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物) 005- 커터칼

내 책상 위 도기로 만들어진 둥그런 연필꽂이에 여러 사물이 꽂혀 있다.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사인펜, 나무젓가락, 가위, 송곳, 돋보기 등등. 앞으로 설명할 기회가 올 것이다. 오늘은 그중의 하나인 커터칼이다. 값도 얼마 나가지 않는다. 칼날을 잘라서 사용하기에 한번 칼날을 바꾸면 오래 간다. 나는 주로 연필을 깎거나 종이를 자를 때 사용한다. 내가 알기로 커터칼은 집이나 건물을 리모델링할 때, 예컨대 창호 작업이나 도배 작업 등에서 쓰임새가 높다.

저 칼의 재질은 철과 플라스틱이다. 인간이 철을 사용한 지는 제법 되었으나 플라스틱이 나온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옛날에는 칼 손잡이가 대개 나무였다. 칼과 플라스틱 조합보다는 칼과 나무의 조합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 나무로만은 저런 커터칼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칼의 발명은 인간을 다른 포식자들과의 경쟁에서 탁월한 위치를 점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칼보다는 불의 발견이 더 중요했을지는 모르나 칼도 그에 못지않다. 칼은 발명이고, 불은 발견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모리아 산으로 갈 때 준비한 물품이 불과 칼이었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칼은 동물을 죽이고 요리하는 도구만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도구다. 아래는 카라바조(1571.9.29.~1610.7.18.)가 구약 외경 「유디트」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적군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술 취하게 만들어 살해하는 장면이다. 홀로페르네스가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힘만으로 싸운다면 게임이 안 되겠지만 칼이 있어서 간단히 제압할 수 있었다. 유디트의 표정이 많은 걸 암시한다.

예술가의 손에 들리면 칼은 창작의 도구다. 유대인들은 칼로 할례를 베풀었다. 『장자』에는 평생 칼을 한 번도 갈지 않고 소를 잡은 백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 곁에서 늘 나의 친구처럼 존재하는 저 작은 칼도 인류의 장구한 역사를 증언한다. 인류만이 칼을 쓰는 존재라는 사실을 단단히 기억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