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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에 방문한 이들은 이렇게 묻곤 한다.

“여기서 뭐하고 사세요?”  

따분하지 않느냐는 물음일 게다

하지만 실상을 모르는 소리다. 이곳에선 누구나 분주하다

농부든 아니든, 자연 속에서 제각기 조용히 바쁘다

그런데 그 바쁨에는 사람을 소진 시키는 대신 생기를 얻는 소소한 기쁨이 스며 있다면 그들은 이해할까

그런 채움의 기운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지금의 내 상황을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근 일어난 즐거움 하나. 

씨암탉이 알을 품어 작년에 이어 올 봄에도 병아리 10마리가 깨어났다.,

아아, 그 과정의 신비라니..! 지켜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생명의 신비로움이다.

고 귀여운 녀석들의 보송보송한 솜털에서 날개가 돋고 몸통이 커지는 걸 하루 하루 지켜보며 

물통을 채워주고 풀을 뜯어주고 닭장을 치워주는 일. 소소한 즐거움이다.


즐거움 둘.

을 일굴 때 나는 평화롭다.

부드러운 흙 냄새를 맡으면 뭔가 모르게 안온해진다.

내 삶이 들떠있지 않고 있어야 할 곳에 착지한 느낌이랄까.

평생 농사를 지은 분들처럼 실하게 가꾸진 못하지만 어설픈 대로 심고 거둔다.

내가 심은 마늘로 요리를 하고, 콩을 털어 콩밥을 해 먹는 맛도 알았다.



즐거움 셋.

알뜰살뜰 중고 장터.

매달 한 번씩 열리는 중고 장터 썸썸도 뺴놓을 수 없다.

오랜만에 장터에서 만나는 얼굴도 반갑고  필요한 물건도 건지고 점심도 같이 먹고,

생기는 수익금으로 아프리카 우간다 아이들의 학비도 보태고 버려지는 물건 쓰레기도 줄인다.

쇼핑의 욕구도 해소한다. 그야말로 일석 오조다.



즐거움 넷.

뭐니 뭐니 해도 사람 사는 맛은 함께 어우러짐 아니겠는가

함께 하면 많은 것을 이루어낸다.

가까이 지내는 교회의 여인들이 의기를 투합해 노인들은 위한

반찬을 만들고 찹쌀 고추장을 담았다.

이번 반찬 나눔 메뉴는 잡채와 생선전, 동그랑땡이다.

도시락 통에 담아 동네의 80세 이상 노인들께 전달해 드렸다.

우리의 작은 정성이 통했는지 어떤 분은 울먹이기까지 하셨다고.

"에고...며느리도 이렇게 못하는데  고마워서 어쩌나."


고추장은 서울에 있는 쿠키 님이 교회에 알려 단체로 주문을 해오셨다.

찹쌀 조청을 고아 만드느라 꼬박 이틀이 걸렸다

식혜를 삭히고 커다란 솥에 불을 지펴 밤이 깊도록 조청을 달였다

불꽃 앞에서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면서

어둔 밤 개구리 합창 속에서 아궁이 불꽃은 일렁이고 밤늦도록 우리의 얘기도 조근조근 이어졌다.

은근히 졸여지는 조청처럼 따사롭고 감미로운 시간이었다.

다음 날, 졸여진 조청이 식는 동안 비빔밤으로 점심을 먹었다

취나물 두룹 산더덕 참나물 상추 등을 넣고 고추장과 들기름으로 쓱쓱 비빈 즉석 양푼 비빔밥은 

이맘때 산촌의 풍미가 다 들어있다.

배고픈 김에 허겁지겁 폭풍 흡입이디.

한 양푼의 밥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 역시 양푼 비빔밥은 힘께 먹어야 제 맛이다.


고추장 버무리는 일은 힘이 필요한데

때마침 마당쇠로 등장한 힘 좋은 정 집사님 덕분에 거뜬히 해결되었다.

드디어 그 많은 고추장이 완성되 서울로 분당으로 원주로 인천으로 보내졌다.

고추장을 받은 이들로부터 맛있다는, 혹은 내년에도 부탁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뜻밖에 베뢰아 님은 비오는 날 먼 길을 달려와 구두 상자를 놓고 가기도 했다

동네 여인들이 발에 맞는  예쁜 구두를 골라 신으며 즐거워했다.


이렇게 사랑이 흐른다.

진안과 서울과 우간다로... 그리고 그 길은 사람과 사람 사이로 나 있다.


<잇다 원고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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