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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성경에 따르면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불순종과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며, 죽음이 두려운 것은 생명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죽음이 사탄의 승리이고 불의의 승리이고 하나님과의 단절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죽음은 우리가 담담하게 순응해야 할 삶의 과정이 아니라 우리가 극복하고 이겨야 할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까? 네, 정답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는 죽음이 극복 되었지만 예수님 이전 사람들에게 죽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네, 예수그리스도의 운명과 그 사건이 갖는 우주론적인 의미가 뭐냐 하는 거하고 연관되는 데요. 예수를 중심으로 그 전과 후의 역사를 어떻게 우리가 구원론적 역사라 할까?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 앞서 정답으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한마디 코멘트만 하고 넘어 가지요. 정답을 말씀 하셨는데, 제가 앞서 이야기 한 것은 그런 교리문답적인 정답 그 외 일을 다 아시고 설명을 해 주셨을 텐데 그런 쪽보다도 우리의 공부의 방향인 인문학적인 그러한 차원으로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생명형식이 파괴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더 근원적인 생명으로 돌아가는 관점이 창조론적인 차원에서 있다고 하는 거지요. 그 창조론적인 관점하고 지금 말씀하신 것은 기독론적인 그러한 관점 이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에서 이야기 하니까요. 서로 보완적인, 같이 어우러져야 될 문제구요. 여기서 성령론적으로 좀 생각한다면, 성령은 생명의 영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살아가는 삶도 그렇고 죽음 이후의 삶도 그렇고 성령 안에서 생명으로 인도 된다 대충 그렇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예, 두 번째 질문을 말씀 드려야 되겠네요. 예수님이 죽음과 특별히 부활 통해서 죽음을 극복하셨다고 하는 사실에 우리 기독교인들의 오늘 삶과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까지 다 연결 되어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고 그대로 믿고 있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있었던 사람들의 운명, 예수를 몰랐던 사람들에게도 예수 부활의 죽음을 극복하는 능력이 유효 한가 아닌가 그런 질문 같습니다. 제 표현이 맞을까요?
네.. 일단 정답을 말씀 드린다면 당연히 유효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알았던 몰랐던 예수님의 구원능력은 아주 보편적인 거예요. 우주론적인 거예요. 예수를 몰라도 구원 받을 가능성을 닫아 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 기독교 교회 다니는 사람들만 싹 모아서 요런 사람들만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 하시고 하신 게 아닙니다. 아주 우주론적인 그러한 사건이었어요. 이걸 전제한다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이나 그리고 예수 이전의 사람이나 이후의 사람이나 조금 더 나아가서는 파리 한 마리까지 모기 한 마리까지 예, 우주 전체에 미치는 빛이니까요. 그 구원의 가능성을 닫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느냐는 것은 우리 인식을 뛰어 넘는 거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비밀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제가 앞서 설교에서도 비밀이라고 한 얘기가 들어 있지요? 비밀과 확연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과의 이 변증법적인 관계, 이 긴장관계를 늘 염두에 둬야 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하세요. 드러내세요. 예수그리스도의 사건들, 또 평화와 정의의 사건들, 우리에게 어떤 사랑의 능력과 평화의 영이 임하는 이런 것들이 계시, 성서나 그런 것들을 통해서 드러나지만 늘 은폐의 방식이라고 하는 것, 비밀의 방식이라고 하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이건 확 드러난 방식이 아니거든요? 예수님의 부활이 그 전과 그 후의 역사에 어떻게 실질적으로 구원의 효력을 나타내는 건지에 대해서는 이거는 비밀입니다. 그건 약속 일 뿐이지요? 희망이구요. 사도바울처럼 우리는 지금 거울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어요. 그때가 되어야 얼굴을 맞대어 보듯이 알게 됩니다. 인간이 누군지 그때야 알게 되지요. 지금은 인간이 누군지 몰라요. 나의 personality가 그때가 되어야 드러납니다. 여러분 스스로 모르시지요? 그게 다 신비에 있습니다. 다중적이고, 그건 현대 심리학에서도 얘기 합니다. personality가 뭔지 아직 드러나지 않았어요. 모든 것들의 비밀들이, 그러니까 기독교는 모두 종말론적이라고 얘기 하는 거예요.
아, 그럼 모든 것을 미래로 미뤄놓고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뭐 그런 상태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걸 이제 뚫어 보아야 되는 거지요. 역사에, 어떻게 하나님의 계시가, 구원통치가 임하냐 하는 것을 우리가 깨어 있는 영성으로 봐야지요. 그게 기독교 역사입니다. 해석하고 있어요. 더 줄여서 정답을 말씀 드린다면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음부에까지 내려가서 죽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베드로서와 오리지널 사도신경에 나와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서, 교회안과 밖으로 구분해서가 아니라 우주 전체 미치는 빛이다 그게 임하기를 우리가 기대하고 기도하고 찬양 한다 기독교인의 신앙은 구원 이기주의는 결코 아닙니다. 이걸 빨리 벗어나셔야 되지요. 그럼 예수 믿지 않아도 괜찮냐 그런 얘기를 하면 참 곤란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사람은 그런 말 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내가 알고 있는 그 안에 독점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배타적인 구원능력에 일임하는 거지요. 모든 이들의 구원 그걸 우리가 희망해야 되지 않겠어요? 예, 보편적이면서 기독교적인 특성들을 우리가 유지해야 되겠지요. 그런 긴장감이 필요합니다.
라라님의 수고로 질답의 글을 대하게 되는군요.
완전 감사드립니다.
목사님의 대답...
'이것이 다이아몬드다' 라고 하지 않으시고
다이아몬드 원석에서 다이아몬드만 얻기까지
계속되는 커팅의 대답을 하시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