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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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무엇인가? 신앙은 무엇인가? 다소 막연하고 막막한 언어의 관념성을 나열하고 또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변증하면서 강좌는 시작되었습니다.
믿음은 증표, 지표로서 표현되기 쉽다고 합니다. 즉 종교적 열심이나 열정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위와 현상에 그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믿음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즉 믿음은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내적 형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정의는 곧 사실에 대한 지적 동의를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노아의 방주
등의 사건을 fact로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가 곧 믿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지성은 그렇게 나이브 하지
않다는 것에서 긴장감이 형성됩니다. 즉 우리의 이성은 회의라는 필터로서 기적을 검증하고자 하고 반대 급부에서
교리적으로 의심없이 믿어야 된다는 집단 준거 안에서 갈등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대상은 교리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이란 인격, 존재에 대한 신뢰이며 실존적 결단이며 모험을 감수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물론
신앙적 대상의 관념은 신앙을 이루는 전제가 되긴 합니다. 그러나 그 관념이 결코 신앙의 모든 것을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성서는 고백의 언어로 쓰여졌습니다. 그 고백은 진실성, 실존성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이 실존, 상황, 특수, 고백의 언어는
교리적 즉 사실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런 변화의 이유는 바로 원시 기독교가 그리스철학과 결합된 이후 부터입니다.
신앙을 명제화시킨 주지주의를 통해서 신앙의 고백이 객관적 진리로서 표현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독교가 과학가 만나게 되면서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동안 올곧게 유지했던 목적론적 세계관이
해체 됩니다. 즉 세상은 창조주의 합목적성에 의한 시뮬레이션이라는 패러다임이 해체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탈성화
탈주술화가 시작되면서 공리성, 인간중심, 개인중심, 자유주의를 열망하게 됩니다. 이런 사조들은 결국 현대인에게
정신적 위기를 가져다 주었고 쾌락 자체에 함몰되는 쾌락만능주의에 빠져들게 됩니다.
(대충 뭐 여기까지 정리한거고 다음 주와 그 다음 주 내용을 소개하면 )
기독교와 동양종교의 만남
그리고 기독교가 직면해야 할 문제를 소개하셨습니다.
1. 과학적 진리
2, 인간의 주체성
3. 타종교
4. 자연
ps .바르트에 대한 길박사님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기독교가 과학을 만난 이후에서 바르트는 기독교와 과학
관계를 변증했는데 그 과정을 거추장스럽고 궁색한 것으로 간주하시더군요 또한 바르트를 반동신학자, 순환론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신학자, 이런 이해를 전제로 매도 한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NBA의 그 분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