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은 토요일이 가장 피곤한 날이오. 주일보다 더 그렇소. 그날 주로 설교를 준비하기 때문이오. 요즘 나는 금요일에 설교를 작성하는 탓에 토요일에 좀 여유가 있게 지내오. 토요일에 넉넉한 기분으로 주일에 할 설교를 다시 검토하기도 하고, 성경을 읽거나 다른 책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밀린 원고를 쓰기도 하오.
지난 토요일(9일)에 ‘기독교사상’에 보낼 원고를 쓰기 위해서 아침을 먹은 뒤 영천 농가로 향했소. 마티즈를 끌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유실수 묘목’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소. 차를 급하게 세워 그 묘묙원 안으로 들어가서 둘러보았소. 나무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는 나는 무작정 주인에게 부탁했소. 정원에 심을만한 묘목을 10그루만 추천해 달라고 말이오. 물론 그 집은 일반 묘목이 아니라 유실수 묘목만 팔고 있었소. 주인아주머니는 한 품목에 2개씩 골라서 다섯 품목을 묶어 주셨소. 매실, 살구, 일반 감나무, 거봉 감나무, 다른 한 가지는 기억이 나지 않소. 나중에 크면 확인해야겠소.
차 뒷좌석에 싣고 영천 원당리 농가에 가서 오전 나절에 열 그루의 묘목을 혼자서 심었소. 그런데 문제는 땅이오. 흙이 문제요. 나무를 심기에는 땅이 너무 척박했소. 돌과 진흙으로 되어 있소. 앞으로 이 땅을 가꿀 일이 걱정이오. 처음 터를 닦을 때 높은 쪽 언덕을 깎아냈고, 낮은 쪽은 옹벽을 친 뒤에 언덕을 깎을 때 나온 흙으로 전체를 평평하게 만들었소이다. 그래서 바닥에 깔린 흙이 전체적으로 생흙이 된 거요. 그 지역은 원래 돌이 많소. 산을 조금만 파내도 다 돌이오. 돌도 단단한 게 아니라 조금만 힘을 가하면 허물어지는 돌이오. 쓸모가 없다는 뜻이오. 그런 땅에 열 개의 구덩이를 파고 묘목을 심는다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오.
생흙이 말은 좋소. 살아있는 흙이라는 뜻이니 말이오. 그런데 식물에게는 그것이 죽은 흙이오. 재미있지 않소? 생흙을, 생땅을 죽은 땅이라고 봐야하니 말이오. 식물들에게 도움이 되는 살아있는 흙이 되려면 오히려 죽어야 한다오. 그것을 부식토라고 하오. 거기서만 식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소. 영적인 차원에서 부식토는 어떤 것이겠소? 실제로 묘목을 심는 이야기는 하나도 못했소. 내일 하리다.
축협이나 농협에 가면
20kg 비닐포대 거름을 판매합니다.
나무 주위에 뿌려주며 한결 땅이 좋아지고 나무도 잘 자랄 겁니다.
정현종 시인의
<한숟가락 흙속에> 라는 시가 있습니다.
한숟가락 흙속에
미생물이 1억 5천만마리네
왜 아니겠는가?
흙한술
삼천대천 세계가 거기인 것을
내가 더러 개미도 밝으며
흙길를 갈때
기묘하게 발바닥에 밀려오는
탄력을 싣은 수십억마리가 밀려 올리는
바로 그 힘이었다는 것을...
한숟가락 미생물의 힘으로 척박한 땅에서도
나무들이 잘 자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