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다그림원고.jpg


요즘  노각 무침, 오이지, 가지구이, 계란말이가 우리집 단골 메뉴다.

토마토 계란 볶음도 자주 먹는다.

계란과 함께 익힌 뜨거운 토마토의 풍미가 좋다.

 갓 낳은 달걀을 깨트려 파, 풋고추를 송송 썰어넣고 돌돌 말아 익힌 계란말이는 쫀쫀하고 고소하다.

새콤 달콤 매콤한 노각 무침이나, 올리브 유에 구워 양념장을 끼얹어 먹는 달큰한 가지구이도 별미다.

비오는 날 부추전은 또 어떤가.

밭에서 잘라 온 부추에  생감자를 두어개 갈아 넣어 

 반죽한 다음 얇게 부치면 배토롬한 맛이 있다.

이 모두가 우리집 텃밭에서 거둔 야채와 이웃들이 전해준 고마운 식재료들이다.

방금 딴 오이나 가지 호박 옥수수등은 싱싱하다 못해 달다. 

유통과정을 거친 대형마트의 야채와는 격이 다르다. 


의사들의 파업으로 남편의 새로운 투약을 위한 검사가 지연되는 바람에

 어머님이 사시는 아파트에서 며칠을 머물다 내려왔다.

영국에 사는 아들이 들어오고 독립해 나가 사는 딸도 와서 오랜만에 우리 가족이 다 모였다.

주말에는 막내 동서네 가족까지 합세해 작은 아파트가  왁자지껄 했다.

식사 때가 되어 습관처럼 밥을 지으려하자 동서가 극구 말린다. 

음식을 준비하고 치우는 수고로 오랜만의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강남의 전문직여성다운 세련된 발상이다.

그저 집밥 외엔 머릿 속이 돌아가지 않는 나는 민첩한 동서의 제안에 밀렸다.

조카들 마저 이구동성으로 주문요리를 찬성하는 걸 보니 그 집에선 흔한 일인가 보다.

동서 말에 의하면 네 식구가  함께 밥을 먹기란 하늘의 별따기란다.

제각기 각자 나가서 먹다 보니 밥을 해 놓으면 밥솥에서 말라 붙을 정도라 전기 밥솥을 치워 버린지 오랜란다.


우리는 시끌벅쩍하게 사다리를 타서 재밌게 음식값을 갹출했고

 조카들과 우리 애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했다.

그런데 사다리 타기도, 음식주문도, 후식으로 먹은 아이스크림까지

 전부 배달앱으로 간단히 해결하는 것 같았다.

치킨 하나도 읍내까지 차를 타고 가서 가져와야 하는 곳에 살다보니

이런 문화가 촌스럽게도 신기하다.

그렇게 배달한 음식으로 대가족 식사가 해결됬다.

들큰한 소스가 버무려진 튀김닭에, 역시 기름진 소스로 뒤범벅이 된 새우요리, 핏자

그리고 어른들을 위한 짜장면이었다.

시장했던 터라 먹기는 먹었는데 토종 입맛인 나는 도무지 개운치 않았다.

입가심을 위한 아이스크림 조차 너무 달고 진했다.

짭잘한 오이지와 구수한 누룽지 한 그릇 들이키면 속이 확 풀릴 것 같았다.

참으로 못 말리는 구닥다리 식성이다.


식사를 마치고 대화는 의사파업 코로나 걱정에서 예의 아파트 값으로 이어졌다. 

동서네는 몇년 전 로또 당첨이라는 강남의 한 아파트를 운좋게 분양받았는데

그 아파트 가격이 지금은 수십억원으로 뛰었단다.

 그럼에도 동서는 보유세를 감당할 일을 걱정했다.

 듣고 있자니 이제는 머리 속이 버터를 뒤섞은 듯 더부룩해졌다.

세상이 미친 것 같다.

환자는 뒷전이고 밥그릇 싸움하는 집단이나

잦아들 줄 모르고 날뛰는 바이러스나

천정부지로 오르는 강남의 아파트 값이나

 올라도 걱정, 내려도 분개하는 이 웃기는 시츄에이션이.

밥솥의 밥이 노랗게 마르도록 식구들이 둘러앉아 밥 한끼 먹기 어려운 이상한 사회가 말이다.

내게는 들척찌근하고 기름진 음식처럼 소화하기 힘들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화창하다. 파란하늘에 뭉게구름이 굵직 굵직 얹혀있다.

한결 뽀송해진 햇살이다

빨래를 너는데 

잠자리 한 마리가  건조대에 살짝 앉았다 가볍게 날아간다.

기분 좋은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그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청정한 평화가 일렁인다.

 아...이 가을의 풍경이 뭉클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여기가 좋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아파트는 커녕 대한민국에서 가장 싼 땅이라 해도,

먹고 싶은 음식이  제깍 배달되지 않아도

가을 햇살과 바람을 온몸에 맞으며

마당에 빨래와 고추를 말릴 수 있는 이곳,

 밭에서 딴 싱싱한 오이로 아삭한 오이지를 담궈 먹을 수 있는,

가난한 이 땅을 사랑한다. 



................


 이 지역 귀농귀촌 잡지에 보내는 그림일기를 나눕니다.

이렇게나마 그림을 그리게 되네요.^^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