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0대 중반이다. 인생의 반환점을 훌쩍 넘어섰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부요하고 다채로운 삶도 아니었으나 그리 피폐하고 굴곡진 삶도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약간 부족한 것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에는 최상의 조건이라는 소신대로 약간의 부족함 가운데 머물며 살아왔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걸음걸음마다 허물과 오점 투성이였다는 사실이다. 그랬다. 내 인생은 스스로 책임지겠다며 다른 이의 지혜를 묻지 않은 실수, 역사 속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겠다며 섣부른 도전장을 내민 어리석음, 생각과 현실의 간격을 한 숨에 뛰어넘어보겠다는 어설픔과 오만함, 다른 이의 판단과 행동의 오류는 잘 짚어내면서도 정작 내 판단과 행위 속에 숨어 있는 치명적인 오류는 인식하지 못하는 우매함, 올곧게 순종하지 못하는 어정쩡함, 끊임없이 솟구치는 욕망과 뼛속깊이 배어있는 반역의 습성 등이 난무했다. 세상을 넘어서겠다며 나름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세상을 넘어서겠다는 몸부림 속에 세상을 향한 집착이 더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며 세월을 아낀다고 했던 게 실은 생활의 작은 즐거움과 여백만 빼앗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하여, 인생을 반환점을 넘어선 지금 또다시 나를 추스르며 다독인다. 최대한 집착을 내려놓자고, 일의 결과를 손에 쥐어보겠다는 심산, 모든 걸 주장하겠다는 허망한 욕심을 내려놓자고 말이다. 물론 인생을 다 산 것처럼, 모든 욕심을 다 내려놓은 것처럼, 현실을 초월한 것처럼 행세하겠다는 게 아니다. 죽는 날까지 영혼과 정신의 패기를 잃지 않고 도전하며 정진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아야만 진정 나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겠기에, 주께 맡기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자유의 창공을 날 수 없겠기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를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근본 토대이어야 한다고 믿기에 그러는 것이다. 책임 있는 자세로 살되 일의 결국이 내 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의 손길에 맡기는 존재의 겸손을 잃지 않아야 하겠기에 그러는 것이다. 그저 오늘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넉넉히 감사하며 살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제부터라도 믿음의 길을 제대로 걷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은 곧 신뢰다. 그리고 신뢰란 곧 맡김이다. 솔직히 말해서 맡김이 없는 믿음은 바탕이 없는 허구요, 종교적인 자기 암시에 불과할 가능성이 많다. 믿음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백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하심과 통치하심을 신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물론 여기서 그쳐서도 안 된다. 이 믿음은 오늘 나의 일상 속에 그분의 손길이 함께 한다는 신뢰로 구체화되어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그분께 나의 일상과 눈앞의 세계를 맡기는 것으로 현실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살아 있는 믿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믿음의 마지막 행동인 맡김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욕망이요 집착임을 발견했다. 하여, 이제부터라도 믿음의 길을 제대로 걷기 위해 최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려 한다. 일의 결과를 손에 쥐어보겠다는 심산, 모든 걸 주장하겠다는 허망한 욕심을 내려놓으려 한다. 가볍게 사는 것보다 더 지혜로운 일이 없다는 비현실적인 지혜를 따라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