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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앞에서


찬바람이 오소소 불어온다.

 또 한 해를 갈무리 할 시기다. 

늦도록 텃밭에 남아있던 고추대를 뽑아 태우고 남아있는 팥알을 거두어 들였다.

이제는 겨울나기를 위한 준비가 남아있다.

몇 포기의 배추와 무우를 뽑아 김장을 담그는 일과 장작을 패서 쟁여놓는 일이다. 

작년부터 이 땔감 준비는 월동을 위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


집을 지을 때 벽난로 설치했다.

 여러 여건을 따져볼 때, 불편할 거라는 여론을 불식하고 벽난로를 고집한 것은 

오랜 로망이었기 떄문이다.

소녀 시절부터 꿈꾸던 집, 그건 벽난로가 있는 집이었다.

피천득 씨의 수필에 나오는 멋드러진 장면에 혹해서 였다.

겨울날 통작작이 타오르는 벽난로 곁에서 어깨에 쇼올을 드리우고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여인....!

한가한 시간이 많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화려한 파티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통장작에 불꽃을 피우고, 차를 음미할 줄 알며, 클라식 음악을 즐기는...,

 그런 품위있고 우아한 "구원의 여인"으로 살고 싶었다. 흠흠....^^

그런데 웬 걸~! 

쇼올은 커녕 허구헌 날, 추레한 작업복을 걸치고  잡초와 씨름하고 모기에 뜯겨가며

개똥과 닭똥을 치워야하는 이 거친 현실이라니...^^

비록 우아와 품위는 물 건너갔을지언정,

벽난로의 사치만이라도 누리고 싶었다.

한 겨울 동안이나마  잠시 그 아련한 "구원의 여인"을 흉내라도 낼 수 있게 된 건 순전히 벽난로 덕분이다.


엄밀히 말하면, 벽난로에 대한 소망은 피천득 씨의 수필보다 화롯불에서 먼저 기인한 것  같다.

어린시절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화롯불을 담아 방에 들였다.

화롯불은 그 주변으로 사람들을 모여들게 했다.

긴 겨울 밤, 마실 온 동네사람들은 화로를 가운데 두고 불을 쬐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었고

아이들은 옛날 이야기도 들었다.

숯불이 오래 가도록 재로 덮어 다독거리면서 할머니들이

뚝배기 된장국이 졸여지도록 손주를 기다리던 것도 화롯불이었고,

언 신발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도, 밖에서 들어온 찬 손을 녹여주는 것도 화롯불 위에서 였다.

어디나 따뜻해서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게 하는 요즘의 난방 시스템과는 달리

화롯불은 은근한 온기로 사람들을 끌어 들이고 담화를 만들어내곤 했다. 

시린 손발을 녹여주듯 어려운 시절, 가난한 마음들을 포근히 다독여 주는 기능을 했다.


온도계가 싸늘한 밖의 기온을 나타내는 밤,

 2020년 끝자락, 진안의 한 변두리에서 나는 밤마다 화롯불 대신 벽난로에 불을 지핀다.

 화롯불의 시대의 다복함과는 달리, 벽난로 주변은 적막하다. 

더 이상의 한담도,옛 이야기도, 마실 온 사람들도 없다. 혼자 불꽃을 바라보기 일쑤다.

소리로, 냄새로, 눈으로 불을 본다는 것은 황홀한 일이다. 

타닥타닥 불꽃이 튀는 소리, 나무 타는 냄새, 일렁이는 불꽃을 멍하니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오감의 긴장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불멍'이라는 신조어(?)를 들었는데 '불을 보며 멍~ 때린다'는 말이란다.

요즘 '불멍'을 자주 때린다.

불꽃은 사람의 영혼을 정화하는 신비로운 힘이 있는 것 같다.

고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낸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시내산 가시떨기 불꽃 앞에서 신을 만난다. 

그리고 마침내 절대권력의 압제 아래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의 자리로 인도해 내는 힘을 얻는다.

쓰고 보니 비유가 좀 거창해졌다.


몇년을 살아보니 농촌의 겨울은 쉼과 충전의 계절이다.

추운 계절이 다가온다.

올 해는 전 세계적으로 더 추운 계절이 될지도 모르겠다.

불꽃 앞에서 가만히 기원해 본다.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게 하소서.

허허로운 영혼들을 비우고 채우소서.. 

잡다한 것들은 소각되고 내일을 알 수 없는 위태위태한 불안도 소멸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지금 여기를 살 수 있는 새로운 기운이 넘실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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