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에 대해
그대도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을 거요. 오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판사들께서 사형제를 5대4의 비율로 합헌이라고 결정했다오. 합헌 의견이 5명이고, 위헌 의견이 4명이라는 거요.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죽이는 일이 겨우 한 사람의 판사 숫자에 따라서 좌우된다는 게 좀 우습지 않소? 합헌이라고 결정한 판사 중의 한 사람이 위헌으로 돌아섰다면 이 판결은 반대로 나왔을 거 아니오. 혹시 합헌 의견을 낸 판사들 중에서 최근에 개인적으로 기분 나쁜 일을 당해서 평상심을 잃고 한쪽으로 기운 의견을 낸 사람은 없을까 모르겠소. 이런 내 말이 좀 시니컬하게 들리더라도 용서하시구려. 헌법 재판소의 이번 판결이 시대를 역행하는 것 같아서 내 마음이 편치 않기에 하는 말이오.
나는 여기서 사형제의 시시비비에 관해서는 이미 잘 알려졌기에 거기에 대해서 더 보탤 말은 없소이다. 사형제가 범죄율을 줄이는데 별로 효율적이지 못한다거나, 만에 하나 오심이 났을 경우에 이를 돌이킬 수 없다거나, 또는 독재 체제에서 사형제가 오용될 개연성이 많다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짚을 필요가 어디 있겠소. 성서를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한 마디만 하리다.
사람은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인위적으로 파괴할 권한이 없소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생명 창조자가 아니라 피조물이기 때문이오. 극악무도한 살인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살인행위와 다를 게 없소.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그 어떤 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이오. 그가 환경에 의해서든, 아니면 충동적이었든, 또는 악한 영에 사로잡혔든, 그 어떤 이유에서거나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악한 일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도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소. 피조물인 주제에 우리가 그를 어떻게 줄일 수 있겠소. 오늘 전쟁이나 안락사, 또는 특별한 경우의 낙태 문제까지 들어가지 맙시다. 그대여, 불편한 하루였지만 이제 편안하게 하루를 마감하십시다. 오늘 이곳에는 하루 종일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소. (2010년 2월25일)
목사님, 오랜만에 흔적 남깁니다.
위헌으로 결정되기 위해서는 1표가 아니라 2표가 모자랍니다.
6명 이상이 위헌이라고 해야 위헌이 되거든요.
위헌의견이 5명이고, 합헌의견이 4명이라 하더라도 위헌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합헌 주문을 내지는 않고 위헌불선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갈 길은 아직 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저도 조금 부담스러운 재판을 마쳤습니다.
언론에서 크게 다룰지도 모르겠다고 잔뜩 긴장했는데,
사형제 선고 때문에 잘 묻혀서 지나갔습니다.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격받는 것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될수록 피하고 싶으니까요.
법조인들중에도 최근에는 사형제 존치론자들이 조금씩 많아지는 추세인 듯합니다.
언제부턴가 그 경향은 점점 힘을 얻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고 소리높여 말하는 사람들 중에
스스로의 죄를 민감히 돌아보는 이는 드문 듯합니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조심히 돌아보는 이도 드문 듯합니다.
점점 안다는 사람은 많아지지만, 모르겠다는 사람은 사라져갑니다.
정말 우리의 앎은 진보해 가는 걸까요.
세째 줄 마지막 부근에
"돌아섰다는"--> 돌아섰다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