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잃어버린 예수

Views 1321 Votes 0 2012.05.24 20: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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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참 오랫만에 다비아에 들어 왔습니다..

제가  새로운 일을 배우느라 다비아에 한동안  뜸하였습니다.

그간에 틈틈히 책을 몇권 보았는데

제가 읽은 책<잃어버린 예수>중에 한번 새겨 볼만한 글귀가 있어 

몇자 올려 봅니다.

 

    

바울은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사람이다.

예수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데 일등 공인인가 하면

예수의 가르침을 세상에 바로 알리는데 일등 반인(叛人)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의 기독교가 예수의 이름을 빌린 바울의 교의(敎義)이지

예수의 정교(正敎)가 아니라는 데 있다.

기독교에 있어서 이것을 바로 잡는 일보다 더 긴급하고 중대한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 일부 신학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만시지탄이나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오늘날 크리스천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바울의 주장을 좇아

“우리 주 예수의 이름만 부르는(고전1:2) 것만으로 만족하겠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하루를 믿어도 예수의 가르침을 바로 알아보자는 생각이 있다면

정신을 차리고 최면에서 깨어야 한다.

 

자칭 사도 바울로는 누구인가?

바울은 소아시아 동쪽에 자리 잡은 항구 도시 타르수스(다르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나 로마 시민권을 가졌지만 유대인의 피를 지닌 디아스포라였다.

바울은 살아있는 예수를 보지 못했다.

그는 예수가 죽임을 당한 뒤에야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와서 당시 유명한 율법학자

가말리엘에게 율법을 배웠다.

 

바울은 성격이 과격한 근본주의자라 예수의 제자들을 박해하는데 주동이 되었다.

바울이 주동인 유대교인들의 잔혹한 박해를 피하여 예수를 좇는 이들(나자레언이라 불렸다)은

사마리아와 팔레스타인으로 도피 하였다.

특히 다메섹과 안디옥으로 많이 갔다.

바울은 그들을 체포하고자 다메섹까지 쫓아갔다.

 

바울의 대 전환은 다메섹 성 박에서 일어났다.

나자레언 들을 체포하러 다메섹까지 온 바울은

다메섹 성 밖에서 갑자기 쓰러지면서 시력을 잃은 것이다.

아마 급성 결막염에 걸렸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사람의 질병을 하나님의 노여움에서 오는 징벌로 알았다.

유대교 근본주의자인 바울은 더욱 그러하였을 것이다.

이제까지 나자레언 들을 박해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줄 알고 있었는데

시력을 잃게 되자 하나님께서 자기편이 아니라 예수의 편인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고자 예수에 대한 적의를 버리고 선의로 마음을 바꾼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반동형성(反動形成)의 전형적인 예이다.

 

유대인들은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좋은데

아직 정신이 어려서 야훼 하나님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겼다.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아버지를 두려워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유대교인들은 하나님을 보면 죽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예수가 아버지는 내 품속에,

나는 아버지 속에 있다고 한것이다.

물론 바울도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유치신관에 머물렀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성숙한 신관을 지녔다.

바울이 가장 두려워 한것은 하나님의 노여움 이었다.

그런데 실명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노여움이 이단인 예수에게 있지 않고

그들을 박해한 바울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하나님 아들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아들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였을까?

사람들을 원죄에서 구하기 위해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바울의 대속교리가 이루어진 것이다.

바울의 교리는 짐승 대신 예수를 제물로 한 유대 교리의 원용 일뿐

예수의 가르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공포에 사로잡힌 이는 무력해져 스스로 그 두려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힘 있는 다른 존재의 구원을 필요로 한다.

강력한 힘을 지닌 이가 자신을 공포에서 구원해 주기를 바란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달린 심리적 배경을 우리도 능히 헤아려 볼 수 있다.

바울의 탄식을 들어보면 이 사실이 그대로 헤아려 진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해줄 것입니까?

고맙게도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로마서7:24~25)

 

바울에게는 예수의 가르침이 필요치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힘 있는 존재이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바울의 편지 속에서는 예수의 가르침을 일언반구도 찾아볼 수 없다.

바울은 자신의 도그마(교리)에 대한 케리그마 (교리 선언) 뿐이다.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에는 무식하였다.

바울은 예수에게 가르침을 받은 일이 없고 예수의 말씀을 읽은 일도 없었다.

그때는 신약복음서가 쓰이지도 않은 때였다.

그렇다면 예수의 가르침을 배울수 있는 길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배우는 길뿐이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생각해낸 도그마로 자신만만하여 예수의 제자들에게 나아가

배울 생각이 없었다.

필요한 것은 그들이 바울을 사도(예수의 제자)로 인정해 주는 것이었다.

