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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노인학교"에 나오시는 배덕임 어르신이다. 

팔순을 코앞에 둔 연세에도 소녀같은 여린 감성을 지니셨다.

 학교에 오실 때는 분도 바르고 늘 곱게 단장을 하신다. 

엊그제는 스카프에 블로치로 살짝 멋을 내셨다.

여름에는 시집올 때 해오셨다는 하얀 모시적삼을 입고 오신 적도 있다. 

말소리도 몸가짐도 얌전하고 조신하신 이 할머니에게서 나는 아직도 여인의 향내를 느끼곤 한다.


이번 주에는 들국화와 갈대를 꺽어오셔서 그림을 그리셨다.  

그림 소재까지 눈 앞에 있으니 더 잘 그려지나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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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릴 때 보면 이 어르신께서 얼마나 그리기를 좋아하시는지를 알 수 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오셔서 어찌나 집중해서 그리시는지.. 

아드님도 미술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전시회를 열 정도다.

어머니의 피를 물려 받았음이 분명하다.


수업이 끝난 후 배덕임 어르신이 그리고 난 꽃과 갈대를 들고 살포시 포즈를 취하신다. 

그 모습이 이뻐서 얼른 카메라에 담았다.

수줍은 듯 옅은 미소가 들국화를 닮았다.

곱게 나이드신 것 같아 보이는데도 살아오신 삶은 여느 어르신들 못지않게 녹녹찮다.


"어렸을 적엔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들 했어.

우리집에 오면 튀밥도 먹고, 깐밥도 먹을 수 있고 그라니깐.

친정이 먹을 게 궁하진 않았어.

 근댜 농사가 많아서 농사철이면 일꾼들 밥을 해대는 게 되게 고되더라구.

그게 지겨워설랑 시집을 갔지. 일을 안하고 잡파서.

시믈 둘에 혼인을 했는디 

부잣집은 일이 많을 거 같아서 가난한 집으로 가고 싶었어.

일이 무서바서. 없는 집은 농사일도 없겠다 싶었지.

선이 들어왔는디 핵교를 졸업하고 부산서 병원에 댕기는 총각이랴.

 만내보니 인물이 훠언허니 좋더라구.

우리집 양반이 젊을 땐 뽀야나니 얼굴이 이뻤어.

험한 일을 안해서 손두 월매나 보드랍고 고운지.

나는 시골에서 끄실려 시커먼데... 근께 위축이 되더라구.

친정부모님이 없이 사는 집이라구 딴 디로 틀려고 허길레

내가 그럈지, 아, 아무리 없다케도 밥 못 묵어 굶어 죽기야 허긋냐고..! 글루 갈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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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학교 박물관에 비치된 배덕임 할머님의 혼례사진.

할머니에게도 이런 꽂다운 시절이~~)



신랑이 좋았냐구? 맨날 뚜디려 맞구 살았어.

병원 관두고 고향에 들어와 살면서 잘 안 풀리고 허니께

 술을 많이 먹었지. 

술만 묵으면 뚜디리 쌌는디 맞고 나면 고만 딱 죽고만 싶더라꼬. 

그랴 죽을 생각만 혔어. 우찌 죽을까..허고. 

시방 생각허믄 우째 도맹을 갈 생각을 못허구 죽을라꼬만 혔는가 몰러.


사남매 뒀어. 적게 낳지. 보통 대여섯씩 날 때였어. 

나이 쉰 넷에 쓰러졌어. 우리집 양반이.

십오년을 한결같이 병수발을 했지. 

맨날 얼굴도 요래 비벼주고 손발 주무르고...그라면 좀 나슬까 싶어서.

그러다 십수년 전에 먼저 갔다우...."


팔십 가까운 평생동안 얼마나 쓰리고 고단했던 사연이 많으셨을까.

하지만 조근조근 풀어가시는 모습은

가슴 속 맺힌 옹이들을 세월의 강물에 한 올 한 올 

다 흘려 보내신 듯 무심히 담담하다.


아직도 예쁜 옷을 입고 싶고, 꽃이 좋으시다는 할머니.

천상 여자다.

꽃을 좋아하셔서 남들은 푸성귀를 심을 땅에 꽃을 심는단다. 

얼마 전에는 접시꽃 씨앗도 가져다 주셨다.

나이 들어도 여성스러움을 간직한 고운 할머니를 볼 때마다 애잔하다.

할머니에게 남자친구라도 생겨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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