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6)
오늘 우리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데 길들여졌다.
이런 게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나
그 강도가 점점 심해지는 건 분명하다.
물건을 사는 경우에도 한 푼이라도 아낀다.
재정적으로 손해를 보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힘들어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도
따지고 보면 연봉의 차이에 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 못지않게 연봉을 받을 수 있다면
이런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정부는 돈으로 대학교를 주무른다.
대학교는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조금이라도 더 타내려고
온갖 비위를 다 맞추고 있다.
비위를 맞추는 것만이 아니라 부정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 세상이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손해를 보지 말아야겠지만
어느 정도 살만한 사람들은 손해를 봐도 된다.
나도 어느 정도 살만한 사람에 속하기에
웬만하면 손해를 봐도 그냥 넘어가려고 한다.
그래봤자 죽을 때 쯤 되면
손해도 안 보고, 이익도 안 보는 결과가 되지 않겠는가.
도사처럼 말한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거다.
허세라면 허세를, 여유라면 여유를 보일 수 있는 것도
경제적으로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
경제적으로 고달프면 아등바등 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여유도 다 상대적이다.
그런 여유가 있다고 해서 다 손해를 편히 감수하는 건 아니다.
어쨌든지 오늘 우리는 총체적으로 돈에 종속적으로 묶여 사는 거는 분명하다.
헌금은 이런 시대정신에 대한 항거다.
돈이 인격보다 더 중요하게 간주되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아무런 보상에 대한 기대도 없이 돈을 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경제 논리를 뛰어넘으려는 노력 없이
우리가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희망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마지막 심판 때 그분은 우리에게 이렇게 물을지 모르겠다.
당신은 살아 있는 동안에 자기와 자기 가족을 넘어서
돈을 얼마나 사용했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