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변의 그리스도인들 중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분명한데 교회 출석은 한사코 거부하는 자들(속칭 ‘가나안-안나가 성도’)이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걸 피부로 느껴왔다. 나는 이런 현실을 체감하며 2년 전 ‘거짓 영이 지배하는 예배를 아파하며’(2011.6.28, 말씀샘교회 홈페이지, 비평의 눈)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구체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의 조사에 의하면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성도가 10.5%이고, 목회사회학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무려 26%에 이른다고 발표됐다(온라인 조사의 특성상 고학력자가 많이 포집된 영향인 듯함). 아무튼 대략 100만명 가까운 성도가 교회 밖을 떠돌고 있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사실 나는 이 정도로 많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많아야 5%정도일 거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치가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유가 뭘까? 왜 그렇게 많은 자들이 교회를 떠난 것일까? 지난 4월 25일 목회사회학연구소가 주최한 [갈 길 잃은 현대인의 영성]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소속 없는 신앙인 조사 결과보고서’(정재영 교수 발표 - 조사는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올해 2월 4일부터 13일까지 10일간 온라인으로 진행됐으며, 기독교인으로서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총 316명<남 159명, 여 157명>의 사례를 분석한 것임)를 발표했는데, 그에 따르면 교회를 떠난 이유가 이랬다.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원해서’가 30.3%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목회자에 대한 불만’이 24.3%, ‘교인에 대한 불만’이 19.1%, ‘신앙에 대한 회의’가 13.7%, ‘시간이 없어서’가 6.8% 순이었다. 이중에 남성은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원해서’가 30.3%인데 반해 여성은 ‘교인들에 대한 불만’이 25.4%로 가장 높았다. 떠나기 전 교회에 대한 평가에서도 ‘교인들의 삶이 매우 신앙인답지 못했다’가 30.6%, ‘담임목사가 매우 독단적이었다’가 26.5%로 나왔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회생활에 대한 불만이 교회를 떠나게 만든 주원인이라고 판단된다. 교회가 성도들의 생활을 지나치게 간섭하고 억압하는 것, 비민주적인 교회 운영, 성도들 간의 갈등, 비신앙적인 행태 등이 못마땅해 교회를 떠난 것이라고 생각된다.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라고 해서 형편이 그리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대다수 그리스도인에게 예배는 인내를 훈련하는 시간, 어쩔 수 없이 져야 하는 무거운 멍에가 되어버렸으니까. 아주 솔직히 말하면,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에서 영적 고문을 당하고 있으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예배의 본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예배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예배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온통 물질적인 축복과 긍정의 힘으로 변조된 소리,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거짓 영의 소리임을 확인하면서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오히려 신앙을 해친다’며 영혼의 절규를 하고 있으니까. 사실이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자들 중에도 잠재적인 가나안 성도가 많다. 영혼의 절규를 하다가 더 이상의 여력이 바닥나면 교회를 떠나고 예배를 포기할 자들이 많다.
    
   목회자인 나는 가나안 성도가 양산되는 교회의 현실 - 마땅히 예배해야 할 자들이 도무지 예배할 수 없다며 예배와 교회를 거부하는 기상천외한 현실에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어느 누구에게도 화살을 돌릴 수 없는 무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성도들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목회자가 영적으로 태만하며 무지한 것이고, 성도들이 자본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목회자가 목회적인 외도를 하는 것이고, 성도들이 공동체에 묶이기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편리함을 선호하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의 힘이 약화된 것이고, 성도 스스로가 예배의 주체이기보다는 예배의 객체로 만족하기 때문에 예배의 영광이 훼손된 것이고, 성도들이 절대를 거부하고 모든 것을 상대화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물들었기 때문에 공적인 예배가 선택의 차원으로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오해는 하지 말라. 지금 누구 탓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예배와 교회를 거부하는지를 논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예배와 교회를 거부하는 배경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하지만 예배와 교회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은 현실을 향해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내가 꼭 말하고 싶은 지극한 진실은 매우 소박하고 원론적이다. 그리스도인이 예배와 교회를 거부하는 배경이야 어떻든지 간에,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은 지극한 모순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좀 야박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자는 그분의 이름을 불러서도, 그분의 자녀라고 고백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야박하다고 할는지 모른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부정하는 교회 중심적 패권주의라고 공박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하나님이라는 분이 예배하지 않으면서 부를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원초적 진실을 환기하고 싶을 뿐이다. 다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지혜의 창조자이시고, 사랑의 통치자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시고, 구원의 큰일을 행하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이시고, 사람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시고 대화의 파트너로 부르신 분이시다. 그분은 진실로 지고의 선이시다. 옳고도 아름다운 분이시다. 그런데 그런 분을 알면서 예배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예배하지 않으면서도 그분을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그런 모순은 없다. 본시 하나님을 아는 일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다. 참 하나님을 알면서 그분을 예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예배는 일종의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자의 심장에서 터져 나오는 영혼의 끌림이요 생명의 설렘이며 환희에 찬 경외이다.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은 지극한 모순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혼자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으로 유명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예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차마 예배하지 않을 수 없어서 차선책으로 혼자 예배하는 자들이 꽤 있으나,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공적인 의식이 없는 마음의 예배, 공적인 참여가 없는 개인의 예배는 예배하지 않는 것에 대한 구차한 변명일 뿐이며, 자기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하는 자기 속임수일 뿐이다.
  생각해보라. 하나님나라에 개인(너 없는 나)이 존재할 수 있는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나라에 나(너와 함께 하는 나)는 있으되 개인(너와 함께 하지 않는 나)은 존재하지 않는다. ‘너 없는 나’로 존재하는 것은 사단적 존재 방식이지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의 존재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공적인 참여가 없는 개인의 예배란 타락한 세상에서만 기생하는 예배의 변종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타종교에서는 그런 예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혼자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혼자 컴퓨터 앞에서 드리는 예배는 개인주의라는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고, 자기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지극한 이기주의의 표출일 뿐 참 예배는 아니다. 설사 예배의 내용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너와 함께 하는 공적인 의식이 없는 마음의 예배, 너와 함께 하는 공적인 참여가 없는 개인의 예배는 예배하지 않는 것에 대한 구차한 변명일 뿐이며, 자기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하는 자기 속임수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교회 패권적인 선언처럼 보이는 한 마디를 덧붙여야겠다.
  “교회 없이는 예배도 없다.”
  이 말은 교회 패권적 발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깊이 곱씹어보아야 할 지극한 진실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