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곧 우주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양심을 따라 선택할 자유와 책임을 지닌 주체다.

때문에 사람의 자유와 권리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어떤 이념, 어떤 신앙, 어떤 관습도 한 사람의 고유한 자유와 권한을 제한하거나 억압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사회적 약속이나 국가의 법률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정한 규칙에 따라 처벌할 수 있지만, 공적인 처벌을 할 때에라도 개인의 고유한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인권을 무시하는 공권력의 남용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아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수단이나 방편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반대의 진실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제한적이어야 한다.

고삐 풀린 자유와 권리(나의 자유와 권리만을 외치는 것)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짓밟을 수밖에 없고, 결코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에게 있어서 나의 자유와 권리는 너의 자유와 권리 앞에서 멈추어야 한다.

만일 멈추지 못한다면 만인의 자유와 권리는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고,

자유와 권리의 벽이 점차 높아지다 보면 결국 만인이 분리되는 파편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와 교회가 바로 그러한 지경에 빠져 있다.

사람들이 다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

나의 자유만을 외치며 타인의 개입과 참여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야말로 만인이 왕이다. 자아가 곧 신이다.

거래는 활발하지만 소통은 없고, 소비는 춤을 추지만 인격적인 소통과 참여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심지어 객관적인 규범이나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까지도 내가 원치 않으면 무시해버린다.

경 말씀의 권위 보다는 내 해석의 권리가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

교회 안에서도 권면하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해져버렸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로를 권고하고 책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거의 불가능해져버렸다.

각자 자기 상황에 따라 자기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절대화되어버렸다(물론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시장 권력에 종노릇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면에서 보면 자의적인 종노릇이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임).

진실로 현대는 자아 우상시대다.

나는 인권을 무시하고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도구화의 길을 극력 반대한다.

하지만 자신의 자유와 권리만을 주장하는 자아 우상의 길, 사람 간의 장벽을 높이 쌓는 파편화의 길도 못지않게 반대한다.

나는 두 길을 원치 않는다. 나는 제 3의 길, 두 길을 초극하는 사잇길을 원한다.

즉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장벽이 되지 않는 길,

자유가 순명으로 권리가 섬김으로 나아가는 길,

개인의 독립과 책임이 해체되지 않으면서도 비평의 개입과 이해의 소통이 열린 길을 원한다.

그리고 이 길이 바로 예수님이 가신 길, 예수님이 십자가로 내신 길이라고 믿는다.

하나님나라의 삶의 양식이라고 믿는다.

예수 안에서 열린 구원의 세계가 무엇인가?

중간에 막힌 담을 허는 것, 단절되고 왜곡된 관계의 회복하는 것이 곧 구원이다.

 

때문에 교회는 개인의 장벽을 넘어 상생의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

타인의 자유와 권한은 하늘처럼 존중하면서도 나의 자유와 권한은 상대화할 줄 아는 겸손의 연습을 쉬지 않아야 한다.

자고로 관계를 떠난 개인이란 존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