다. 우리가 빠른 걸음으로 길모퉁이를 돌아갈 때, 침대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눈 뒤 식어가는 몸으로 누었을 때, 눈을 감고 먼저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다시 눈을 떳을 때, 몇 개의 문장으로 자신의 인생을 요약한 글을 모두 다 썼을 때, 그럴 때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는 몇 번씩 그 모습을 바꾸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모습의 세계가 탄생했다. 실망한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척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자!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겹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믿자! 설사 그 일이 온기를 한없이 그리워하게 만드는 사기꾼이자 협잡꾼으로 우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가 바로 우리에게 남은 열망이므로.






이 책을 읽고서 후배 K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더군요.
며칠 후 문자가 왔습니다. "형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요. 국비지원교육 알아보고 전화할게요" 이런 문자였습니다.
과연 제가 이 친구에게 국비지원교육을 권한 게 잘한 걸까요?
알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보지만 받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난 후에 작가 김연수를 보다 더 잘 알기 위해 빌려왔던 많은 책들 중 단편집<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이 책은 빌렸다가 변기에 빠뜨려서 제대로 못 읽고 반납했습니다. ㅡ.ㅡ;) 의 수록 소설 중에 주인공이 북촌 거리를 걷는 내용의 소설이 있던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다시 빌려와(변기에 빠졌던 책을 그대로) 읽어봅니다.

34살(저랑 동갑이네요!T.T)의 주인공은 아내와 이혼한 후 우연히도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눈을 떴을 때 맞은편에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안국역에서 내려 예전에 둘이 같이 걷던 길을 다시 걷습니다. 여기저기 그를 끌고 다니던 그녀는 이전엔 못 피던 담배를 하나 달라고 하고, 자신이 꿈 이야기를 하고선 어정쩡하게 헤어집니다. 주인공은 길가에서 지도를 사서 그녀가 어떤 나무 한그루를 중심으로 끌고 다녔다는 것을 알아내고... 600년 된 그 나무를 올려다 보면서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둘 중 누구의 농담이 웃긴가 따져보기로 합니다.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는 잘 알 수 없었습니다.그저 주인공의 무기력하고 답답한 상황과 저의 상황을 비교해볼 뿐입니다.
또 후배K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고민할 뿐입니다.

어쨌든 내일이고 모레고,
저는 다시 K에게 전화를 하든, 문자를 보내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비지원직업교육의 정보도 주겠지만...
꼭 2009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어보라고.
그리고 한마디를 해주려고 합니다.
열망을 버리진 말라고.


후기:오늘 그 녀석을 만났습니다. 책 얘기는 한 마디도 못하고 이거 하면 돈 잘 벌 거다, 출판계 올 거면 각오하고 지원해라 등등의 말을 했습니다. 헤어진 다음에야 겨우
문자로 올해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읽어보란 말을 했네요. 어찌됐든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profile

이방인

2009.03.17 10:03:06
*.118.129.226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라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계시가 없이는 이런 문장이 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파란혜성

2009.03.18 21:33:08
*.38.83.67

네.... 경험으로부터 나온 명징한 결론... 그렇기에 가슴에 팍 박히네요
profile

소풍

2009.03.17 16:59:33
*.155.134.136

저도 김연수씨 좋아합니다. 
연배가 같아서 소설이든 에세이든 정서의 공감대가 쉽게 이뤄지더군요.
더불어 
사랑채에 가끔씩 올라오는
파란혜성님의 자기고백적 글들도 참 좋아합니다 ~~^^*

그건 그렇고
거 왜 공공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변기에 빠뜨리고 그런답니까?
볼일보기 전? (다행...) 아니면 후? (으악~~~!!)   

파란혜성

2009.03.18 21:35:38
*.38.83.67

볼일 보기 전이에요 ㅎㅎ 김연수 씨 글이 다 와닿는 건 아닌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공감대가... 하지만 좀 미문을 사랑하는 듯 ㅎㅎ.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profile

홀로서기

2009.03.18 10:04:55
*.204.173.29

파란혜성님 글만으로도 좋은 소설 한 권 읽은 것 같은데요. 꿈 버리지 말고, 계속 작가에 도전해보심은 어떨런지^^  근데, 후배와의 대화... 참... 씁쓸하다^^;

파란혜성

2009.03.18 21:34:07
*.38.83.67

꿈을 버린 건 아니고... 전업작가는 힘들겠다 정도요? ㅎ 뭐 계속 노력하면 언젠가는 빛을 보겠죠 ㅎㅎ 격려 말씀 감사합니다.
profile

김동현

2009.03.19 00:36:12
*.159.153.55

인문학에 빛이 비치는 시대를 잠깐 지나 다시 암울한 시절이로군요.
언젠가 좋은 시절이 다시 찾아오겠지요?

고독이 글쓰는 에너지가 된다는 것은 저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니, 저는 고독하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더군요.
그 고독이 제게 따뜻한 것인지, 아니면 서릿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매우 모호한 존재랄까요.

파란혜성

2009.03.20 12:54:28
*.111.130.41

네... 저도 좀 더 고독해져야 할 거 같습니다. 글 쓰는 훈련이 많이 필요한데... 한승원 선생님 책이 나와서 한번 사볼까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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