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Views 3212 Votes 3 2010.03.16 23:13:53

無所有

 

 

그대는 법정의 대표 수필집 <無所有>를 읽어보았을 것이오. 그가 마흔 살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쓴 수필을 표제로 삼은 책이외다. 그 수필은 법정이 지인에게서 얻은 난초에 얽힌 일화를 담담하게 풀어쓴 이야기요. 난초를 정성스레 키우다보니 결국 거기에 집착하게 되어, 친구에게 주었다고 하더이다. 그의 무소유 사상은 간디의 영향이 큰 것 같소이다. 그 수필의 마지막 단락에서 그는 간디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소.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1971년 3월, 현대문학)

 

 

어떤 이들은 법정의 이런 무소유 사상을 냉소적으로 봅디다. 출가자에게만 가능한 논리라는 말이오. 그런 논리는 이 세상에서 온갖 이해관계에 얽혀 사는 사람들에게 단지 관념에 불과하고, 따라서 언어유희이자 폭력이라는 거요. 또 어떤 이들은 이 무소유 사상을 패배주의로 몰아붙이기도 할 거요. 특히 기독교 승리주의 신앙에 몰두해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비칠 것으로 보이오.

그대도 알다시피 이 세상에서 무소유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법정이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오. 그는 삶의 본질을,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뿐이외다. 그것은 누가 봐도 확실히 드러나는 진실이외다. 사람은 누구나 빈 몸뚱이로 와서 빈 몸뚱이로 돌아가오. 그것을 일종의 화두로 삼아 삶을 내면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 아니겠소.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무소유 사상을 낮춰본다는 것은 문맥을 전혀 모른다는 뜻이오.

소유가 집착을 불러오고, 집착이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는 무소유 개념은 법정만이 하는 말이 아니오. 그 이전에도 얼마나 많은 스승들이 했는지 모르오. 성서도 곳곳에서 그런 말을 하고 있소. 법정으로 인해서 그 용어가 크게 부각된 이유가 그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그의 삶이 무소유를 실천했기 때문이오? 그렇게 산 사람은 그이 외에도 많소. 그의 글이 명문이기 때문이오? 그는 별로 뛰어난 글쟁이는 아니오. 문체만으로 볼 때는 아주 평범하오. 그가 위대한 사상가이기 때문이오? 아니오.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뛰어난 사상가는 아니오. 그런데도 그가 불교계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다는 사실은 그만이 풍기고 있는 어떤 정신적인 권위가 있기 때문일 거요. 나는 그를 가까이 대해보지 않았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한 것은 모르겠소.

어쨌든 지금 한국 개신교회는 법정의 무소유 사상 앞에서 다시 한 번 더 뭔가 딱한 처지가 되었소. 소유로부터 자유로웠던 그의 삶이 불교의 장점으로 드러날수록 개신교회의 소유 지향적 성격이 크게 부각된다는 말이오. 작년에 세상을 뜬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도 비슷하오. 그에게는 번듯한 자식도 없고, 집도 없었소. 수도승과 비슷하게 살았소. 그의 장례 후에 서울을 중심으로 가톨릭교회 신자들이 크게 늘었다고 하오. 개신교 지도자의 장례를 기점으로 기독교 신자가 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 바로 오늘 한국개신교회의 현주소가 아닐까 하오.(2010년 3월16일, 화요일, 빛, 바람, 찬 공기, 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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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늘

2010.03.17 09:29:20

대중들이 그만큼 뭔가을 원하고, 실천적인 분들에 대한 동경이 아닐런지요.

사회나 종교계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니 실망만 큽니다.

언제가는 이러한 분들이 많이 계셔서, 대중에게 신뢰와 힘이 되주시기를 고대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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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

2010.03.17 10:37:47

어제 직장의 한 아주머니께서 우리교회 나오라고 주보를 주셨는데

십일조헌금 감사헌금 한 사람들의 명단이 적힌 걸 보고

 

그자리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래도 걱정 마십시오 찿아보겠습니다

서산에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진짜 교회 하나 없을라구요

 

진 예수만

2010.03.17 13:27:16

사연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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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

2010.03.19 10:59:05

다른 아주머니께서 절 전도하겠다고 선전포고 하셨는데

며칠 후 성지순례에서 돌아오시는 자기교회 목사님이

윤석전 목사님과 장경동 목사님 밑에 계시던 분이라고 자랑을.......

진 예수만

2010.03.19 15:14:02

주제넘은 조언이 될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실제 출석하실 교회를 정하기 전까지, 우선 서울 장충동의 경동교회(박종화 목사 담임) 

같은 곳의 예배 동영상을 활용하셔도 도움이 되실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곳이 최고라는 식의 편협한 뜻의 얘기는 아니며,

단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하나의 '괜찮은 정보'로써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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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

2010.03.20 10:52:50

감사합니다 ^^   경동교회는 예배를 생중계 하나봐요?

내일 참여해 봐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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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

2010.03.17 12:34:33

얼마 전에 어떤 신자와 '소유와 존재' 에 대화를 나누는데

그것은 책 이야기고 실제로는 소유(그분 표현으로 다스리고)하고 살아야 한다는군요.

목회는 자고로 서울의 변 아무개, 윤 아무개 목사처럼 해야 한다는데...

개신교회가 아무리 열성적으로 축복 축복 외치며 전도를 하지만

신자 수는 정체되고

김수환 추기경, 성철 스님, 법정 스님의 죽음으로 언론매체에서는 앞 다투어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공짜로 포교를 해 주네요.

또, 이해인 수녀님의 죽음은 어떤 방향을 불러올지....

종말론적 교회 지평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한 것일까요?

안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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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2010.03.17 17:04:02

목사님, 글 잘 읽었습니다.

 

딱한 처지를 애써 감추려고 하는 모습이 제 모습 같아서 더 안타깝네요.

이렇게 한 꺼풀씩 벗겨 내도 그것을 모르는 것이 우리 모습이네요.

사랑채에서 첫날처럼님이 쓴, 설교 시간에  법정에 관한 이야기를 제멋대로 했다는

목사의 이야기를 읽고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혹시 홈페이지에 '대성전 투시도'를 대문짝만하게 붙여놓은 그 교회인가 해서요.

 

오늘은 눈 내리는 3월입니다.

갑자기 하얗게 덮인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내일 아침에 운전하느라면 상당히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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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2010.03.17 17:30:15

법정 스님의

 '요즘 절이나 교회나 신앙을 가진 곳에서 분수에 넘치게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법문을 이야기 하고 나서 끝에 왜 돈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느냐..'

라는 글을 대하면서

종교계의 돈에 대한 욕심으로 일어나는 작금의 상황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법정 스님의 타계로 불교는 그 모든 잘못을 그 분 밑에 숨기면 되는데

개신교에는 숨을 만한 큰 분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잘된 것 같기도 합니다.

남의 큰 옷자락에 숨지 못하여 벌거벗은 몸을 가리지 못해

백주에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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