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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는 1928년에 독일의 스테틴-오늘날 폴란드의 스체친-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는 베를린 대학과 괴팅겐 대학에서 공부했다. 이 시기에 세속주의를 넘어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1950년에는 칼 바르트에게 신학을 배우기 위해 바젤로 갔고, 다음 해에 하이델베르크로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한연구회의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후에 이 모임은 '판넨베르크파'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의 토론은 <역사로서의 계시>라는 공동 저작을 낳았다. 이 학회는 1969년에 부활의 역사성을 둘러싸고 학회 내부의 의견 차이가 발생하기 전까지 정기적인 모임을 지속했다. 판넨베르크는 1955년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58년에 그는 부페르탈 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잠시 몰트만과 동료로 지내기도 했다. 그 후 1961년에는 마인츠대학의 조직신학 교수가 되었고, 1968년에는 뮌헨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판넨베르크는 바르트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으나, 몇 가지 점에서는 그와 대립하기도 했다. 특히 바르트, 불트만 그리고 그 밖의 학자들이 신학을 역사비평으로 부터 분리시키려 한 것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역사적 예수(역사비평이 보여 주는 예수)는 무시하고 신학의 근거를 오직 '신앙의 그리스도'(초대교회가 선포한 예수)에 두려는 20세기의 경향에 동의하지 않았다. 판넨베르크는 신학이 반드시역사에 근거해야 하며 다른 학문 분야의 연구 결과물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사건이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복음을 인류의 지식이라는 장터에서 끌어내는 것이고, 신학을 비밀 집단의 내부 사정에 밝은 사람들을 위한 연구로 만드는 것이다.
판넨베르크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계시개념을 제공했는데, 그는 이것을 <역사로서의 계시>에서 일곱 개의 교리적인 주제들을 가지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계시를 역사로부터 분리시킨 신정통주의와 실존주의의 연구 방법에 맹렬하게 반대하면서, 판넨베르크는 하나님의 계시를 역사의 사건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시켰다. 바르트는 부활의 역사성을 증명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하며, 부활의 진리는 오직 '신앙'의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판넨베르크는 바르트의 입장이 신학을 인류의 지식으로부터 분리시켜 신앙인의 개인적인 이론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독교 신앙은 '사회 내적인 진리'가 되어야 한다. 그는 기독교가 진리 선언, 특히 부활의 역사성을 검증하는 일에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거들이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준다고 강조했다. 예수의 부활을 믿게 되는 것은 우리의 눈앞에 있는 사실을 단순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부활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에 따른 자연적인 결과이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수 없도록 부활의 진리가 감추어진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이성이 또 다른 인지 방법으로 보완되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정확히 보기 위해 반드시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 믿음은 부활의 사건을 바로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활 사건 때문에 촉발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믿음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가? 아니다. 역사비평은 확실성이 아니라 개연성을 갖게 한다. 고대의 역사가들이 후손들에게 들려 줄 교훈적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줄리어스 시저라는 인물을 허구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입증할 수는 없다. 이러한 가정은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이를 반박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 충분한 근거들에 의해 진행되는 역사비평은 부활의 개연성을 보여 준다. 믿음은 우리에게 확실성을 줌으로써 지식을(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성적인 주장은 아내의 정절에 대한 당위적인 믿음과 대단히 흡사하다. 그러나 내가 아내의 정절을 확신하고 신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당위적 가능성을 넘어서야 한다. 그러한 믿음은 눈에 보이는 증거들을 뛰어넘을지 모르지만, 모든 이들이 알아볼 수 있는 증거들이 근거가 되어야 확고한 것이다.
판넨베르크에게는 계시가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데, 우리가 '구속사'라고 부르는 역사의 특정한 시가나 사건을 통해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역사 전체를 통해 발견된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의 종말까지 완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둠 속에 버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에수님의 운명 안에서, 우리는 마치 예견하듯 역사의 마지막을 미리 경험한다." 실제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역사의 종말이 이미 실현된 것이다. "역사의 종말은 이미 예수 안에서 경험된 사건이 우주적 범주에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계시는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이후에는 역사속에서 자신을 계속 계시해 오셨다. 그러나 "예수의 생애를 통해 이미 계시한 것 외에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다른 방식은 없었다."
판넨베르크는 20세기 신학의 주요 흐름에 중요한 교정 수단을 제공했다. 그는 신학을 역사와 접목시킴으로써 부활이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반드시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신앙이 이성적인 증거보다 더욱 소중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응답할 수 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 그러므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전 12:3)
판넨베르크는 여러 해를 걸쳐 중요한 저서를 많이 저술했다. 그러나 가장 유명하고 아마도 가장 훌륭한 작품은 1964년에 출판한 <하나님이며 인간인 예수>일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기독론을 다루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접근 방식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위로부터의 기독론'으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시작해 그가 왜, 어떠한 방식으로 인간이 되었는지를 묻는 연구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으로, 이는 인간 나사렛 예수에서 시작해 그가 어떻게, 어떠한 방식으로 하나님이었는지를 묻는 방법이다. 판넨베르크는 전자를 무시했다. 오늘날 신학의 가장 중요한 사명 중 하나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정확한 의미로 증명하는 것인데, 이 '위로부터의 기독론'은 이미 그리스도의 신성을 전제하고 있다. '위로부터의 기독론'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을 축소시키고, 어떻게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이 한 인격 안에서 연합할 수 있는지의 문제에 초점을 둔다. 판넨베르크의 방법론은 역사적 예수로부터의 시작하는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에서 출발해 그리스도의 신성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여 주는 사건은 바로 부활이다. 만약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가 하나님께로 승천했고, 그 때문에 세상의 종말이 시작되었다멵,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예수 안에서 계시된 것이다. 부활은 예수와 성부와의 연합을 보여 준다. 자칫 공허한 주장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예수의 모든 주장들이 하나님에 의해 정당화된 것이 부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성육신은 기독론의 출발점이 아니라 결론이 된다.
예수는 -그에게 신성을 부여하는- 하나님과의 계시적 연합 안에 있으나 여전히 성부 하나님과 구별된다. 삼위일체 교리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하나님이며 인간인 예수> 제4장.
기독교인물 사상사전 토니 레인 지음 박도웅 양정호 옮김 홍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