바울은 스스로 사도라고 자칭 하였다.(로마서1:1)

이것은 상식을 벗어난 자신감이요 ,용기이다.

바울은 오히려 예수의 제자들인 진짜 사도들을 멸시하였다.

바울의 말에서 그것을 읽을수 있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삼 년 후에 나는 베드로를 만나려고 에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와 함께

보름 동안을 지냈습니다.

그때 주님의 동생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는 만나지 않았습니다(갈1:17~19)

 

예수의 제자들이 바울을 좋게 생각 하였다면 여러 사도들이 멀리서 온 바울을 반겼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아무도 찾아 오지 않았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그리스도 교회와는 어느 면에서 대립관계에 있었다.

바울은 자기 자신만의 특별한 가르침을 펼쳤다.

그것은 자신의 복음이었다.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예수에 의한 구원,

곧 예수의 대속이 기독교의 중심 문제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리스도교의 제2의 개조(開祖)로 생각 되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신약전서만 보아도 이제까지 전승되어온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한눈에 읽을수 있다.

신약전서의 맨 앞에는 마태복음서를 비롯하여 예수의 언행을 적어 놓은 4복음서가

실려 있다.

그런데 그 뒤로 사도행전 부터는 완전히 바울 일색이다.

예수에게 수제자로 인정받은 이는 베드로이다.

베드로조차 사도행전 첫머리에 약간 비추어질 뿐이다.

그 뒤로는 온전히 바울의 이야기뿐이다.

이름만 사도행전이지 사실은 바울 행전인 것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을 편집할 때 그리스도교의 주도권이 예수의 제자들이 아닌

바울의 제자들 쪽으로 온전히 넘어간 것을 웅변해 주는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전승하여온 예수의 직제자들은 유대교의 사울(바울)에게 박해를 받고

나중에는 그리스도교 안에 들어온 바울의 도전을 받아 지리멸렬 해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은 그 어떤 사람도 없애지 못한다.

예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엄격하게 말하면 바울의 그리스도교만 남아있지

예수의 그리스도교는 없어 졌다.

그래서 예수의 그리스도교를 히브리 그리스도교로,

바울의 그리스도교를 헬라 그리스도교로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예수의 영성신앙이 바울의 대속신앙에 결정적으로 밀리기 시작한 것은

기원후325년에 열린 니케아 공의회 이후이다.

 

바울은 몸의 영생을 갈구하는 육체부활 신앙이다.

또 예수가 제물이 됨으로써 원죄가 대속 되었다는 대속신앙이다.

끝으로 바울은 교회 지상주의라 할 정도로 교회에 집착하는 교회신앙이다.

그러나 예수의 영성 신앙은 자아가 죽음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인 얼나로 부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인들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예수의 영성신앙이 쇠락하고 바울의 대속신앙이 득세하게 된 것이다.

 

예수는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었다

 

“누구든지 거듭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다(요한복음3:3)

제나(自我)는 어버이가 낳아준 죽는 몸나 이다.

성령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얼나를 받아야 영원한 생명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도 자신이 하나님이 주신 성령으로 났다고 하였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지만 나는 위에서 왔다(요한복음8:23)”

예수의 몸은 어버이에게서 나서는 죽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난 얼나는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얼나는 깨닫는 것이지 몸나 처럼 나서 죽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어떻게 두 번 태어 날수 있습니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 갈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라(요한복음3:5~7)

 

바울의 대속신앙이 아닌 예수의 영성신앙을 복원하는 것이

예수를 사랑하는 크리스천들의 사명이요 의무일 것이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 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하라, 배부르게 하라, 따뜻하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요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드니라

아 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느니라“(야고보서2:14~22)

 

우리는 자신을 버리기 전에는 우리 가슴속에 있는 악의 흔적을 정복 할 수 없다.

하나님은 가치 있는 하나의 자유를 주는 대가로 우리에게 완전한 자기 포기를 요구하신다.

우리가 스스로 제나(自我)를 버리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참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다시 태어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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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그늘

2012.05.25 23:36:41
*.212.139.102

저별과 달님. 참 오랜만이에요.

새롭게 일을 하시나봐요?

오랜만에 뵈어 댓글달아요. ^^

삼송

2012.05.26 05:38:00
*.176.158.31

건강하셨습니까?

책내용이 조금 이상한 것 같습니다.

책저자와 내용을 살펴보았는데요 일반적인 성경해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약 정경에 바울 서신이 대략 13권정도가 들어 있는 것도

이유가 있지요 바울이 예수님의 영성에 집중했기 때문일 겁니다.

위의 책 내용은 조금 비약이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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